수지 엄마 린다는 오드리가 지금까지 봐왔던 몇몇 이용인의 엄마와 달랐다.
이용인 당사자보다 보호자인 엄마한테 신경을 더 써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린다는 그렇지 않았다. 우울감에 빠져 있지도 않았고 무기력하게 일상을 손 놓고 있지도 않았다. 장애인 주차 자리처럼 자신이 어떤 짓을 해도 면죄부가 된다는 듯 굴지도 않았다. 마음 붙일 데가 없다는 핑계로 이상한 종교나 쇼핑 중독 따위에 빠지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린다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고 징징대지 않았는데, 오드리로선 그 점이 가장 고마웠다. 출근해서 매일 밑도 끝도 없는 넋두리와 하소연을 듣는다는 건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도로시 엄마 안나도 다 좋았는데, 오드리한테 감정적으로 의존하려 한 점은 부담스러웠다.
린다가 달랐던 이유는 그녀만 유독 성숙한 인격을 가져서가 아니라 싱글맘이자 워킹맘이라는 조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수지를 돌보고 편의점에서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24시간이 모자란 여자에게 우울이니 중독이니 하는 건 사치였다. 린다의 얼굴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피곤한지, 얼마나 사는 게 재미가 없는지, 그럼에도 얼마나 억지로 버티며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린다는 입을 꾹 다물고 수지의 손을 꼭 잡은 채 세상과 싸우고 있었다. 린다 얼굴에 생기가 돌고 미소가 번지는 순간은 수지를 대할 때뿐이었다.
수지한테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충동적인 소비와 비만을 부르는 식탐이다. 처음 그들 모녀를 만났을 때 오드리는 린다가 어째서 수지를 통제하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그 두 가지만은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떠보아도 린다는 모른 척했다. 수지는 무인 문구점에 들어갔다 하면 기본 서너 개는 쓸어 담는다. 보다 못한 오드리가 수지야, 정말 갖고 싶은 거 딱 하나만 사자, 고 해봤지만 수지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수지는 기분이 좋아도 안 좋아도 식욕에는 영향이 없다. 일관되게 먹을 것을 찾는다. 심술이 폭발한 후라면 냉장고 안의 음식을 더 전투적으로 해치워 버린다. 중학교 입학 때 샀던 최대 사이즈의 체육복이 몸에 꽉 끼는데도 린다는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추가 비용을 내더라도 더 큰 체육복을 맞춰 줘야겠다고 할 뿐이다.
저녁 먹기 전의 간식 같은 걸 오드리가 제한하면 수지는 난리가 나는데, 그때 오드리한테 힘을 실어줘야 할 린다는 수지의 손을 들어준다. "선생님, 그냥 수지가 하자는 대로 해 주세요."
린다는 매번 수지와 싸우는 것에 지쳤다고 했다. 사고 싶거나 먹고 싶다고 조를 때 왜 안 되는지를 설명해도 수지는 이해를 못 하고 거절당했다는 사실만으로 폭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전쟁을 하루에도 몇 번씩 치르다 보면 차라리 들어주는 쪽을 택하게 된다. 그건 포기가 아니라 린다의 생존전략이었다.
"일단 들어주면 그 순간은 지나가거든요." "선생님 말이 맞아요.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 저도 알아요. 근데 저 아이를 이겨봤자 뭐 하겠어요?" "수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그깟 몇천 원짜리 쇼핑이라도 실컷 하게 해 줘야죠." "지금 먹고 싶은 거, 지금 사고 싶은 거, 그거라도 내 능력이 되는 한 들어주고 싶어요."
린다는 수지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아빠 없이 자라는 것도, 수지가 장애를 입은 것도, 모두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는 듯했다.
수지는 하굣길에 일단 엄마가 일하는 편의점부터 들른다.
과자며 초콜릿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계산대로 가져온다. 오드리는 어떻게든 사탕 하나라도 뺏으려고 애를 쓰지만 린다는 보고만 있다. 린다는 계산을 하면서 수지한테 오늘 학교 생활은 어땠는지 묻고 수지가 쫑알쫑알 떠드는 소리를 미소 지으며 듣는다. 안 된다고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이미 너무 많이 겪은 린다의 표정이다. 안 돼! 그 말을 누구보다 하고 싶은 사람이 린다라는 걸 오드리도 이젠 알 것 같다. 우리는 다섯 살 아이가 미운 행동을 해도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자라면 좋아진다는 믿음을 갖고 육아에 임한다. 그 아이가 평생 다섯 살로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최선을 다할 이유를 잃어버릴 것이다. 린다의 양육방식이 무책임하다고 비난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렇듯 우유부단한 린다도 '쇼핑상가' 사건만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린다는 통지반에 이의를 제기했고, 클로이 엄마와 오드리, 통지반 선생님 이렇게 네 사람이 상담실에서 마주 앉게 된다. 오드리까지 소환한 것은 선을 분명히 하려는 린다의 의지였다. 수지는 통지반 선생님 손에서 활보의 손으로 인계되어야 한다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이다. 오드리가 통지반 앞에서 기다리는 걸 수지가 싫어하여 교문 옆 벤치로 대기 장소를 옮긴 것은 원칙으로 따지면 잘못된 것이다. 수지가 중간에 다른 데로 샐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 점에 대해서 오드리와 통지반 선생님 둘 다 잘못을 시인했다. 오드리는 그때 린다한테 서운함과 동시에 섬뜩함을 느꼈다. 상담실 앞에 불려 오기 전까지만 해도 린다한테서 그런 언질을 전혀 받지 못했던 것이다. 수지와 관련해서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린다의 철칙을 확실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다음으로 클로이 엄마 차례가 되었다.
사실 두 엄마의 대면은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었다. 초6 때부터 진행돼 오던 사건을 중2가 되어서야 도마에 올렸다는 것은 린다가 그동안 얼마나 참았는지를 말해 준다. 이번 경우도 수지한테 택시비를 내게 하고 쇼핑상가에 데려간 것까지는 참을 수 있는데, 그 낯선 곳에 수지 혼자 두고 와버렸다는 사실이 린다를 폭발하게 만든 것이다. 린다는 수첩에 적어놓기라도 한 듯 그동안 있었던 클로이의 악행을 하나하나 폭로하고, 앞으로 시정해 줄 것과 사과를 요구했다. 린다는 흥분을 감추고 차분하게 말하려 했으나 마음속에 들끓는 복잡한 심정까지는 숨기지 못해서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클로이 엄마는 끝까지 듣고 난 뒤 한 마디 했다.
"증거 있어요?"
그 말에 린다는 물론이고 오드리와 통지반 선생님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우리 클로이가 수지를 꼬셔서 했다는 증거 있냐고요? 급도 안 되는 애랑 친구 한다기에 잠자코 있어 줬더니 고맙단 말은커녕 이런 누명을 쓸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우리 클로이 아니면 수지 같은 애가 학교에서 누구랑 말이라도 한마디 붙여보겠어요?"
"클로이 어머니, 그렇게 감정적으로 말씀하지 마시고요......."
통지반 선생님이 클로이 엄마를 막았다. 오드리는 옆에 앉은 린다의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점점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클로이 엄마는 점점 자신의 논리에 도취하고 있었다.
"제 말이 틀려요, 선생님? 학교에 애를 맡기려면 어느 정도 사리분별이 되는 아이를 맡겨야지, 통합교육이라고 어중이떠중이 다 받아주는 건 경우가 아니잖아요? 우리 클로이가 저런 바보랑 같은 취급을 받아야 되겠어요?......."
클로이 엄마는 말을 맺지 못했다. 린다한테 머리채를 휘어 잡혔기 때문이다. 오드리가 '바보'라는 말이 위험하다고 느끼던 순간 린다는 이미 마주 앉은 클로이 엄마한테 돌진하고 있었다. 린다의 거친 손아귀 아래 미용실까지 다녀온 클로이 엄마의 머리칼은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이 씨발년아, 너나 딸년 잘 키워! 사이코패스 소리 안 듣게!"
상담실 안은 쑥대밭이 되었다. 클로이 엄마도 린다의 머리채를 움켜잡았고, 두 여자는 누구도 먼저 손을 풀지 않았다. 통지반 선생님은 지원 요청을 하러 교무실로 달려갔다. 린다의 일갈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오드리는 두 사람을 뜯어말리면서도 히죽히죽 웃음이 새 나오는 걸 참느라 혼이 났다. 클로이 엄마에 대해서는 유감이 없다. 클로이 엄마가 치러야 할 과보가 있다면 그건 클로이로도 충분해 보인다.
오드리가 놀란 것은 평소의 두 여자는 절대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린다도 클로이 엄마도 그저 딸을 키우는 평범한 엄마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식 문제 앞에서는 순식간에 다른 인격체로 변신할 수도 있다는 걸 오드리는 눈앞에서 생생하게 실감했다. 엄마들의 혈투 이후에도 딸들은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이 허무할 뿐.
그날 상담실을 나와 린다와 오드리는 근처 카페로 가서 숨을 돌렸다.
오드리는 린다 편을 들어주었다. 린다는 어느새 평소의 조용하고 내성적인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클로이 엄마처럼 무식하게 막 나오면 차라리 대응이 쉬워요."
린다는 무심히 스치는 시선이나 표정에서 느껴지는 무시나 경멸이 더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사람들의 말은 곪은 상처를 새로 도려내는 것 같다고 했다.
"저도 그랬지만 사실 그들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그러는 경우도 많을 거예요. 무시가 아니라 정말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고요." 오드리는 변명하듯 말했다.
"다른 사람 탓할 것도 없어요. 애 아빠부터 그 모양인데요 뭘."
린다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스물일곱에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임신하는 바람에 결혼을 서둘렀던 것인데 정작 남편은 태어난 수지를 못 견뎌했다고. 남편은 수지의 장애를 린다 탓으로 몰았고, 린다가 수지를 키우는 방식에도 불만이 많았다.
"다 핑계였어요. 우리 곁을 떠날 이유가 필요했던 거죠."
수지는 아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수지가 다섯 살 무렵 떠났으니 기억이 없을 수도 있다.
린다는 친구도 안 만나고 의지할 다른 가족도 없다.
수지를 돌보고 잠자는 시간 외에 하루의 대부분을 투자해야 하는 편의점 일에 린다는 만족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듯 해야 할 일만 하다 보면 잡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건 현실이 아니라 머릿속 생각이라 했던가. 린다는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발버둥 쳤다. 수지에 대해 자신에 대해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뾰족한 수가 없기에 생각을 차단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하루 4시간, 오드리의 근무 시간이다. 수지 때문에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오드리한테는 '퇴근'이라는 게 있다. 린다에게는 퇴근이 없다. 오드리는 수지와 헤어져 돌아갈 자신만의 일상이 있다. 린다의 생활은 수지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죽어야 끝이 날 그 시간이 오드리는 낯설고 무섭다. 평생 장애인 자녀를 돌보다 늙고 병든 부모가 극한 선택을 하였다는 뉴스가 종종 나온다. 린다도 수지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게 소원일까.
그나저나 수지 엄마로만 산다면 린다의 인생은 어찌 되나.
"이게 내 인생이에요."
린다가 담담히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