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는 혼자 크지 않아요

by 오드리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바로 수지가 그렇다. 수지한테는 엄마 린다만 있는 게 아니다. 학교에 가면 담임선생님, 통지반 선생님, 보조선생님이 있고 방과 후에는 공부방, 피아노 등 사교육 선생님들이 있다. 나라에서 지원하는 통합교육기관의 선생님들도 많다. 수지가 어릴 때부터 다닌 동네 학원 선생님들까지 치면 셀 수도 없다. 수지가 일곱 살 때 다닌 태권도장 관장님은 지금도 차량 운행 중 길에서 만나면 큰소리로 수지 이름을 불러준다. 학교, 학원, 집을 잇는 수지의 동선에는 늘 오드리가 함께 한다. 무인 문구점 사장님은 볼 때마다 수지한테 과자를 쥐어주고, 학교 앞 안전지킴이 선생님은 꼭 손을 흔들어주며, 수지네 원룸 위층 아기 엄마는 린다가 바쁘면 한 번씩 수지를 봐준다.


활보는 수지만을 위한 맞춤형 제도이다.

예전에는 장애가 있으면 시설 입소를 당연한 걸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탈시설 시대이다. 장애인이 자기 집이나 동네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 시설에서 주는 밥 먹고 편하게 살면 좋을 것 같지만, 내가 언제 일어나고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갈지 스스로 선택하며 사는 삶보다 중요한 건 없다. 활보는 그런 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가족의 부담을 줄이고 그들을 지지해 준다. 이용인의 사회 참여에도 기여한다. 단순히 집 안에서 돌보는 게 아니라 학교, 직장, 외출, 인간관계까지 연결해서 고립을 줄이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한다. 활보는 그들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준다.


이런 제도가 있어도 최종적으로는 부모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의 손을 놓으면 어찌 되는지는 테오만 봐도 알 수 있다. 테오는 '토닥토닥 성장센터'에서 만난 초3 남자아이다. 경도 지적장애에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있다. 테오는 어찌나 명랑하고 활달한지 그 아이가 대기실에 들어오면 공기부터 달라졌다. 테오는 모르는 사람한테도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자기 활보선생님하고는 어찌나 티키타카가 잘 되는지 부러울 지경이었다.

한 번은 테오가 그날 수업시간에 만든 작품을 들고 와 오드리한테 자랑했다. 오드리가 잘했다고 칭찬하니 "그럼 선생님 드릴까요? 집에 잘 보관해 주실래요?" 했다. 오드리가 놀라니까 옆에 있던 테오 활보선생님이 말도 말라며 자기 집에도 더는 놓을 데가 없다고 했다. 테오는 언제 이사 갈지 모르는 모텔 생활을 하고 있어서 자신의 작품을 가져갈 수 없었다. 성탄절엔가 한번 큰맘 먹고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들고 갔는데 아빠가 창밖으로 던져버렸다고 했다. 오드리는 그날 받은 테오의 그림을 책상에 올려두었다.

테오는 대기실 사람들에게 커피 타주는 것도 좋아했다. 오드리한테도 생글생글 웃으며 "선생님, 제가 커피 타드릴까요?" 했다. 옆에 뚱하니 앉아있는 수지와는 비교불가의 다정함이었다. 테오는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붓고 뜨거운 물도 조심스럽게 받아 커피 봉지로 살살 저은 다음 작은 두 손으로 들고 오드리 앞에 내밀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장애가 있는 열 살 아이라기엔 너무나 어른스러웠다. 오드리가 고맙다고 하자 테오는 천진한 아이의 표정으로 헤헷 하고 웃었다.


그런 어느 날 테오가 작별인사를 했다. 그날이 '토닥토닥'에서 하는 마지막 수업이라고 했다. 테오의 활보선생님도 심란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불안불안하더니 결국 아빠가 테오의 양육을 포기하여 시설로 가게 되었다고 했다. 엄마 얼굴도 모르는 테오는 이리저리 친척들 손을 떠돌다가 뒤늦게 친부를 만났지만 아빠도 일 년을 못 버티고 포기한 것이었다. 테오의 평생이라야 십 년밖에 안 되는데 그 세월이 너무 잔인했다. 테오가 그토록 예의 바르고 싹싹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른들한테 잘 보여야만 버림받지 않을 거라고 믿는 테오만의 생존 방식이었던 것이다. 테오는 보통의 부모 아래 평범하게 자랐다면 장애의 정도가 훨씬 가벼워졌을지도 모른다. "테오는 얼마든지 좋아질 가능성이 있는 아이예요. 정서적인 안정과 따뜻한 보살핌만 받는다면 말이죠. 지금이 너무나 중요한 시기인데......" 오드리는 테오 활보선생님의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테오가 떠나도 '토닥토닥 성장센터'는 바쁘게 돌아간다.

수지는 중학교 내내 그곳에 다녔다. 월요일엔 미술 수요일엔 체육 수업을 받는다. 수지는 미술치료 수업을 좋아한다. 미술선생님은 수지의 친구처럼 수업을 재미있게 한다. 수지는 몸이 무거워서 체육 수업은 싫어한다. 그래도 체육선생님이 아이돌처럼 잘 생겨서 활동실에 들어가는 걸 거부하지는 않는다. 수지는 참 신기하게도 선생님들 앞에서는 웬만하면 폭발하지 않는다. 수지한테 만만한 건 오드리뿐이다. 따로 설명을 한 것도 아닌데 활보가 무조건 자기편이라는 걸 안다. 수지도 사람 가려가면서 대할 줄 안다니 다행이다.


15분 정도의 텀을 두고 수업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대기실은 늘 북적인다. 시간대가 꼬이면 두세 팀이 몰리기도 한다. 그래서 대기실 의자가 항상 부족한 편이다. 그런 와중에 수지는 두 명이 -촘촘히 앉으면 세 명까지도- 앉을 수 있는 벤치를 독차지하고 있다. 오드리가 옆에 서 있어도 알 바 아니다. 수지는 다리를 쩍 벌려 앞으로 뻗은 채 숏츠를 보고 있다. 숏츠 특유의 속사포 내레이션이 귀를 자극한다. 수지는 소리를 줄일 줄도 모르고 사람이 지나다녀도 다리를 치워줄 줄 모른다. 오드리는 그냥 눈치만 보고 있다. 처음엔 같이 앉아야지, 소리 줄여야지, 말도 해봤으나 수지 기분만 상하게 할 뿐 변한 건 없었다. '토닥토닥'에서는 서로 다 이해하는 분위기라서 그냥 두기로 했다. 울고 떼쓰고 정신없이 산만한 아이들에 비하면 수지는 양반이니까.


어느 날 테오 시간대에 엄마와 아들이 새로 왔다.

아이가 유치원생 정도인 것 치고는 엄마의 나이가 있어 보였는데 그 기세가 상당했다. 여자는 오드리가 서 있는 걸 보더니 바로 직격타를 날렸다.

"학생! 자리는 양보해서 같이 앉아야지! 그리고 유튜브 소리 좀 줄여줄래? 여기는 공공장소잖아!"

좁은 대기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수지가 고개를 번쩍 든다. 그리곤 오드리를 향해 입을 삐죽거렸다. 오드리는 여자와 수지한테 괜찮다는 손짓을 했다.

"안 돼요! 애들은 가르쳐야지, 말 안 하면 몰라요!"

여자는 말을 들을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듯 수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수지는 마지못해 몸을 찔끔 움직인다. 오드리는 얼른 엉덩이 끝을 의자에 붙였다. 빨리 그 상황과 여자의 눈길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여자는 오드리의 속도 모르고 애가 몇 살이냐 무슨 장애냐 하면서 말을 건다. 오드리는 수지가 알아듣기 힘든 '양보'니 '공공장소'니 하는 말을 굳이 쓰는 여자한테 일일이 응해줄 생각이 없어 대충 얼버무리며 폰을 보는 척했다. 오드리한테서 더 이상 건질 게 없어지자 여자는 자기 아들을 겨냥했다. 이거 끝나고 다음 학원은 어디인지 중간에 간식은 무얼 먹을 건지 저녁에 숙제는 뭐부터 할 건지 등등 듣기만 해도 골치 아프고 빽빽한 스케줄을 아이한테 주입한다. 아이는 작고 여린 한 마리 새 같았다. 엄마의 위세에 눌려 찍소리도 못하는 아이를 여자는 자랑하고 싶은 듯했다. 자고로 애는 이렇게 키워야 한다는 듯 말이다.

오드리는 여자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따끔하게 수지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오지랖만은 부러웠다. 요즘은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수지한테 미움받을까 봐 몸을 사리는 오드리한테는 그럴 권한도 배짱도 없다.


'토닥토닥 성장센터'는 학원이 밀집해 있는 10층짜리 건물의 3층에 있고 '마루 데이케어센터'는 5층에 있다.

'마루'는 성인 장애인 대상의 주간보호센터인데, 방학 때는 수지 같은 학생들도 받아준다. 비용도 일부 지원받을 수 있다. 여러 전문가 선생님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때문에 다양하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수지는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해서 '마루' 선생님들을 잘 따른다. 엘리베이터나 건물 1층에서 '마루' 선생님들을 만나면 강아지처럼 달려가 안긴다. 수지를 둘러싼 인연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하는 순간이다. 오드리는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흐뭇하고 안심이 된다.


그 건물에는 영어나 수학 등 일반 학원도 많고 병원, 약국, 식당들도 많아서 엘리베이터가 3개나 있는데도 매번 만원이다. 엘리베이터 안팎에서 떠드는 사람은 '마루'나 '토닥토닥'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다른 사람들은 애고 어른이고 하나같이 폰을 보고 있다. 그들은 장애인들이 떠드는 것은 물론이고 돌발 행동을 해도 미동이 없다. 무시나 무관심이 아니라 자주 봐오던 모습이라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우리가 일상에서 장애인을 만나면 당황하는 것은 평소에 잘 볼 일이 없기 때문인데, 그 건물처럼 수시로 많은 장애인들을 맞닥뜨리다 보면 뭐 그리 특별할 것도 없어지는 것이다. 오드리로서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학교 직장 지역사회에서 다 같이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는 말의 참뜻을 알 것 같았다.

수지만 봐도 원반에 소속만 돼 있을 뿐 통지반이라는 섬에 따로 분리되어 일반 학생들과는 물과 기름처럼 겉돌기만 한다면 통합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던 것이 복도에서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만나는 서로의 모습에 스며들듯이 익숙해져서 비록 친하지는 않아도 낯설지도 않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곤란한 사례도 있다.

'토닥토닥'에 다니는 초2 남자아이가 옆의 수학학원에 다니는 또래 학생의 팔을 물었다. 그 아이는 평소에도 돌발 행동이 심해서 활보선생님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빽빽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상처가 크진 않았는데 그 학생의 엄마가 노발대발하여 수학학원 원장이 '토닥토닥' 센터장을 찾아왔다. 사과와 치료비 요구는 당연히 받아들였는데, 원장은 한 가지 더 황당한 요구를 하였다. 수학학원이 끝나는 시간에는 '토닥토닥' 친구들의 엘리베이터 사용을 제한해 달라는 얘기였다. 각자 시간대가 달라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요구였지만, 누군가 그런 발상을 했고 그걸 정식으로 요구했다는 사실에 '마루'와 '토닥토닥' 식구들은 모두 경악했다. 거추장스러운 장애인은 무조건 격리해야 한다는 폭력적인 사고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에선 수지와 연결된 모든 사람들이 수지의 인간관계이고 사회생활이다. 또래 친구들과 하굣길에 떡볶이집에 가서 수다를 떨 수는 없지만, 수지 곁에는 많은 선생님들이 있다. 수지는 절대 혼자 크지 않는다. 온 나라가 수지를 키우고 있다. 오드리는 매 순간 그것을 목격한다.


"걔 하나 키우자고 들어가는 나라 돈이 대체 얼마야? 끝이나 있어? 죽을 때까지 세금만 축낼 거 아냐? 그렇게 돈 들여 봤자 어디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 동네 놀이터에 갔다가 벤치에서 만난 할머니가 한 말이다. 덩치가 산 만한 수지는 대여섯 살 아이들을 제치고 엉덩이가 꽉 차는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다. "차라리 불우한 청소년들 장학금이나 더 주는 게 낫지 않겠어?" 할머니의 나라 걱정은 끝이 없었다. 오드리는 웃으며 한 마디 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어쨌든 살아야죠. 사람이 꼭 쓸모가 있어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예전에는 오드리도 그리 생각한 적이 있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닌가 하는.

하지만 복지는 생산성이나 효율성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한다. 국민이면 누구나 교육과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듯이 장애인 지원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 전체로 보면 방치했을 때의 비용이 더 크니까. 누구나 사고, 질병, 노화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처지가 될 수 있고, 복지는 그런 국민 모두를 위한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다. 그 위에 발을 딛고 수지는 오늘도 씩씩하게 자란다. /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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