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가 사라졌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골라 밖으로 나왔고, 포장지 버릴 데를 찾다가 잠깐 들어가 쓰레기만 버리고 나왔을 뿐인데, 수지가 없어진 것이다. 일 초도 안 걸렸다. 그래, 일점 오 초쯤 걸렸다 치자. 암튼 눈 한번 깜박할 찰나였다. 걸음이 빠른 아이도 아닌데 편의점 앞이 텅 비어있다.
오드리의 눈앞에는 세 갈래 길이 망망대해처럼 펼쳐져 있다. 어디로 갔을까. 제발 수지의 장난이길 바라며 오드리는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자리를 비웠다가 수지와 길이 어긋나면 안 된다. 심장이 쿵쿵 뛴다.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고 눈앞이 깜깜해진다. 편의점 불빛도 사라졌다. 오드리조차 이제 그곳이 낯설다.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겁이 난 오드리는 수지를 불러본다. 수지야! 수지야! 목이 터져라 불러도 그 이름은 오드리의 입안에서만 맴돈다. 컥컥, 숨 쉬기가 어렵다. 심장이 조여 온다.
저 어둠 속 어딘가에 수지가 있을 텐데 발이 움직이질 않는다. 오드리는 다리 하나라도 움직여보려고 몸을 뒤튼다. 수지야! 수지야!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용을 쓸수록 두 다리는 뻣뻣해진다. 그때 수지가 힐끔 고개를 내민 것 같다. 수지야 기다려! 같이 가야지! 오드리는 악착같이 소리를 질렀다.
"으으으......." 자신의 기괴한 신음소리가 오드리의 귀를 때린다. 그 생경한 느낌에 소름이 돋아 오드리는 번쩍 눈을 떴다. 꿈이라는 걸 알고 난 후에도 오드리는 한동안 진정하지 못했다. 결국 수지를 못 찾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했다.
수지를 만난 후 오드리한테는 없던 병이 생겼다. 수지를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병. 그러다 보니 수지가 사라지는 악몽을 자주 꾼다.
한 번은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다.
수지가 클로이 무리를 따라 택시를 타고 쇼핑상가에 간 것이다. 수업이 다른 때보다 십 분 정도 일찍 끝난 게 화근이었다. 수지가 오드리한테 아무 말 없이 다른 데로 샌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오드리는 아무리 기다려도 수지가 나오지 않자 전화를 해보았다. 수지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순간 전신을 조여오던 기분 나쁜 예감! 오드리는 통지반으로 달려갔고, 아이들은 진작에 하교했음을 알게 된다.
오드리는 클로이한테 전화를 했다.
"클로이야, 지금 수지랑 같이 있니?"
"아니요, 저는 집인데요?"
"수지 어디 있는지 모르니?"
"몰라요. 왜 나한테 그래요?"
클로이가 전화를 끊어버린다. 오드리는 큰 숨을 몰아쉬고 다시 전화를 한다. 받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할 수밖에 없다. 지금 매달릴 데는 클로이뿐이다. 한번 끊었다가 다시 하려는데 이번에는 베시한테서 전화가 온다. 베시는 클로이 친구인데 통지반은 아니지만 오며 가며 얼굴을 익힌 아이다.
"선생님, 수지 지금 쇼핑상가에 있어요. 우리랑 같이 갔다가 거기서 헤어졌어요."
무슨 일인가로 빈정이 상한 클로이가 수지를 두고 와버렸다고 했다. 베시는 클로이가 통화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몰래 오드리한테 알려준 것이었다.
오드리는 택시를 타고 쇼핑상가로 가면서 계속 수지한테 전화를 했다. 꺼져 있는 걸 알면서도 그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쇼핑상가에 도착하자마자 오드리는 1층 출입구부터 미친 듯이 훑었다. 3층까지가 매장이고 4,5층은 주차장이다. 평일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2층까지 허탕을 치고, 3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오드리는 그 기계가 고장이라도 났으면 싶었다. 마지막 희망인 3층에도 수지가 없다면? 그 상상만으로도 다리가 휘청거렸다.
수지는 3층 완구 코너에 있었다. 커다란 곰인형부터 작은 키링까지 다양한 인형들이 많았다. 수지는 가방끈을 양손으로 잡은 채 쿠로미 인형에 몰두해 있었다. "수지야." 오드리가 옆에 가도 별 반응이 없었다. 놀라지도 미안해하지도 반가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쿠로미를 가리키며 "이거 예쁘지?" 했다. 수지야, 선생님한테 말도 없이 여길 오면 어떻게 하니? 아무 일 없었어? 클로이 말 듣지 말랬잖아? 오드리 마음속에선 온갖 말들이 아우성쳤으나, 수지는 그런 말을 들을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전화는 왜 꺼놓았는지 알아야 했다.
“수지야, 폰은 어디 있어?”
그제야 생각난 듯 수지는 가방을 앞으로 돌려 폰을 꺼냈다. 학교에서 받은 뒤 그대로 넣어둔 듯했다.
“폰은 왜 안 켰어? “
“클로이가 켜지 말랬어.”
오드리는 잠시 숨을 골랐다.
이윽고 오드리가 말했다. "수지야 집에 가자." “클로이는?" "응 클로이는 먼저 집에 갔대." "그래?" 수지는 오드리를 따라나섰다. 수지의 가방을 받아 들고 일층으로 내려와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를 타고 수지의 집까지 오는 데는 십 분도 안 걸렸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지만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클로이와 헤어지고 오드리를 만나기까지 수지는 한 시간 정도 혼자 있었던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수지한테 접근한 사람이 없었다는 건 천운이라고 봐야 했다. 수지는 클로이가 자기를 버리고 간 줄 모른다. 그 사실을 말해줘야 할지 오드리도 모르겠다.
“수지야, 혼자 무섭지 않았어?"
“괜찮아. 여기 가만히 있으면 돼."
수지는 태평했다.
평소 수지한테 관대한 린다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가르쳤다고 한다. 수지가 믿어도 되는 사람은 엄마, 학교 선생님, 활보 선생님 이렇게 세 명뿐이다, 나머지는 다 '모르는 사람'이니까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 길을 잃었을 때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면 안 된다, 꼼짝 않고 기다리면 반드시 엄마가 찾아온다, 고 머리에 새기다시피 주입을 시켰다고 한다. 마침내 그 교육의 효과를 보았다랄까.
자초지종을 다 들은 린다는 수지를 야단쳤다.
"학교 끝나면 무조건 오드리선생님부터 만나야 된다고 했지? 왜 선생님한테 말도 안 하고 클로이를 따라 간 거야?"
"클로이가 시간이 없다고 했어. 빨리 갔다 오면 된다고 했어."
"클로이 말 듣지 말라고 했잖아!"
결국 린다는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진짜 화가 났다는 걸 알고 수지는 "클로이가 가자고 했단 말이야......" 하며 입을 삐쭉거린다.
"가고 싶으면 오드리선생님이랑 같이 가야지!"
"클로이가 빨리 가자고 했단 말이야!"
수지도 울음이 폭발했다.
“선생님, 오늘 너무 놀라고 고생하셨죠? 앞으로는 작은 일이라도 저한테 먼저 알려주세요."
린다는 어깨가 처진 채 편의점으로 돌아갔다. 둘만 남은 집안이 순간 고요해진다. "수지야, 배고프니? 밥 먹을래?" "아니야. 이거 해." 수지는 가방에서 인형을 꺼낸다. 좀 전 쇼핑상가에서 오드리가 사준 쿠로미 인형이다. "그러자." 오드리는 인형 바구니를 가져와 놀이 준비를 한다.
수지는 그 뒤로도 불쑥불쑥 일탈 행동을 했다. 오드리와 함께 걷다가도 옆길로 샜다. 따라오나 싶어 돌아보면 사라지고 없다. 골목이나 건물 등 길이 갈라졌다가 이어지는 지점에서 다시 만나긴 하지만, 오드리는 그런 장난이 싫다.
“쌤은 어디로 갈 거야?”
“나는 수지랑 같이 있어야 해. 떨어지면 안 돼.”
“싫어. 난 이리로 갈래. 쌤은 저리로 가.”
수지가 고집을 피울 때면 오드리는 자기 몸을 둘로 나누어 이쪽저쪽 다 갔으면 싶다.
사실 수지 혼자 학교에서 집까지 올 수는 있다. 익숙한 길이니까. 수지는 신호등도 잘 지키고 횡단보도도 조심해서 건넌다. 신호등이 없는 데선 아예 차가 안 보여야 움직인다. 문제는 수지 혼자 갈 수 있다고 진짜로 혼자 다니게 할 수는 없다는 거다. '만에 하나' 때문이다.
만에 하나 수지가 잘못되면? 그 가정 앞에선 어떤 대안도 있을 수가 없다.
학원에 간 수지를 기다릴 때 오드리가 즐겨 가는 무인 카페가 있다. 오드리는 아메리카노 한잔을 뽑아서 일인용 탁자에 앉아 유리 너머 화초를 구경한다. 바지런한 그 가게의 주인은 밖에 내놓은 몇 개의 화분을 정성껏 관리한다. 그중 오드리의 시선을 끄는 화초가 있는데, 실외기 바람을 직통으로 맞고 있다. 가느다란 줄기 서너 개에 이파리조차 앙상한데 얼마 전부터 거기에 작고 하얀 꽃이 조롱조롱 달렸다. 세상에 처음 나온 꽃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실외기 뜨거운 바람에 쉴 새 없이 흔들린다.
수지는 어떤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육아의 최종 목표는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주도하며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수지는 자립생활 능력을 최대한 키워주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다. 밥 먹기, 옷 입기, 씻기 같은 일상생활을 스스로 하는 것이 일차 목표이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은 두고 봐야 한다. 고등학교까지는 다닌다지만 스무 살 이후 진로는 어찌 될지, 직장은 얻을 수 있을지, 거기까지만 생각하는데도 숨이 차다.
천천히 나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 현재 수지는 친구랑 놀고 싶어 하고, 인형을 너무 좋아하고, 엄마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는 아이다. 지금 당장은 그걸로도 행복한데 굳이 미래를 끌어와 우울해질 필요가 있을까.
세상에는 아픈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도우며 살면 된다. 그렇게 어우러지는 삶의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드리는 수지를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마음도, 하루빨리 혼자 다니는 훈련을 해야 하지 않을까 조바심치는 마음도, 일단 내려놓기로 한다. 오늘은 오늘 주어진 일을 하면 된다. 수지의 하교 도우미 일에 충실하면 된다. 그러니까 수지야, 아직은 혼자 다니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