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광효 Dec 19. 2023

71. 부산박물관 탐방기


해운대 주간 일기 71 – 부산박물관 탐방기


주말, 고등학교 동기의 아들 결혼식에 갔다.


동기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전공을 살려 부산에서 러시아와 무역 거래를 했다. 하지만 IMF 경제 위기 때 사업은 직격탄을 맞았고, 그 후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었다. 본인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늘 우리 동기들의 일에 진심이었고 앞장서서 매개자의 역할을 해 왔다. 아들 둘을 두었는데 멋지게 컸다. 스스로 알아서 장가가는 모습을 보니 대견스럽다.


결혼식을 마치고 오후에 열리는 “짜장 콘서트”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았다. 집에 들렀다가 오기에도 교통체증을 고려하면 어중간하여 콘서트가 열리는 부산예술회관 근처에 있는 부산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은 나도 작은 기부를 한 ‘위트컴 장군 동장’을 먼저 보고자 했으나 주차가 어려워 다음 기회로 미뤘다.


먼저 박물관의 외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늦가을의 청취가 가슴속을 후빈다. 잘 가꾸어진 정원 뜰에 하나둘 떨어진 낙엽과 아직은 나무를 부여잡고 있어야 하는 마지막 잎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한다. “난 이제 내년의 거름이 될 거야” 또는 “난 아직은 안 돼”. 생각이 다른 만큼의 거리감이 있다. 세상사 인간에게도 그럴 것이다.


박물관 옆에는 ‘조각공원’도 있다. 


제법 많은 수의 작품이 있고, 다른 나라의 작가들도 많다. 어떤 연유로 이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알 수 없으나 나름 의미 있는 공간이다. 박물관과 UN 평화공원이 보듬어주고 공원 앞의 도로와 높이가 제한된 주택들이 시선을 넓혀준다. 사방이 번잡하지 않으니 감상의 즐거움이 넉넉하고 여유롭다.


박물관 외부에 전시된 비석, 돌멩이, 현판, 동상들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면서 흐릿해지거나 연륜이 있는 것처럼 본연의 색감을 변화시키고 있다. 서면 로터리 중앙에 있던 ‘부산탑의 동상’이 마치 버려진 듯이 한 모퉁이에서 나를 반긴다. “보고 싶었는데 왜 이제 왔냐”라고 인사를 건네면서 사람들이 없애 버린 자신의 집, 부산탑을 복원해 달라고 하소연을 한다.


문화체험관 옆을 지나는데 멋진 옷매무새를 갖춘 분이 친절하게 말을 걸어온다. “안에도 잠깐 둘러보시면 좋을 거예요”. 못 이기는 척 따라 들어가니 반갑게 이것저것 설명도 해 주시고 예약을 하면 ‘탁본체험’, ‘궁중예복체험’, ‘다도체험’ 등을 할 수 있으니 꼭 다시 들러 달란다. 부산을 찾는 손님이 오면 이곳에서 차 한 잔을 나누고 싶다.


박물관 내부는 구석기시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부산 역사를 보여준다. 전시된 유물들과 설명 자료들이 부산을 좀 더 알게 되는 데 도움은 되었지만, 큰 감탄과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우리에게는 약탈의 문화가 없으니, 큰 유적이나 유물을 확보할 수 없다. 또 전시공간이 크고 넓지 않으니 박물관 내부에 유적지를 만들지도 못한다. 베를린 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 문명의 ‘바빌론 신전’ 같은 유적을 통째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유적은 희소하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감탄하고 한편으로는 유적의 약탈에 분개한다. 그런 면에서 부산박물관은 부산의 있는 그대로의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소박해서 거슬림이 없다.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근처의 UN평화공원을 포함하면 하루가 거뜬할 것 같다. 오늘 남겨둔 공간은 다음을 기약한다. 틈을 내 부산박물관 투어를 하시길 강추합니다. (23.12.13)





작가의 이전글 70. ‘민락 인디트레이닝센터’의 생존을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