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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작가 Nov 08. 2023

도쿄 카페에 백만 원 쓰고 깨달은 것

3주간의 도쿄 카페투어 후기

어쩌다 가게 된 도쿄 카페투어. 커피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본의 카페가 한국보다 5년에서 10년 정도는 앞서있다고 한다. 그게 인테리어든 맛이든 디저트든 무엇이든 간에 일본이 커피 문화는 늘 앞서있다고 한다. 그래서 무작정 간 것도 있다. 정말로 그들이 앞서있고 커피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걸 따라 하며 국내에서도 유행했는지 또는 유행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짧게 결론을 내리자면 생각보다 일본 사람들은 커피에 진심이다. 그리고 카페를 카페로서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

핸드드립을 하지 않는 카페를 찾아보기 어려운 도쿄였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대부분의 카페가 로스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스팅과 핸드드립은 세트라고 생각한다. 핸드드립을 하지 않는다면 원두 판매로 이어질 수 없다. 그렇기에 내가 세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원두가 준비되어 있었다.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진입 장벽이 낮은 원두부터 캐릭터가 강하고 핸드드립을 꽤 즐겨야 마실 수 있는 원두까지. 정말 다양하다. 이게 도쿄 카페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서 카페 내부에서 로스팅을 할 수 있어서 은은하게 나는 콩 볶는 향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르겠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블렌딩 원두보다 싱글 원두를 취급하는 곳이 훨씬 많았다. 물론 싱글과 블렌딩 둘 다 있는 곳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싱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데 가격은 블렌딩 원두랑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보통 싱글이 블렌딩에 비해 20~30% 비싼 게 일반적인데 그리고 한국에서 싱글로 아메리카노를 판매하는 곳을 찾기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와 비슷하달까? 정말로 손에 꼽는다. 그런데 도쿄는 기본값이 싱글이다.


나는 도쿄 카페의 가장 큰 특징이 로스팅을 대부분의 카페가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그런 카페들만 골라서 간 걸 수도 있는데 2곳 정도 제외하고는 전부 직접 로스팅을 하고 원두를 판매하며 납품까지 하고 있었다. 법적으로 도쿄가 로스팅을 카페에서 하는 데 있어서 한국에 비하면 기준이 꽤 낮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게 모두가 로스팅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도쿄에 있는 대부분의 카페들은 로스팅을 하는 것일까? 나는 로스팅을 하는 게 일종의 책임이라고 본다. 내가 내리는 커피를 통제하려면 내가 직접 로스팅을 해야 하고 산지에 방문을 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으로 해야 하는 것이 로스팅이라고 본다. 카페에서 일을 해보면 알겠지만 내가 로스팅을 하는 것과 납품을 받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게 천지차이다. 메뉴를 개발을 해도 상품을 팔아도 할 수 있는 게 너무나도 다르다. 그렇기에 너도나도 로스팅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로스팅을 하는 것이 커피를 대하는 진짜 자세라고 생각한다.

컨셉에 충실한 카페들이 많다. 그러니까 컨셉이 없는 카페가 없으며 컨셉이 있으면 정말 지독하게 컨셉을 지킨다. 수많은 컨셉 중 카페가 내세우기 가장 쉬운 건 뷰가 아닐까? 내가 도쿄에서 간 카페 중 가장 뷰가 좋았던 신주쿠교엔. 신주쿠 국립공원인데 무려 입장료가 500엔이다. 그러니까 이 스타벅스를 가려면, 이 뷰를 감상하려면 입장료를 내고 가야 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입장료가 있는 카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정말 입장료가 하나도 아깝지 않다. 안에 식물원도 있고 관리도 잘 되어 있으며 아이들과 산책하고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너무나도 좋은 곳이다. 뷰가 좋으니 사방을 통유리로 했으면 더 좋을 거 같은데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확실한 뷰만 제공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걸 배워야 한다고 본다. 뷰가 좋다고 사방팔방 다 통유리로 해서 그 희소성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확실한 곳에 확실한 뷰를 제공함으로써 그 뷰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나카메구로에 있는 오니버스라는 카페다. 한국 사람들에게 전철이 지나가는 걸 볼 수 있는 카페로 유명한데 물론 일본에서도 이 전철뷰로 유명하다. 여기도 뷰의 희소성을 높였다. 전철이 지나가는 자리. 이 명당을 하나로 제한했다. 마음만 먹으면 한자리는 더 만들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 카페를 카페로서 손님들이 이용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뷰의 희소성을 높이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물론 옆자리에 앉는다고 해서 전철 지나가는 게 안 보이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영상에 나오는 자리만큼 좋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내가 진짜 소름이 돋은 카페인데 시부야에 있는 아주 작은 규모의 카페이다. 컨셉이 진짜 말이 안 된다. 블랙이라는 색상을 컨셉으로 잡은 카페인데 중간중간 포인트로 화이트를 사용하기는 한다. 근데 정말 내가 느낀 건 블랙 컨셉을 잡으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어쭙잖게 블랙 컨셉으로 인테리어 해서 카페 하는 곳은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일단 카페 이름부터가 Monochrome이다. 일단 문이 검은색이고 손잡이도 검은색이다. 그래서 입구를 찾는데 약간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내부가 정말 어둡다. 눈이 안 좋은 사람은 앞이 안 보일 수도 있겠고 오래 있으면 눈이 침침해질 정도로 사방이 검은색이다. 테이블과 의자는 기본이며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기 위해 블라인드를 해놨는데 그 마저도 검은색이다. 음료는 말해서 뭐 하겠는가? 심지어 화장실은 세면대를 제외하면 온통 검은색이다. 진짜 살면서 내가 이렇게 검은색으로 된 물건을 많이 볼까 싶더라. 음악마저도 이 분위기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음악들로 흘러나왔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소름 돋을 수밖에 없는 카페였다. 컨셉을 잡으면 이렇게까지 해야 손님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는 걸 느끼게 된 곳이다.


쓰키지 시장에 있는 아주 작은 카페다. 내가 본 카페 중 가장 작은 곳이자 정리가 된 듯 안 된 듯 한 카페다. 저 작은 공간에서 주문을 받고 메뉴를 만들고 로스팅을 한다. 심지어 직접 만든 쿠키를 판매하고 있는데 아마 베이킹은 다른 공간에서 하지 않을까? 도저히 저기서는 불가능할 거 같은데? 물고기 모양의 쿠키가 유명한데 오전에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동나버린 상태였다. 핸드드립과 콜드브루만 판매하는 곳이고 사장님 혼자서 주문을 받고 음료를 제조하신다. 나는 지금까지 매장 규모에 따라서 할 수 있는 게 나뉜다고 생각했는데 카페 투어 막바지에 간 이 카페 덕분에 나의 편견이 완전히 깨졌다. 카페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다. 저 작은 공간에서 웬만한 카페가 하는 건 다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카페의 가장 큰 메리트는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원두로 커피를 내려서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중국과 도미니카이다.

이 카페에서 내가 깨달은 건 중요한 건 나의 능력이지 카페의 크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 카페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불가능한 건 없다.


도쿄에 있는 카페는 열에 아홉은 음료를 직원이 가져다준다. 번호표를 나눠주는 곳이 있고 손님의 얼굴을 기억했다가 가져다주는 곳도 있다. 대부분 얼굴을 기억했다가 가져다주는 곳이 많다. 생각해 보니 도쿄에서 단 한 번도 진동벨을 준 카페를 만나지 못했다. 진동벨이라는 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닐 텐데 말이지. 메뉴와 손님의 이름을 불러주거나 손님에게 직접 가져다주는 것. 이것 두 가지만이 존재하는 도쿄 카페다. 반납 또한 대부분 자리에 두고 가는 게 일반적이고 반납대가 있는 경우는 드물다. 픽업대로 다시 가져다주는 것 또한 드물다. 그냥 카페에 가면 나는 앉아서 커피만 마시다가 나오면 된다. 손님이 오롯이 커피에 집중할 수 있게끔 해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커피값에 꽤나 많은 부분의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야외 테이블이 없는 카페는 없었다. 도쿄 사람들은 야외 테이블을 엄청나게 좋아하나 보다. 보면 테이블까지 구비된 곳보다 간이 의자 정도만 있는 곳이 더 많았다. 야외에서 가볍게 커피 한 잔 하는 느낌으로. 굳이 이 추운 겨울에도 야외에 앉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이것이 도쿄 사람들이 카페를 즐기는 방법일까? 적당한 추위는 오히려 커피를 즐기는데 도움이 된다는 걸까? 생각해 보면 도쿄의 날씨가 그렇게 춥지 않다는 걸 감안했을 때 야외 테이블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아닐까 싶다.


테이블과 의자를 보고 있으면 드는 생각은 생각보다 큰돈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테이블과 의자는 인테리어에 포함이 되지만 분위기만 맞추면 된다는 정도의 느낌이다. 굳이 고급 테이블과 의자를 쓰지 않고 그냥 테이블은 테이블로서, 의자는 의자로서 기능만 하면 된다는 느낌이랄까, 근데 그 테이블과 의자가 카페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것이 포인트다. 간혹 테이블과 의자에 힘을 주는 카페들이 있는데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도쿄와 한국은 카페 문화가 아예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힘을 줄 수는 있겠다.


보는 맛이 있는 라떼 아트. 맛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일단 기분이 좋다. 하트 하나만 올라가도 좋은데 괜찮은 그림이 올라가 있으면 확실히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할까? 전문성이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까? 한국도 이제 라떼 아트를 안 해주는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대중화가 되었고 손님 자리까지 직접 와서 눈앞에서 라떼 아트를 해주는 곳도 있다. 라떼 아트는 시간을 은근히 잡아먹는다. 몇 잔 안 되는 거 같아도 그게 쌓이면 꽤나 큰 시간이 되어서 음료가 밀리곤 하는데 도쿄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잔 한잔 최선을 다한다.


마지막으로 도쿄 카페에는 기다림이 있다. 손님과 주인 둘 다 기다릴 줄 아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라떼 아트처럼 내 음료가 조금 늦게 나올 수는 있지만 기다리는 이유는 나 또한 앞에 있는 손님들과 동일한 서비스를 받을 것이기에 그렇기에 기다리는 것이다.


한 카페에서 기다림에 대해서 배웠는데 일단 한국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기본적으로 일본은 카페든 음식점이든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 게 우선이 아니라 직원의 안내를 기다리는 게 기본이다. 프랜차이즈를 제외하고. 그래서 가능한 게 아닐까 싶은데 매장 내에 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이 아직 손님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으면 손님을 받지 않는다. 자리로 안내하지 않고 준비가 될 때까지 손님은 기다린다. 이게 참 재미있는 부분이다. 손님도 이해를 하는 게 완벽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기다리는 것이고 직원 또한 어중간하게 손님을 쳐내는 게 아니라 제대로 준비해서 받는 것이다. 주인이라면 자기가 자신 있어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음료와 디저트를 선보이는데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받고 싶지는 않겠지. 성격이 급하면 조금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는 있는데 이것이 이 나라의 문화라면 충분히 괜찮은 게 아닐까? 모두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기다림이 존재하는 것이다.

참 매력적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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