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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Jun 09. 2024

공간空間라면

mayol@골계전 14. 김수근의 공간空間과 후배와의 정겨운 추억

    지난해 방송에서 기안 84라는 출연자가 겐지즈강물을 떠마시는 장면을 보고는 가족들 모두가 '으웩'소리를 낸 기억이다. 그 강물에 자신이 들어가 수영을 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밤마다 장사를 지내며 시신을 태우거나 빨래를 하거나 강에 몰려든 사람들이 미역을 감는 그 물을 마시다니, 코모도의 위장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것 같았다.  

    이와는 정반대로, 나는 약간의 민감성 대장증상과 더불어 약한 비위를 가지고 있다.

    눈으로 비위가 상하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입술이 닫히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직장동료들과 함께 식당을 가서 같은 밥과 반찬을 먹었는데도 내 얼굴에만 붉은 꽃이 피고 온몸이 가려워지는 식중독 증세가 생겨 병원으로 퇴근한 게 여러 번이다.

    나의 이런 몹쓸 비위가 또 한 번 상한 기억이다.



        

    가을 낙엽이 다 떨어지고 제법 쌀쌀해진 어느 날이었다.

    비원 옆 공간사랑의 주인이 바뀐 직후 그곳 마당은 한동안 공짜로 차를 댈 수 있는 기간이 있었다.

    주차 안내원이 있었지만 커피 한 잔 하러 왔다고 하면 자리를 내주었으니 서울 시내 한 복판에서 누릴 수 있는 소확행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아쉬운 일이지만, 지금은 식당 예약손님이 아니면 입차가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나 같이 공짜주차 좋아하는 사람들 탓이다.

    나는 비위만 약한 게 아니라 혼자 식당에 앉아 밥을 먹는 게 힘든 성격이라 혹시라도 밥때를 놓치면 산책을 하거나 서점엘 간다.

    그날도 이른 미팅을 끝내고 나오자 사무실로 들어가 직원들과 식사를 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 되어 공간에 주차를 하고 다시 한번 시계를 쳐다봤다.

    ‘그래, 다이어트가 별 건가’하는 생각을 하며 비원 앞 낙엽을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비원 주변을 가볍게 돌고 막 차로 돌아가려는데 클랙슨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며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 저예요. 여기요 여기!!"


    돌아보니, 도로가 밀리는데도 차를 세우고 나를 부르는 후배가 보였다.

    엄지를 들어, '공간 공짜야!’ 하는 사인을 보냈다.

    눈치 빠른 후배는 바로 차를 꺾어 공간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후배는 내가 점심을 건너뛰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챘다.


    "여전하십니다요. 하하. 저도 안 먹었는데 뭐 먹을 거 있나 나가볼까요?"


    후배와 비원에서 종로3가역으로 이어지는 한가한 길을 선택해 걸어 내려갔다.

    서늘한 바람에 말린 바삭한 낙엽이 밟기 좋았다.


    "형, 함바집 가봤어요?"


    아시는 분이 있겠지만, 함바집은 공사장 인부들을 위해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밥집을 말한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가볼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이다.

    마침 비원 앞 공사장에 있는 작은 함바집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한 번 가볼까?"


    대충 만든 새시문이 반쯤 열려있는 함바집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삼겹살집에나 있는 닦지 않은 원형철제 테이블이 두 개 눈에 들어왔고 1미터도 안 되는 사이를 두고 우측에 개수대가 있었다.

    시멘트 바닥은 울퉁불퉁했고 여기저기 물이 고여있었다.

    테이블너머에는 창호지로 대충 발라져 있는 작은 미닫이 방문이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드르륵 문이 열렸다.


    "몇 명이야?"


    잠에서 막 깬듯한 부스스한 얼굴의 아줌마가 고개를 내밀며 후추 갈아내는 목소리로 물었다.


    "두 명이요."


    후배는 라면 두 그릇을 주문하고는 개수대를 등지고 안고 나에게는 창가 벽 안쪽에 앉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내 눈에는 매우 큰 후배의 얼굴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개수대가 좌측에는 밥통 그리고 아직 설거지를 기다리는 수북이 쌓인 지저분한 냄비와 그릇들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아, 지난 얘기지만, 후배와 자리를 바꾸어 앉았어야 했다. 그러면 배라도 채웠을 텐데…


    아줌마는 가슴까지 흘러내리는 감지 않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손으로 대충 넘기고는 슬리퍼를 신으며 방문턱을 넘어 내려왔다. 입술은 군데군데 까진 빨간 립스틱자국이 선명했고 진한 아이라인은 너무 길어서 안경다리만 귀에 걸친 것 같았다.

    몇 벌이나 옷을 겹쳐 입었는지 음식물이 여기저기 묻은 스웨터가 삐져나오려는 옷들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내 눈앞에서 얼큰 후배가 뭐라고 말을 하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건성으로, '어어…'하며 눈은 아줌마의 동선을 쫒고 있었다.

    청나라 말기 귀족들에게만 허락됐다던 기다란 손톱이 아줌마의 손끝에 자라 있었다.

    손톱 안으로는 시커먼 떼로 보이는 이물질들이 가득했다.

    아줌마는 그 손으로 후배 큰 얼굴 좌측에 쌓여있는 그릇들 중 시커멓게 그을린 양은냄비를 하나 빼어 들었다. 그리고는 후배 큰 얼굴 우측 개수대로 냄비를 가지고 갔다.

    찬물을 틀고는 양은냄비를 대충 물로 휘휘 돌려 헹구는데 분명 내 눈에는 그 안에 돼지기름으로 추정되는 우윳빛 기름 덩어리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이렇게 쌀쌀한 날씨에 기름이 찬물에 씻겨질까...'


    아줌마는 내 생각을 읽지 못한 채 냄비에 다시 수돗물을 받고는 가스에 불을 붙여 올렸다.

    그러고는 문이 다 까진 냉장고를 열어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김치를 왼손 길고 이물질 가득한 손톱으로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가위를 꺼내 잘라 접시에 담았다. 맨손으로.

    그러고는 손에 찬물을 대충 흘리더니 옷에 쓱쓱 문질러 깨끗이 닦았다.

    가위는 후배 큰 머리통에 가려져서 목을 빼고 보아도 어디에서 꺼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후배는 내 눈에서 아웃포커싱 된 상태로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보글보글 라면이 끓자 아줌마는 개수대에서 수저 두 개와 젓가락 두 세트를 들고 물기를 탈탈 털어 물기 가득한 사각소반에 올리고 김치도 올렸다.

    이윽고 상이 차려졌다.

    모든 장면은 내 눈앞에서 슬로비디오처럼 저장이 되어 버렸다.

    삭제 불가.


    후배는 물기가 남은 숟가락을 입속에 넣고 한번 쭉 빨더니, '역시 라면은 국물부터!' 하며 냄비 깊숙이 숟가락을 꽂았다.


    '아으… 비위 좋은 놈.'


    아줌마는 집게와 중국집에서나 사용하는 꽃무늬 플라스틱 그릇 두 개를 들고 와 내가 그러지 말라고 말리기도 전에 한 그릇씩 수북이 국물까지 부어 후배와 내 앞에 내어주고는 기름이 완전히 제거돼 아주 깨끗해진 양은냄비를 들고 개수대로 갔다.

    냄비채로 후배 다 먹으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아줌마, 김치가 맛있네요!"


    후배는 그 많던 수다를 중단하고는 허겁지겁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아줌마는 후배 머리통 뒤에서 우리를 내려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 같은 포스였다.

    순식간에 김치가 동이 나고 라면 국물을 들이마시던 후배가 나를 보았다.


    "형, 입맛이 없으세요?"

    "응. 그러네."

    "그럼 라면 제가 먹을까요?"

    "그러려무나."


이 그림보다 국물 색은 더 진했다. 약한 비위는 자주 배를 곯게 만든다.


    후배는 내 라면까지 다 먹어 치우고는 국물이 아까웠던 모양이었다.


    "아줌마, 밥 한공기만요."


    아줌마는 마치 후배와 호흡을 맞춘 것 마냥 자연스럽게 개수대에서 씻지 않은 주걱을 꺼내 털털 털더니 언제 해 놓았는지 모를 찬 밥을 불이 꺼져있는 보온밥통에서 퍼내서 주걱채로 들고 와 그대로 후배의 그릇에 넣어 주었다.

    급기야 테이블 위의 모든 그릇을 깨끗이 다 비워버렸다.


    '쟤가 입으로 설거지를 다 해 버리네…'


    "형, 배고프다고 안 하셨어요?"

    "어? 아니야, 형은 너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 야."


    식사를 마친 우리는 공간에서 차를 빼어 각자의 일터로 돌아갔다.

    비위가 상한 나는 그날 저녁에도 그다음 날 아침에도 밥을 넘기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았다.

    밥을 삼키지 못한 데는 죄책감도 한몫했다.

    동생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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