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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Jun 02. 2024

아모르빠띠

mayol@골계전 13. 김여사님들과의 전쟁

  그날도 오래된 책 몇 권을 소중하게 포장해 배낭에 넣고는 숙소로 돌아가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심산이었다.

  시골 이쪽에서 저쪽으로 유랑생활을 많이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직행버스를 많이 타게 된다.

  배에서 곯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나는 버스 맨 뒷자리에 자리를 틀고 앉아서 두 팔을 앞자리에 걸친 채 버스기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고파...'


  그때 목소리 하나가 굵직하게 들려왔다.


  "어, 나요. 그래. 마음이 자꾸 고마워. 아니, 아니. 내 마음이 자꾸만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요."


  구수한 평양 사투리로 고속버스 안을 울리는 6번 좌석 아주머니의 말씨는 세련되어 보였다.

  아줌마가 전화를 끊자마자 또 전화벨이 울리는데 음량이 거의 메미떼의 합창처럼 크고 요란했다.


  [삐삐리리 삐삐리리 아모르빠띠.. 삐삐리리 우뚜따따 삐삐리리 아모르 빠띠~]


  귀에 익은 벨소리였다.

  일부러 천천히 받는 건지 아니면 저 큰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인지, 점잖은 평양 아줌마는 휴대폰을 감싼 가죽커버를 천천히 열고 팔을 쭉 뻗어 선글라스 너머로 눈을 찡그려 발신자를 확인 후 다시 커버를 닫고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댔다. 그사이 아모르 빠띠는 계속 울렸다.

  그렇게 평양 아줌마의 구수한 대화를 엿듣고 있던 그때, 한 아줌마가 다급히 버스 운전기사를 찾았다.


  "아니, 여그 이 바스는 시동을 걸어블고 어디 갔당가. 이 바스 운전수는 딱 출발시간 맞춰 오는갑제?"


  아주머니는 발바닥을 덴 촌닭처럼 버스 입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연신 중얼거렸다.

  그때 버스기사가 나타났는데 시계를 보니 출발 1분 전이었다.


  "아니, 안됭당게요. 이건 소포로 보내야지 지한테 맡기면 안됭당게요. 아, 바빠 죽겠는데... A, C!"


  버스기사의 퉁수에도 아랑곳 않고 아주머니는 휴대전화를 운전기사의 귀에 갖다 댔다.


  "아, 예! 시방 무신 말씀인지 잘 알겄지만, 저한테 맡겨블고 제 시간에 터미널로 찾으러 오는 사람이 열의 한 명 될까말까 한당게요. 걍 소포로 붙이고 보관소에서 찾아가면 편한디 왜 꼭 굳이 이것을 나에게 던져블라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당게요."


   버스는 이미 출발시간을 넘겼고 4번과 5번 좌석에 나란히 앉은 일본인 자매 둘은 몹시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모르 빠띠 삐삐리리 삐릴릴리~]


   여행객인 듯한 일본인 자매는 영문도 모른 채 전화벨에 맞춰 연신 어깨를 흔들었다.

   아모르 빠띠라는 노래는 가수 김연자씨가 일본의 가요계를 평정하고 귀국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위원장까지 만나고 와서 발표한 노래여서인지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꽤나 유명한 모양이었다.


   "아따, 아줌씨! 짐 들고 얼른 이리 따라오쇼~잉!"


   운전기사는 아줌마를 데리고 대합실로 사라졌다.


   [아모르 빠띠 삐삐리리 삐릴릴리~]


   한참이 지나서 기사와 아줌마가 다시 버스에 나타났다.


   "긍게, 아줌니, 6천원을 절 주시면 된당게요."


   아줌마는 몸빼바지 안에서 현금을 빼내어 손에 쥐고는 운전기사를 째려봤다.


   "그냥 버스 빈자리에 태워 실어가면 될거슬 무슨 돈을 육천원이나 받아 쳐 묵는다냐."

   "아이고, 아이고. 그게 아이고라고라고라. 내가 시방 이 짐을 접수해줬당게요. 긍게 그 돈을 시방 나에게 줘야 한당게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버스기사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또박또박 힘을 주며 운전석에 들어가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이런 와중에도 평양 아줌마의 전화기는 쉬지를 않았다.


   [아모르 빠띠 삐삐리리 삐릴릴리~ 아모르 빠띠 삐삐리리 삐릴릴리~]


가수 김여사님은 마이크를 입에서 멀리 떼고 노래를 부른다. 그래도 시끄럽다.


   "아이씨방, 거기 아줌니!! 전화기는 진동으로 하랑게요!!!"


   동시에 두 아줌마를 상대하고 있는 운전기사의 눈은 초점을 잃었고 코와 귀에서는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아, 알았응게 터미널로 꼭 찾으러 오쇼, 잉?!  도착시간에 맞춰서 꼭 오시랑게요!"


   버스기사에게 짐을 맡긴 아주머니는 딸과의 통화소리를 듣자 안심했는지 버스에서 떨어져 굽은 허리를 연신 두드리며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승객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제 우리 바스 출발합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 되시게요!"


   평온을 되찾은 버스가 출발시간을 한참 넘겨 가까스로 터미널을 빠져나왔고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 마지막 신호등에 걸려 덜덜 거리고 있었다.

   그때 버스기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네~에??? 뭐라고요? 아, 네..."


   버스기사는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쭉 뻗어 멍하게 바라보았다.


   "이 전화기가 시방 왜 내 손에 있능겨..."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버스기사의 초점 잃은 눈은 먼 산만 바라보았다.


   [아모르 빠띠 삐삐리리 삐릴릴리~ 아모르 빠띠 삐삐리리 삐릴릴리~]


   버스 기사는 한참 동안 신호등 앞에서 움직이지 않다가 포기한 듯이 휴대폰을 콘솔박스에 던져 넣고는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그 와중에도 평양 아줌마의 벨 소리는 끊임없이 울려댔고 일본인 자매의 어깨는 덩실덩실 좋아 죽었다.

   그날 버스 안에서 힘들어 한 사람은 운전대를 격하게 움켜잡은 버스기사와 곯은 배를 움켜쥔 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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