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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May 19. 2024

새벽 다섯 시에 오는 문자

mayol@골계전 11. 도대체 왜

    며칠 전에는 작업실로 장가 안 간? 친구가 오랜만에 놀러 왔었다.

    장가를 안 가는 건지 시집을 안 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모테솔로인 친구다.

    손에는 막걸리 몇 병과 홍어탕이 들려있었다.

    나는 홍어 냄새조차도 못 맡는 사람이니까 내가 먹을 안주는 분명히 아니었다.

    친구가 다녀간 뒤에 작업실에서 홍어 냄새가 다 빠지는데는 며칠이 걸렸다.

    두리안을 호텔로비에서 까 먹을 수도 있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눈치'라는 걸 별주부전의 토끼처럼 땅에 뭍어 두고 다니는 친구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런데 이 친구와는 달리 눈치는 좀 있는데 여태 장가를 못가고 이해할 수 없는 문자들 때문에 당황스러워한 후배가 하나 있었다.


    장사하는 가게도 있고 제법 돈벌이를 하는 데다가 늘 결혼할 꿈에 부풀어 살고 있는데, 쫓아가면 도망가고 다가오면 뒤로 물러서는 바람에, 본인 말로는 아직도 숫총각 딱지를 못 떼고 있다는 후배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삼형제가 모두 장가를 못가고 한 집에 뭉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이젠 순서고 뭐고 없어요. 막내지만 저라도 먼저 갈 생각입니다.”

    “그래서 요즘 만나는 여자는 있어?”


    후배는 술을 한 잔 들이키더니 안주로 나온 양념 닭발을 들어 한입에 발골을 해 털어 넣고는 입을 열었다.

    한동안 뜸하다가 최근 들어서 두 명의 여자를 연달아 소개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첫 번째 여자는 후배도 관심을 가질만한 외모와 소양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했고 자신의 엄마 그러니까 미래의 장모님까지 장사하고 있는 가게에 모시고 와서 소개를 했다니 설명하지 않아도 후배의 기분이 얼마나 좋았을지 짐작이 되었다.

    그렇게 몇 번의 데이트도 무난히 마쳤고 드디어 정한 마음을 통보할 기회를 엿보고 있을 때였다.

    늘 그렇듯이 늦게 가게 문을 닫고 돌아와 곯아떨어져 자고 있는데 새벽 다섯 시에 갑자기 휴대폰에서 문자 메시지 소리가 들려왔단다.


    [막내 씨, 우린 그냥 친구로 남는 게 좋겠어요. 그동안 정말 즐거웠어요. 고민 끝에 보내는 문자이니 답은 안 하셔도 됩니다. 이해해주시기 바라요.]


    잠이 확 달아난 후배는 문자를 몇 번이고 읽으며 ‘다른데 보낼 문자를 잘 못 보냈나’하는 의심까지 했다.


    “뭐? 새벽 다섯 시에?”


    그 얘기를 들은 내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보통 자정 전후로나 새벽에 전화나 문자가 온다는 건, 가족 중에 사고를 당했다거나 지인 중에 느닷없이 상을 치르는 일이 발생해 연락해 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몹시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친구로 지내자면서 답을 하지 말라니.


    “그러게요. 새벽 다섯 시에 보냈지 뭐예요.”

    “그러게. 이해가 안 되네. 멀쩡한 시간 다 놔두고 새벽 다섯 시에 그런 문자는 좀 심했다. 당황했겠어.“

    “그날 하루는 화도 나고 불쾌해서 씩씩거렸는데 뭐 어쩌겠어요.”


    다시 한 잔씩 잔을 채워 들이키고 차례로 닭발을 들어 발골을 시작했다.

    닭발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누구 욕하고 싶을 때 닭발을 먹으면 저절로 스트레스가 풀리곤 한다.

    닭발은 늘 중지를 들고 있으니까.

    어쨋거나 후배의 심란한 표정과는 달리 닭발은 양념이 잘 배어서 맛이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 소개받은 여자는 어땠어?”

    “아, 형님에게도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한참 데이트할 때 자랑삼아 말씀드렸었죠.”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났다.

    후배 입이 좌우로 쩍 벌어져서 마치 저팔계처럼 헤벌쭉 웃으며 지나가던 날이었다.


    “동생, 뭐 좋은 일 있어?”

    “아, 예. 형님, 저 요즘 데이트하잖아요. 우하하하.”


    두 번째 소개받은 여자는 그냥 노는 여자라고 했다.

    중산층 가정에서 곱게 자란 공주과였지만 그냥 놀기만 하는 게 아니라 꽃꽂이와 수영 등으로 건강과 교양도 챙기는 여자라고 자랑 아닌 자랑도 곁들이면서.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순탄한 데이트를 즐겼고 딱히 문제 될 일이 없어 보여 안심하고 노는 여자에게 청혼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로부터 이전 여자와 거의 똑같은 내용의 문자가 온 게 아닌가.

    [그동안 즐거웠지만 친구로 지내자. 대신 연락을 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으로.

    더욱이 놀라웠던 점은 문자가 온 시각이 새벽 다섯 시라는 것이었다.


    “형님, 왜 여자들은 새벽 다섯 시에 이별을 통보하는 것일까요?”

    “그러게. 내가 살다 살다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 야.”


    그렇게 후배와 술잔을 비우고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은 새벽 다섯 시에 멈춰서 꼼짝도 안 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책상에 앉아 원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도 문득문득 그녀들의 ‘새벽 다섯 시’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녀들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동생이 그 시각을 암시라도 한 것은 아닐까.

    원고 정리는 뒷전이었고 멍한 시선은 컴퓨터를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그녀들의 ‘새벽 다섯 시’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앉아있자니 피로가 몰려들어 그만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 누우며 후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난 아무래도 그 원인을 찾지 못하겠다. 만약에 네가 그 시각을 이용해 뭘 암시한 게 아니라면, 두 여자가 같은 시간에 이별통보를 할 확률이 몇이나 될까? 한 번 곰곰이 생각해봐. 왜 그녀들은 그 시간에 너에게 이별을 통보했을까… 아무튼 형은 한동안 원고 마무리 때문에 술을 못할 것 같아. 내가 연락할 때까지 연락하지 마라. 잘 지내고.]


    그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배시시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내가 후배에게 문자를 보낸 시각이 정확히 새벽 다섯 시더라고. 허…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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