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욜 MaYol May 05. 2024

미봉책彌縫策

mayol@골계전 9. 그런 나라에 사는 사람들

    수현형은 태어날 때부터 눌려있던 콧대가 빗물받이 역할을 한다는 이유로 이른 시기에 콧대를 세웠다.

    그래서인지 마치 다비드상의 코를 떼와서 동양인의 넙데데한 얼굴 한 복판에 붙여놓은 듯 존재감이 뿜뿜 했다.

    또한 감은 듯 뜬 듯 보일 듯 말듯한 뱁새눈은 사설업체에서 그어놓은 굵은 쌍꺼풀 덕에 아주 부리부리해졌다. 그 덕에 함께 마주 앉아 대화를 하고 있으면 자꾸만 눈을 깜빡거리게 된다. 일부러라도 눈을 자주 깜빡거려 형의 부리부리한 눈에서 나오는 광선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는 나름의 잔머리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수술 후유증으로 눈을 제대로 감지 못하고 대화 내내 나에게 떨리는 듯한 윙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소 등뼈를 연상하게 만드는 다비드의 콧등으로 자꾸만 시선이 가서 그러는 게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일찍이,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이라,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살았는데, 어느 날엔가는 해외 모처에서 밤길을 서성이다가 떼강도를 만나 이빨을 죄다 털어주고 대신 틀니를 얻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전의 수수밭 같은 이빨보다는 몹시 고른 치아를 가지게 되어서 단단하고 질긴 음식을 잘 씹어 먹지 못한다거나 가끔 심하게 재채기를 할 때 틀니가 입술 밖으로 살짝 탈출하려는 몇 가지 불편함을 제외하고는 누가 봐도 희고 고른 치아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십여 년 전에는 국내로 들어와 인테리어 사업이라는 것을 새로 시작했었다.

   일을 수주받아 경기도 모처의 공사장에서 비계에 매달려 일을 하다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정강이부터 엉덩이 관절까지 산산조각이 나 대대적인 수술을 받았고 그 덕에 오히려 그전보다 자세가 반듯해져서 당당해 보인다는 장점도 추가되었다.

    그 사고로 인해 한 가지 더 득템 한 것은, 당시 공사장에서 떨어질 때 튀어나온 철판 끝에 이마의 일부분이 쓸리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 덕분에 마운틴고릴라처럼 좁았던 이마가 시원하게 넓어지는 행운이 뒤따른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골프를 갓 배운 형은 분당에 있는 모 골프장 파 3홀에서 롱기 longest를 해 보겠다며 냅다 드라이브를 휘둘렀고 그렇지 않아도 부실했던 허리뼈가 차례로 트위스트를 추면서 며칠 후에는 척추에 철심을 박는 큰 수술까지 거뜬히 참아낸 입지전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수현 형과의 대화는 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몸을 오싹하게 하는 짜릿함이 있었다.


    "요즘 몸은 어떠세요?"

    "너도 알다시피 내 인생 자체가 다 미봉책 아니겠어. 군데군데 응급조치만 해 놔서 어디 쑤시지 않은 곳이 없다. 아주 죽을 맛이야. 그때그때 끼워 맞춘 미봉책들이 올 들어 더 삐그덕거리네."

    "병원은 잘 다니시고요?"

    "그럼. 집을 아예 종합병원 근처로 옮겼잖아. 매일 출근하다시피 해. 최근에는 혈압약에 뇌졸중약까지 먹어야 한다니 통증약이랑 함께 꺼내놓으면 밥보다 많다니깐."

    "이제 술은 못하시겠군요."

    "아냐, 마셔. 차 다 마시고 한 잔 하러 가자고."

    "예? 어쩌시려고요."

    "날짜 받아놓고 죽는 사람이 어딨어. 조심해도 앞서가는 사람이 지천이야. 걱정 말어."

    "그렇게 술이 좋으세요. 그나마 몸이 그만한 게 참 다행이에요."

    "뭐가! 다음 주에는 후장 전문 병원에 가야 해. 술을 너무 퍼마셔서 치질이 생겼다나 어쨌다나. 이제는 똥구멍까지 꿰매야 할 판이야. 좋은 시절 다 지났어. 젠장!!"


    과연 형에게서 '좋은 시절'은 언제였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기간을 골라내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형과 찌릿찌릿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데 수염을 길게 기른 어떤 남자분이 우리 둘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와 말을 걸었다.


    "도를 믿으십니까?"


   우리 둘은 대화를 끊고 불쑥 끼어 들어온 점잖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도인이 수현 형을 훑어보더니,


    "하... 드문 관상이로고. 선생님은 참 훌륭한 관상을 가지셨습니다. 치아도 고르시고 세상 행운을 다 가진듯한 오뚝한 콧날 그리고 곧은 허리와 넓은 이마까지. 큰 일을 하실 분입니다."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도인의 칭찬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수현 형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도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러더니 틀니를 몽땅 빼서 커피잔에 담그며 입을 오물오물했다.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밥 대신 고생을 더 많이 먹은 덕에 세상을 훤히 꿰뚫어 볼 수 있게 됐다는 걸 하룻강아지 도인이 알 턱이 있겠나. 

    수현형은 주먹을 불끈 쥐고 남자를 노려봤고 도를 넘어선 도인의 눈꼬리와 수염은 한없이 늘어져 땅바닥에 붙어버렸다.


    형의 파란만장한 인생도 인생이지만 형과의 대화를 떠 올리면 늘 함께 따라오는 생각이 있다.

    미봉책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어떤 나라와 그 속에서도 악착같이 견디며 사는 사람들 말이다.

이전 08화 기호학적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