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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Dec 18. 2024

우리집

mayol@hairpin 10. 잠을 깨우는 토실이

우두머리 병정개미가 더듬이를 좌우로 흔들자 보경이의 눈이 따끔거리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짖고 있는 토실이가 보였다. 그리고 두 계단 아래에는 또래의 여자아이가 씩씩대며 서 있었다. 처음으로 본 반장의 얼굴이었다.


"네가 반장이구나."

"뭐라고? 그래 내가 반장이다. 머리핀과 옷과 그 구두 전부 내놔!"


계단 아래에는 막대기에 의지한 채 몸을 떨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주인도 보였다.

우두머리 병정개미가 보경이를 올려보았다.


"너는 이제 가도 좋아."


우두머리가 다시 한번 더듬이를 움직이자 흩어졌던 병정개미들이 모여 줄줄이 반장의 발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반장의 입 주변을 물기 시작했다.


"뭐야, 이 개미새끼들. 내 입술에서 떨어지지 못해! 떠러지...라...그..."


병정개미들은 보경이의 눈을 물었던 것처럼 반장의 입을 단단히 물고 매달렸다. 그러자 입술이 붉어지면서 달라붙어 버렸다. 또 한 무리의 병정개미들은 계단 아래에서 막대기를 두드리고 있는 주인에게로 다가가 얼굴로 기어올랐다. 그리고는 보경이에게 한 것처럼 눈을 물기 시작했다.

말을 할 수 없게 된 반장은 눈물을 훔치며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가 막대기에 의지해 몸을 떨고 있는 주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순영아, 순영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앞이 안 보여."


주인이 반장에게 아무리 말을 걸어도 반장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우두머리를 따라서 병정개미들이 열을 지어 풀숲으로 사라져 버렸다.


"얘, 얘. 보경아. 우리 좀 도와줘. 우리가 잘못했어."


주인이 반장의 얼굴을 더듬거리며 애원을 했다. 보경이가 머뭇거리자 토실이가 보경이의 치마를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왜 그래, 토실아."

"도와주면 안 돼. 다 거짓말이야. 거짓말로 사는 사람들이란 말이야."


토실이를 끌어안는 보경이의 눈에 왠지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둘은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길로 들어섰다.


"토실아, 궁금한 게 있어. 너는 왜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그래?"

"나도 몰라. 집에서 멀어지면 나도 모르게 몸이 커졌다가 가까워지니까 다시 작아지네."

"주인이 사는 집에서도 작아진거 맞지?"

"응. 다시 작아졌었어. 마치 아기가 된 것처럼."

"왜?"

"모른데도. 네가 도움이 필요할 때만 내가 커지나?"

"크크크. 지금 네 도움이 필요해. 빨리 커져라, 얏!"


토실이가 보경이의 품에서 뛰어내리더니 집으로 달려 들어갔다.

대문은 보경이가 나올 때처럼 열려있었다.

벚나무 아래에 앉아 하늘을 올려보았다.

바람에 연분홍색의 벚꽃이 파르르 떨리더니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계단을 내려오며 엉망이 된 모습으로 마당에 앉아 있는 보경이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머머머, 얘가 왜 이래. 엄마 설거지 하는 사이에 나갔다가 온 거야?"


토실이가 달려가 엄마의 다리에 몸을 비벼댔다.

엄마는 토실이와 보경이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안방에서 소형 텔레비전을 보던 아빠가 스위치를 만지자 볼록한 브라운관 화면이 까만 원을 그리며 꺼졌다.

엄마의 주변을 맴돌며 지난 며칠 동안에 벌어진 일들을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웃기만 했다. 안방에서 나온 아빠도 빙긋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엄마, 엄마. 진짜라고. 우이씨. 내 말을 안 믿어. 주먹 돌리기 한 번 해볼까!"


보경이가 두 주먹을 쥐고 관자놀이 누르는 시늉을 하자 토실이도 덩달아 짖으며 뛰었다.


"알았어. 알았어. 엄마는 우리 보경이 말을 믿지. 호호. 토실이가 말을 했다고 했지? 토실아, 말해봐. 어서. 호호호."

"멍멍멍!"

"으이구, 우리 토실이. 엄마 말귀는 알아듣네. 호호호."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보경이는 낮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봄과 여름과 가을이 차례로 지났다.

토실이도 어느덧 어른스러워져서 짖고 다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어두워진 눈은 언제나 창밖을 향해 있었다. 보경이가 머리핀을 눌러도 귀만 쫑긋거릴 뿐 뛰어오는 일도 드물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어슬렁어슬렁 보경이에게 다가와 엉덩이를 붙이고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첫눈이 내리는 밤이었다.

보경이가 입을 벌리고 곤히 잠을 자고 있는데 토실이가 얼굴을 핥았다.


"왜 그래. 나 졸려."

"미안해. 하지만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

"무슨 일?"

"우리 엄마를 찾아야지. 엄마가 걱정돼."

"엄마?"

"응. 반장이 우리 엄마를 팔았다고 했잖아. 가서 데려오자. 여기서 함께 살고 싶어."

"… 그래."


눈을 비비며 일어난 보경이가 머리카락 사이로 머리핀을 단단히 끼워 넣었다.


** 다음 이야기는 [머리핀의 모험]을 통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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