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트는 단순한 하나의 제도가 아니라, 총체적인 문화이다.
최근 “리모트는 조직에 마이너스다” 라는 취지의 글들을 종종 본다. 일견 이해가 가면서도 애자일이 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아무렇게나 해보고 애자일은 현실에 맞지 않다고 말하던 역사가 반복되는 걸 보는 듯한 불편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그렇게 느꼈을 이유도 충분히 이해된다. 대부분의 조직은 리모트라는 옷을 자의로 입지 않았다. COVID-19라는 특수한 상황에 의해 강제된 옷이었고, 진지한 고민 없이 도입했고, 코로나로 인해 변화한 시장 상황과 그로 인해 한동안 유지되던 구직자 우위의 시장 환경에서 물들어온 김에 노젓겠다고 풀리모트를 채용공고에 근로조건으로 내세워 구직자들을 유혹했다. 영리하다면 영리한 플레이겠지만 한편으로 치사한 행태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앞으로도 많은 회사는 리모트가 맞지 않는 옷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진지하게 리모트를 잘 운영하고자 고민하는 조직들에겐 누군가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풀 리모트가 가능한 회사를 초반부터 함께 만들어가며 느낀 점을 정리하고 싶었다.
구성원이 조직에 유효하게 기여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맥락에서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많은 회사들이 코로나 기간동안 회의실마다 화상회의 장비를 도입했지만 리모트 지향적 문화는 갖추지 못했다. 회의실에서 회의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은 자기들끼리만의 논의를 이어가고, 리모트 참여자가 논의에 참여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했다.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발화의 시차가 발생하고, 제스추어 등으로 중간에 개입하는 게 어려운 상황에서 리모트 근무자들은 점점 침묵으로 떠밀렸다.
거기에 더해 회의 중 논의 내역이나 결정사항 등이 기록으로 남지 않는 경우도 흔했고, 옆으로 슥 찾아가서 대면 협의 후 일을 진행하고 기록을 남기지 않는 문화 역시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리모트 참여자들은 맥락에서 지속적으로 배제되고, 유효하게 일할 수 없게 되어 결과를 도출하기 어렵게 되자,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게 되고 숨게 된다.
리모트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리모트 퍼스트" 문화를 갖춰야 한다. 내가 일했던 조직에서는 사무실에 출근했더라도 한 사람이라도 리모트면 각자 화상회의로 들어가는 배려를 트레이닝 했다. 그래서 폰부스는 언제나 만석이었다. 마찬가지로 리모트 근무자는 항상 노이즈가 인입되지 않을 조용한 회의 장소에서 회의에 참가할 책임이 있었다.
의사결정의 진행 과정과 그 결정 내용이 기록으로 남는 것 역시 중요하다. 당시 의사결정의 최종 내용을 하나의 완결된 문서로 정리하는 역량은 부족했지만, 적어도 상당부분의 결정이 슬랙 스레드 상에서 이뤄졌고, 최종 결론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사무실에서 같이 있지 않은 사람들도 맥락을 따라잡을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동료가 업무 진행 상 어려움에 처했을 경우 언제든지 슬랙상으로 다른 동료들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고, 가능한 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려 노력했다. 팀 차원에서 챙기기로 한 습관 형성을 위해 번갈아 당번을 맡으며 잘 챙겨지지 않는 부분들을 서로 리마인드 해줬다. (우린 이걸 "빠따를 때린다" 라고 했다)
이러한 조직적 장치에 더해, 무엇보다도 그 일을 자신의 일로 온전히 맡아서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조직에 대한 신뢰와 그 일의 의미를 충분히 공유하고 있어야 했다. 왜 지금 그 일을 하려고 하는지, 어느 수준으로 하기를 기대하는지를 잘 알아야 내가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지를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매주 개밥먹기를 했고, 고객의 목소리가 수집된 게시판을 매주 리뷰하며 새로운 니즈와 기존에 해결되지 않은 니즈, 고객의 참신한 제안 등을 살피며 고객의 니즈를 점점 더 깊이 이해해갔다. 때론 내가 들어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문제들을 겪고 있었고, 바로 해결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퇴근을 망설이게 한 때도 있었다. 물론 고객의 모든 니즈를 그대로 반영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하는 일이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지는 누구나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리모트로 일하는 구성원들은 자기가 연결을 끊고 깊이 들어가는 시간과 타인과 넓고 얕게 교류하는 시간을 충분히 주도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었다. 주도적으로 자신의 일을 통제할 수 있는 구성원은 조직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올라갔고, 오히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의 반응성은 훨씬 더 높게 유지할 수 있었다. 모두가 달려들어 함께 합심하여 문제를 풀려고 했고, 귀찮고 까다로운 일조차 나눠서 책임감 있게 해냈다.
결국 리모트가 잘 돌아가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새로 들어온 사람이, 혹은 다른 타임존에 있는 사람이 업무에 잘 적응하고 일의 의미를 쉽게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리모트가 잘 안된다는 건 단지 리모트만 안되는 게 아니라, 다른 무언가도 잘 안되고 있을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어쩌면 리모트는 조직의 문화적 취약점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광부들과 함께 갱도로 들어간 새장 속 카나리아일 수도 있다.
오해가 있을까봐 첨언하자면, “리모트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우월한 문화다” 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리모트라는 옷은 라이브러리 하나 도입하듯 쉽게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모든 조직이 꼭 그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특히 미숙한 영역이 많은 스타트업에 리모트라는 짐까지 추가로 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본다. 다만 “리모트가 조직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이라는 일반화에 대해서는 이견을 제시하고 싶다. 꽤 다른 업무 방식이고, 그 방식을 충분히 훈련해야만 유효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