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의 소통으로 자란다
니체는 매일 7시간씩 쉼 없이 산책을 했다. 니체는 스위스의 작은 마을을 걸으며 알게 된 행복감을 친구에게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나는 나 자신을 훨씬 뛰어넘었지. 마침 숲속을 지나가던 한 남자가 나를 무척 유심히 보더군. 그 순간 내 얼굴은 넘치는 행복으로 빛나고 있었을 거야." -니체와 함께 산책을 中 -
“엄마 오늘은 산책 안가?”
늦어지는 산책 여부를 묻는 큰 아이에게 조용히 눈치를 준다. ‘동생이 자면 바로 나가는 거야.’
알아들은 아이는 끄덕이며 조용히 기다리곤 한다.
나는 아이와 매일 밤 9시~10시, 약 4.5km 산책을 한다. 횟수로 벌써 3년째 되어간다.
밤공기를 맞으며 느껴지는 식물의 향기와 풀벌레 소리.
산책은 마치 지구라는 스노볼 속에 들어온 것처럼 우리가 자연과 하나가 되고, 진정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는 일이다.
아이에게 밤 산책은 어떤 시간적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첫째, 아이의 마음이 열리게 하는 시간이다.
걷다가 서로의 손이나 어깨가 살짝 닿게 될 때 놓치지 말고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아주자.
자연스럽게 어깨에 손을 얹거나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부드럽게 만져도 주자.
아이는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보호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부모의 따스한 평온함을 느끼며 걷던 아이는 하루 동안 있던 일이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있던 자질구레한 일들부터 친구의 말에 대한 아이의 생각들.
심지어 이성 친구 중 누가 마음에 든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기도 한다.
산책 중 평소에 조용한 아이가 갑자기 터져버린 봇물처럼 수다쟁이로 바뀌는 것을 수차례 경험했다.
거기에 적절한 호응을 곁들이면 수다쟁이는 신나서 이 말 저 말 끄집어내며 쉴 새 없이 대화를 하곤 했다.
만약 집안에 YES or NO 로만 대답하는 ‘남자아이’가 있다면 밤 산책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둘째, 아이의 두뇌가 쉬어가는 시간이다.
뇌 과학 전문가들은 산책이 지친 뇌를 회복시키고 정상으로 되돌려 준다고 한다. 생활 속 끊임없이 쏟아지는 생각들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한 가지를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대기 중인 다음 것을 생각해야 하는 아이들이다. 어쩌면 지금 자신의 사고방식이 맞는지조차 느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아이 두뇌가 게으른 휴식을 누리게 하는 산책이 필요한 이유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의 자화상 中
평소 명상을 해 본 적이 없어도 밤 산책을 하다보면 명상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달을 보거나 가로등 아래 벤치에 앉아 들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면 그렇게 된다.
앞서 언급한 생각하는 시간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평소 아이는 정해놓은 패턴대로 반복하며 일상을 보낸다.
산책 중 갑자기 나타난 것들에 시선이 뺏기다 보면 자신을 내려놓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특별한 시간으로 변하게 된다. 그렇게 사색 속으로 빠지기도 하고 또 다른 영감을 얻어내는 아이가 된다.
셋째, 아이가 자연을 알아가는 시간이다.
산책은 뜻밖의 발견이다.
평소 자연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 아이에게 낮과는 색다른 재미를 제공하는 외출이다.
매일 같은 길을 걷더라도 지루하지 않다. 나무 잎 색깔이 서서히 변하고 계절 별로 피는 꽃이 다름을 알게 된다.
봄날 산책 중 아이는 개구리 알과 도롱뇽 알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 후엔 알들이 사라져 버렸다. 아쉬울 틈 없이 다음 산책 때는 까만 올챙이 떼들이 보였다.
그렇게 또 며칠 뒤 산책 때는 개구리가 목청껏 울어대고 도롱뇽이 휘젓는 것을 보며 생태계를 느끼고 자연의 흐름을 배워갔다.
아이와 장지천 청둥오리 떼를 관찰한 적도 있다.
어미오리가 앞서 가면 새끼오리 떼 7마리가 요리조리 줄지어 따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새끼오리 한 마리가 뒤쳐져서 다른 곳에 가버리는 게 아닌가? 어떻게 되었을까?
신기하게도 어떻게 알아챘는지 어미오리가 되돌아 새끼오리를 챙겨 무리로 데려오는 모습도 보게 되었다.
양재천 산책을 하다 운이 좋으면 도마뱀과 맹꽁이, 청솔모를 만나 숨죽이며 지켜보기도 했다.
사람과 똑같이 동물이 자식을 사랑하는 모습, 모든 생명은 동등하게 소중하다는 가르침. 자연에서 함께하는 모든 것들의 ‘귀함’을 저절로 알게 되는 시간. 돈 들여서 하는 ‘숲 체험’이 부럽지 않은 환상적인 시간들.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는 어긋날 수 없다.
대화를 통해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자연스럽게 전달되고 서로 만의 공통분모도 만들어 간다.
이렇게 다져진 끈끈함으로 그 까짓 청소년기도 헐렁하게 지나쳐 보내준다.
‘사랑한다’ 고 말하는 순간 상대가 더욱 사랑스러워지는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다. 사랑한다면 대화하자.
*산책 덕분에 유독 자연과 동물에 관한 내용이 많은 편인 아이의 글을 소개합니다 ^^
▶2022년, 11살 때 쓴 시
제목 : 봄의 아침
한 해가 시작됐다.
봄의 아침이 떠오른다.
촉촉한 안개가 낀 땅에서 초록색 손을 뻗는다.
푸릇푸릇한 하늘에선 재잘재잘 새들이 노래를 잘도 부른다.
잠 다 잤다!
깨어난 동물들도 부스스~ 일어나며 아쉬워한다.
나도 너도 방학 끝나 아쉬워한다.
새로 만날 선생님, 친구 생각에 설레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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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여름의 아침
봄의 아침이 지고 여름의 아침이 시작된다.
초록손이 뻗어나가 어느새 나무로
다시 일꾼이 된 개미와 곤충들
아이 좋아! 방학이다!
아이들은 그저 웃는다.
하루만 지나면 여행 간다.
캠핑가요! 수영장 가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세상 끝까지 갈 건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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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가을의 아침
풍성하던 초록 나무가
언제부턴가 빨강, 노랑 염색을 시작한다.
열기가 사라지고
캐나다 세상으로 변해간다.
점차 동물들도 숨바꼭질을 하나
잘 보이지 않는다.
한강의 돗자리도
캠핑장 텐트도 서서히 사라져 간다.
하늘에서 새하얀 솜뭉치가 내리면서
가을을 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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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겨울의 아침
눈이 내린 아침부터
너와 나의 눈덩이가 오간다.
스르륵- 눈을 가르며 썰매를 탄다.
징글벨 노래 부르며 빨리 달려간다.
12월 24일 겨울밤.
아이들은 설레어서 잠이 든다.
동물들도 깊은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