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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대로 May 30. 2022

아기 코뿔소와 아침 산책하기.


먼 옛날, 저 멀리 아프리카 대륙의 끝에 동물을 사랑하는 여자가 살았다.

어느 날, 그녀는 갈 곳이 없어진 치타들을 자신의 사유지에 거둬들인다. 그녀는 치타들을 돌보기 위한 보호소를 세웠다. 머지않아 치타 외에 코끼리, 코뿔소, 아프리카들개를 비롯해 다양한 동물들이 보호소의 지붕 아래로 흘러들어왔다. 작은 보호소는 커다란 센터가 되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학생들이 동물들을 보고, 또 그들에 대해 배우기 위해 몰려들었다.


조금 덜 옛날, 저 멀리 아시아 대륙의 끝에서 빼빼 마른 청년이 찾아왔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동아시아인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청년에게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너희가 우리 동물들을 다 잡아먹느라 우리나라에서 밀렵이 사라지지 않는다. 청년은 대답했다. 오해입니다. 우리는 개만 먹어요.


한창 새내기 생활을 끝마치고 제2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던, 7 년 전의 나였다.  



학생 신분으로 나는 센터에 3 주를 머물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크루거 국립공원에 위치한 H 멸종위기종보호센터였다. 내가 주로 담당한 것은 치타들의 먹이 준비였다. 치타들에게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저품질의 소고기를 주었다. 야생의 먹잇감에 비해 지방은 많았고 영양분의 다양성은 부족했다. 반쯤 썩은 소 토막에서 지방을 걷어내고 영양제를 뿌려 각 구역에 던져주고 다 먹으면 뼈를 수거해 오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일은 절대 쉽지 않았다. 평생 맡을 썩은내는 전부 맡았던 것 같다. 새벽부터 구더기와 분변이 가득한 내장과 뼈 사이를 맨손으로 비비는 느낌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냉동고 안에는 온갖 로드킬 당한 동물들이 가득했다. 구석에서 앞발을 내민 채 얼어붙어 있던 표범의 얼굴이 기억난다. 이빨과 손톱을 뽑아 지역 주술사에게 팔 예정이라고 했다. 잠시 숨을 돌리러 건물 밖으로 나오면 바닥이 울렁거리고 있었다. 흘러나온 피에 모여든 구더기가 바닥을 뒤덮은 것이었다. 펴본 적 없는 담배가 너무나 고팠다.

게다가 고객(?)들은 비협조적이었다. 어릴 때는 누가 만져도 신경도 안 쓰던 치타들은 사춘기에 들어서는 순간 사나워졌다. 때때로 맨손으로 고기를 들고 케이지에 들어가야 했다 (치타들은 빨리 달리기 위해 뼈 안이 비어있고 빈말로도 정면 전투에 강한 편은 아니다. 게다가 눈앞에서 마주하면 알겠지만 의외로 체구가 작다. 즉, 치타 입장에서도 나에게 함부로 덤빌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게 나한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하루하루 너무나 즐거웠지만 동시에 너무나 집에 가고 싶었다.


가끔씩 코뿔소와 함께하는 아침 산책은 크나큰 위안이었다. 센터에는 밀렵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 코뿔소 두 마리가 있었다. 허리 높이에 오는 녀석 하나, 무릎 높이에 오는 녀석 하나. 그때까지만 해도 젖먹이였고 24시간 누군가가 끼고 있어야만 했다.


인간 외에도 녀석들에게는 문자 그대로 양 부모가 있었다. 커버 이미지의 코뿔소들 궁댕이 뒤쪽에 있는 양이 바로 그 녀석이다 (염소였나?). 덕분에 코뿔소들은 스스로 양이라 여겼다. 폴짝폴짝 뛰는 양들을 따라 펄쩍펄쩍 뛰면 땅이 울렸다. 정말 나만 보기 아까운 장면이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내게 있어서는 큰 영감을 준 시간이었다.  현재 나는 영국에서 진화, 보전 생물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기록을 남기는 데 있어 이것만 한 시작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친구들은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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