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에필로그 1

당신 덕분에 나는 오늘도 살아갑니다

by 산수골지윤핼미

당신 덕분에 난 오늘을 살아간다.



사상 초유의 첫눈 사태. 산수골도 피해 갈 수 없었다.

30시간의 정전은 단순히 불편함이 아니었다. 전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서로가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눈사태 뒤로 찾아온 감기와 발열은 항암 중인 내 몸을 순식간에 흔들었다.

체온계를 붙들고 숫자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혹시 폐렴이면 어떻게 하지.' '응급실로 달려가야 하나.' 하는 두려움은 밤새도록 목을 조여 왔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큰 선물을 받았다.


예상치 못하게 만난 젊은 의사, “내 처방을 주치의께 꼭 보여주세요”라며 진솔한 향을 피우며 웃던 얼굴.

그 약 하나로 체온계의 숫자가 뚝 떨어졌을 때, 난 눈물을 삼켰다.


겨울의 끝자락, 나는 알았다. 혹독한 그 겨울 속에서도 빛을 길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몸은 아프고 마음은 흔들렸지만, 그 속에서도 세상은 작은 빛을 내게 보냈다.


우연처럼 만난 친절, 기적처럼 이어진 배려, 그리고 여전히 나를 살게 하는 희망.
나는 시련 속에서 길어 올린 그 빛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병원 주사실에서 다리에 바늘을 찌르던 그 차가운 순간에도,

수간호사의 따뜻한 손길과 차분한 설명 속에서 나는 다시 천사를 만났다.


“추울 때는 발을 따뜻하게 하세요.” 그 한마디가 어쩐지 내 인생 전체를 보듬는 위로 같았다.


백혈구 수치가 바닥을 치고, 자가격리 속에서 외로움이 엄습했.

문득 이런 생각이 올라온다. '이모두 이 키스칼리 때문이잖아~ 난 왜 이 독약을 먹고 있는 거지?'

하루를 살아도 내 맘껏 편히 살고 싶었다.


하지만 영상이 보여주는 내 몸을 떠올리며 황급히 손사래를 친다.


나는 어느새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엄마, 혼자 병원 다닐께.”
아들과 딸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때, 그건 단순한 독립이 아니라
새로운 용기, 나 자신을 다시 선택하는 선언이었다.


삶은 여전히 예측 불가다. 언제 또 어떤 그림자가 드리울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모든 순간에 주님은 내 곁에 계셨다는 것을.
때로는 의료진의 손길로, 때로는 가족의 눈빛으로, 때로는 친구의 작은 전화 한 통으로.


나는 여전히 암 전이, 4기 환자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다.

오늘 하루를 버티는 대신 오늘 하루를 살아낸다.






겨울 숲을 지나 봄으로 가듯, 우리 모두 그렇게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 속에서

302호, 503호 모두 같다지만,


다른 환우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나는 과연 잘 가고 있는 걸까?

그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절실했다.


고통은 나를 무너뜨리는 동시에, 새로운 빛을 찾아 나서게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당신에게 친구가 되어 말하고 싶다.


이 길 위에서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과 고통,

이미 누군가는 지나왔고, 누군가는 지금도 함께 견디고 있다.


오늘을 살아내는 당신,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오늘 이렇게 살고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끝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도 삶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를

마음속 깊이 느껴주길 바란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이 기록이 나와 같은 길을 걷는 누군가에게, 삶이 힘든 어떤 분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것이 내가 이 여정에서 세상에 남기고 싶은 한마디다.




마지막으로

이 길의 한가운데에서 나와 함께해 준 친구들께,

바쁜 가운데 때로는 함께, 때로는 번갈아가며 나를 챙겨주는 가족에게,


그리고 언제나 곁을 지켜주신 주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당신 덕분에, 나는 오늘을 살아갑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에겐 언제나 곁을 지켜주시는 위대하신 분이 계십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watercolor on paper53.0*4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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