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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Jun 14. 2024

까발리고 싶은 본심

한 달 전 그를 만났을 때, 회사생활이 어렵다는 나에게 그는 "기회가 있는데 못 본 걸 수도 있고."라고 했다. '난 할 수 있는 걸 다 했어. 환경이 못된 거야.'라며 이어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비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봐서 이런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정형돈이 어느 프로에서 "기회는 언제 찾아올지 몰라요. 계속 행운이 올 수는 없지만, 언젠가 다가올 그 운을 잡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는 거죠."라는 말을 했다. 이걸 듣고 '그래, 그냥 하는 거지. 뭘 더 따지냐.'라며 묵묵히 할 일을 했다. 그런데 무너진 뒤 일어설 힘이 없었다.


요즘 사람들은 도파민과 회복탄력성에 대해 운운한다.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게 막히는 감정이 생겨도 빨리 일어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글을 쓰기 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좋아졌지만, 남들에 비해선 아니었다. 말은 안 해도 환경을 벗어날 때까지 속으로 안 좋은 상황을 머릿속으로 굴리고 있었다.


주저앉을 때 필요한 건 내 본심이었다. '그래서 이걸 왜 하고 있는 건데?' 좇아 다녔다. 얼마 전 커피챗을 하기 전까진 상상력 탓을 했다. 어떤 게 될 거라는 예측하는 능력이 떨어져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어차피 안될 거니까. 지금 바꿀 수 있는 현재를 살고 굵직한 방향성은 놓았다.


이 생각은 다른 사람에게 내 상황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풀렸다. "최근에 미래를 계획했던 적이 언제였어요?"에 대학 진학할 때 이후로 없었어요. "그때 결과가 안 좋았나요?"에 네. 수시 정시 다 떨어지고 부모님이랑 사이가 안 좋아졌어요. 나에게 상처가 있는지 몰랐다. 계획해서 안 됐을 때의 짐덩이를 가족에게 받아본 적이 있어서 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예견하지 못하는 나 때문에 계획을 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나를 믿지 못하는 나 때문에 상상하길 포기했던 거다. "근래는 어떤 고민이 있으세요?"에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은데 가족 내에서 맡고 있는 역할 때문에 못 가겠어요. 이걸 친구에게 똑같이 말했을 때 저 없이도 50년 넘게 잘 사신 분들이니 어떻게든 될 거라고 했어요. 울 거 같아 말은 못 했지만, 사실 내가 해외에 있을 때 부모님께서 돌아가실까 봐, 딸도 안 보이는 곳에서 눈을 감게 되실까 봐 신경이 쓰인 것도 있었다. 이 생각은 고등학생일 때부터 내 발목을 잡았다.


상대는 "제가 좋아하는 책 구절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왜 떨어지는 줄 아세요? 떨어질 걸 알면 무서워서 못 뛰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현재 떨어지지 않은 걸 보고 뛰는 거예요."라고 했다. 난 "사서 고생하고 있었네요."라고 답변하며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했으나, 아직까지도 연로하신 부모님을 놓지 못하는 건 현실이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놓였다. 내가 나한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옷에 천을 덧대듯 본심도 가려버렸다.  나한테만은 강인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실제로는 자아와 상처가 뭉쳐진 애였다. 내가 나한테도 미운 정이 있는 건지, 그래도 또 돌아서 다시 살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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