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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Jun 13. 2024

날 돌보는 사람들

무언가 집중하다가 갑자기 정신줄을 놓는다. 글을 한 번에 내려쓴 다음엔 연락온 게 없는지 핸드폰을 확인하고, 달리다가 다리가 나팔거리면 속도를 늦추고, 코드를 짜다가 '어디까지 왔더라' 하면서 과정을 복기한다. 마치 내비게이션에서 "어린이 보호구역입니다." 소리가 나오면 속도를 갑자기 늦추는 자동차처럼.


개발 중 나를 도와주는 건 동료와 EDM이었다. 어제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며 '왜 나는 흥이 이렇게 많은데 클럽을 안 가는 거지?' 고민하는 찰나, 스스로 답변을 했다. 매일 이렇게 들으니까 갈 일이 없지. 이미 흥을 낮에 다 썼네. 업무 특성상 작업할 때는 헤드셋을 껴고 집중모드로 돌변할 수 있다. 탈춤꾼이 줄 위에서 흥을 즐기며 부채도 펼치고 뛰는 것처럼, 흥과 코드를 탄다.


음악도 날 돕지 못할 땐, 헤드셋을 벗고 옆자리에 앉은 동료를 지긋히 바라본다. 그리고 "뭐해요?" 한 마디 던진다. 업무 이야기도 있지만, 개인적인 말도 있다. 어제는 고향이 같은 동료가 "전주에 지진 났대요. 벽거울이 흔들릴 정도라 동생이 놀랐다고 전화 왔어요."라고 하길래, "엄마한테 전화해야겠다!" 하고 혼자 뛰쳐나갔다. 이런 짧은 말들이 숨통 트이게 했다. "싫어도 해야지 어떡해~" 노래를 부르며 다시 일을 시작했다.


달리기 할 때는 같이 뛰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까지 나보다 잘 못 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작한 지 한 달 된 병아리이기도 하고, 병원에서 쟀을 때 폐활량이 기준치보다 항상 떨어졌다. 맨 뒤에서 시뻘건 얼굴을 달고 꺼이꺼이 따라가고 있으면 제자리 달리기를 하며 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코로 2번 들이마시고 입을 한 번에 후 뱉어."라면서 날 달래주는, 같이 뛴 후에 "저는 조금 더 뛰고 갈게요. 먼저 들어가세요."라며 내 자리를 지켜준 사람도 있었다.


글을 쓸 때의 원동력은 내 존재였다. 글을 쓴 뒤의 내가 전보다 안정된 상태일 거라는 믿음. 도입부를 적었던 내가 끝물로 갈수록 손가락이 타자를 누르는 힘이 가벼워지는 걸 알았다. 쓰니까 별 거 아니네. 숨도 껄떡거리고 그 좋아하는 녹차 케이크도 못 먹을 만큼 힘들었는데 다 지나가네,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현재만큼 힘들 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은 누그러진다. 같은 경험을 똑같이 한다고 해도 처음에 겪었던 것만큼 심장이 벌렁거리진 않을 거다. 점프해서 단단한 땅에 착지하듯, 어딘가 맞닿을 곳을 만들고 있다. 영양분 가득한 흙을 만들기 위해 여러 작물을 돌려 심듯이, 내 주위엔 나를 고루 돌봐주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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