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변함없이 같은 코스를 걸었다.
매일 걷는 길, 늘 가는 카페, 눈에 익은 거리 풍경까지 — 모든 것이 익숙했다.
걸으면서도 별다른 목적은 없었다. 그냥, 하루의 리듬처럼 몸이 먼저 걷고 생각이 따라붙었다. 그러다 문득, 다이소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야 할 물건이 있었고, 그것을 사기 위해 평소의 길에서 벗어나 방향을 틀었다.
커피전문점에 들러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 그 따뜻한 컵을 들고 나오던 순간까지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이소를 향해 걷기 시작하자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내가 뭘 사러 가는 거지?”
분명 필요해서 오던 길을 바꿨는데, 정작 무엇을 사려했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머릿속이 지워진 것처럼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혹시라도 걸음 사이에 기억이 돌아올까 싶어서.
그때 문득,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먹먹함이 떠올랐다.
그 답답함, 불안, 그리고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듯한 감각.
기억은 단순히 생각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지탱하는 어떤 ‘축’ 같은 것임을 새삼 느꼈다.
그러다 갑자기, 그 ‘무엇’이 번쩍 떠올랐다.
그 순간의 안도감은 컸지만, 동시에 조금은 서글펐다.
이 작은 기억 하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허둥대야 했을까.
기억해 낸 것이 다행이면서도, 기억을 잃었던 나 자신에게 어쩐지 화가 났다.
다이소에서 물건을 사고 돌아오는 길, 계속해서 나 자신을 구박했다.
'이러다 진짜 치매가 일찍 찾아오는 거 아냐?'
매일 읽고 쓰며 머리를 쓰려고 애쓰는데도 이렇다면, 앞으로는 어떨까.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며 따라왔다.
순간순간 사라지는 기억들.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흔들렸고, 기억을 되찾는 순간, 비로소 중심을 잡았다.
삶은 이렇게 크고 작은 기억들로 이어진다. 잊어버릴 때는 불안하고, 떠올릴 때는 안도한다.
오늘 나는 아주 사소한 일을 잊어버렸지만, 그 사소함이 남긴 감정의 파도는 작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오늘은 다시 기억해 냈고, 그 기억을 이렇게 글로 남길 수 있었다. 아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배운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