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산책길을 걸을 때면, 그 고요함만의 매력이 있다.
그러면서도 문득,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때 떠오르는 얼굴은 날마다 다르다.
어떤 날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신랑이고, 어떤 날은 “안 나갈래”라고 단호하게 말하던 아이들이고, 어떤 날은 별 이유 없이 수다를 떨고 싶은 친구다.
그러다 그 ‘친구’라는 단어에서 오래 전의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되고, 아주 오래전에 헤어진 친구 K.
K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학교 앞의 주산학원에서 처음 친해진 친구다.
얼굴은 동그랗고 하얀 피부에 순딩한 이미지에 말투까지 다정했다.
다른 여자아이들이 연예인을 좋아하던 시절, K는 축구 선수 서정원을 좋아했다.
묘하게 성숙하고, 묘하게 순수했던 친구.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또렷하지 않지만 아침마다 함께 학원에 들러 주산을 하고 학교로 걸어가던 풍경만큼은 또렷하다.
학교가 끝나면 다시 학원을 가고, 피아노 레슨도 함께 받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게 된 뒤에도 연락은 종종 이어져 갔고
가끔 만나면 어색함 없이 반가웠다. 대학생이 되고, 사회에 나가면서 조금 더 소원해지긴 했지만, K는 내 결혼식에도 왔고, 큰아이 돌잔치에도 와주었다.
나는 결혼해 워킹맘으로 바쁘고 K는 싱글이었다.
그래서인지 만남이 줄고 연락이 줄고 그렇게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졌다.
사실, 말수가 더 적고 내성적이던 시절의 나는 먼저 연락을 건네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톡 하나도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인연은 그렇게 흐릿하게 멀어졌다.
가끔 그 시절의 장면들이 떠오를 때면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그리움보다 미안함이다.
조금만 더 자주 연락했다면, 조금만 더 먼저 다가갔다면 달라졌을까 하는 아쉬움.
문득문득 떠오르는 K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그때의 나를 꾸짖고 싶어진다.
인터넷에 이름을 검색해 보아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저 시절 인연이었을까.
하지만 ‘시절 인연’이라고 말하기엔 마치 내가 먼저 인연을 놓아버린 것 같아 마음이 걸린다.
자꾸 네가 그리운 건
정말 너 때문일까,
아니면 그 시절의 나를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일까.
혹은 둘 다일까.
친구로 함께한 10여 년,
추억으로만 이어진 또 다른 10여 년.
이제는 무엇을 하며 지낼지, 어떤 얼굴로 하루를 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혹시 나처럼, 너도 가끔 나를 떠올릴까.
걷다 보면, 상상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그 얼굴이 조금은 남아 있으면서도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만 같은 모습.
가을이 깊어가는 탓인지, 낙엽이 흩날리는 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호르몬의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오래된 친구가 몹시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