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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Apr 21. 2022

점, 알아요? 진짜?

점의 생성 과정은 간단하지만 그 세계까지 간단한 건 아닙니다. 은연중 널리 퍼져 있는 점에 대한 인식을 돌아볼까요? 대체로 아주 작고 매끈매끈한 동그라미를 떠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생각에 칸딘스키가 반문합니다. 대체 작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얻은 것인지, 매끈한 동그라미라는 것도 무슨 근거인지 이유를 대라는 겁니다. 


아… 그렇게 논리와 근거가 꼭 필요한 것인지 피곤합니다. 점은 그냥 점이지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바로 여기에 핵심이 있는 겁니다. 칸딘스키는 우리의 인식이 순전히 감각에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은 거죠. 그러니 편견이라는 타성이 우리의 시야를 알게 모르게 지배하고 있는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칸딘스키의 눈에 비친 점의 세계는 얼마나 특별한지 궁금해집니다. 먼저 점의 크기에 대한 그의 생각은 "점은 자라날 수도 있고 면으로 전환할 수도 있으며 눈에 띄지 않게 전체 평면을 덮을 수도 있다"입니다. 허를 찔린 느낌이 듭니다. 대개 작은 것은 점이라고 부르고 커지면 면이라고 지칭하는 게 일반적인 규정이니까요. 이 주장이 허황된 듯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심정적인 규정에 대해, 이미 각인된 시각에 대해 한 방을 가한 것입니다.

  

물론 칸딘스키의 주장에는 반박의 여지가 있어요. 무엇이 점이고, 무엇이 면인지 경계가 모호하다는 말입니다. 이대로라면 두 영역의 구분은 불가능해 보이고 설사 구분한다고 해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혼란스러운 거죠. 그 역시 점과 면의 한계에 대하여 고민스러운 질문을 던지며 두 가지 조건을 겁니다.


우선 점이 표현되고 있는 면과의 관계입니다. 얼마나 큰 종이 위에 점이 그려져 있는지, 이와 반대인지, 종이의 중앙인지 아니면 어떤 특정한 부분에 그려져 있는지 등을 상상해 보면 점이라는 기준도 덩달아 변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다음은 면 위에 점만 표현된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도 함께 있는 경우로 상대에 따라 점의 크기에 대한 판단도 달라진다는 겁니다. 


두 조건 모두 관계를 염두에 둔 것 외에 딱 부러지게 이야기된 것은 없어 보입니다. 칸딘스키도 점의 크기를 감각적으로 규정짓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석에 열중이었던 것은 점의 추상 활동, 말하자면 점의 경계에 접근해 오는 것과 경계를 넘어서는 것, 점이 사라지기 시작하여 그 자리에 면이 생겨나는 순간을 조명하려는 데에 있어요. 칸딘스키에게 중요한 것은 추상적 형태이고 여기에 내재된 표현력과 그 표현의 깊이를 알아가는 것이니까요.  


여기에서 한 숨 더 부연한다면 칸딘스키가 추구한 회화의 목적은 감정의 흔들림, 그의 용어로 말하면 '내적 필연성'이에요. 이 목적을 향하여 점이라는 조형 요소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야 하는 거죠. 감정 요소인 긍정 또는 부정, 안정되거나 불안정함, 부정확한 울림, 사라짐의 강조, 부자연스러움, 번쩍임 등등이 형태를 통해서 나타나야 하는 것이고, 이것들이 모여서 이중 삼중의 울림을 자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점의 모습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언제나 매끄러운 동그라미입니다. 하지만 앞서 본 크기와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개념에 불과한 것이죠. 칸딘스키는 점의 실물이 너무나 다양하여 어떤 경계를 짓기 어려운 무한의 세계라고 합니다. 


칸딘스키가 말하는 다양한 실물이란 이런 것이죠. 가장자리가 톱니 모양이거나 뾰족뾰족하거나 기하학적인 세모나 오각형 등의 모양이거나 불규칙하게 찢긴 모양이거나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점의 모습이 무한하다고 말하는 것이죠. 


여러가지 형태의 점 


제한조차 없는 형태와 함부로 한계 지을 수 없는 크기에 상응한 울림이란 얼마나 다양할지 말이 필요 없지요. 그런데 칸딘스키는 이 다양성이 색조에 불과하다고 해요. 그의 말에 따르면 기본 본질은 언제나 항상 순수한 울림을 간직하며 퍼뜨리는데 이 본질적 울림이 만나는 상대에 따라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본래의 색을 주축으로 한 각양각색의 변주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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