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원본을 능가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은 인쇄술에만 있는 게 아니라 원화의 크기에서 오는 감흥에도 있다. 고전 명화 중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널리 알려지는 과정에서 갖가지 크기로 복제됐다. 옥외광고판에서 교과서의 한 페이지와 쪽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로 소개된 <모나리자>는 같은 그림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같지 않다.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크기에 따른 파동은 있기 마련이고, 감성은 이를 지나칠 수 없다. 모든 조건은 감상에 관여하며 감각을 자극한다. 그러므로 복제된 회화작품을 만나면 참고로 명시해 놓은 원본 사이즈도 눈여겨볼 일이다.
<하늘빛 파랑>은 가로 73cm, 세로 100cm 크기로 작지 않은 그림이다. 연체동물을 닮은 요소들이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며 맴도는 움직임을 작은 캔버스에 다 담을 수 없다는 걸 칸딘스키도 알았나 보다. 만약 작은 화폭이었다면 부유물의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소곤거림에 그쳤을 것이다. 널찍한 공간은 여러 각도로 관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여 갖가지 감정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게 한다.
나는 이 그림을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합창 ‘알렐루야’에 비유하고 싶다. 천상이 있다면 바로 이 광경이 아닐까? 이곳에는 존재 자체의 빛남이 있을 뿐 이름이 붙여지거나, 개념이 규정되거나, 역할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곳은 모습, 상황, 관계 등이 불러오는 모든 경우의 가능성을 안고 있거나, 산전수전 다 겪은 초월한 상태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실로 중요한 건 존재 자체에 있다.
칸딘스키는 노년의 혜안을 이 안에 담았다. 그는 그 자리에 있다는 존재만으로도 넘치도록 아름답다는 진리를 전한다. 존재는 아무 의미 없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 안에는 우주법칙이 드리워져 있다. 깨알 같은 존재가 있기 때문에 거대한 우주가 움직일 수 있고, 덕분에 현재는 멈추지 않고 지속된다. 무엇이 되었기 때문에, 또는 무엇이기 때문이 아니라 주어진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진리가 누구에게나 전달되는 건 아니다. 세상이 우리를 쉬지 않고 흔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흔드는 바람이 없다면 쌓인 먼지를 누가 털어주겠는가? 진리는 기꺼이 삶의 폭풍을 견뎌낸 이들에게서 제 빛을 밝힌다.
칸딘스키는 미술이 당면한 삶에 기여하는 건 아니라고 담대히 말한다. 당장 우리의 삶에 관여하는 건 경제이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자본의 지배를 받겠다는 의지로 풀이해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에게 통보되는 경제위기는 해를 거르는 법이 없다. 이쯤이면 이 위기는 일상이고 반복되는 위협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인간은 일용할 양식과 충분한 생활조건의 보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삶의 이러한 문제들이 충족된다 해도 인간에게서 정신문화를 박탈하면 인간의 정체성도 빼앗기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러나 시대는 정신적 가치를 칸딘스키의 말마따나 사륜구동의 다섯 번째 바퀴 정도로 취급한다. 정말 끔찍한 위기는 정신에 있다는 그의 지적에 통감한다.
칸딘스키에 따르면 미술은 자연의 법칙에 종속될 때 위대해진다. 추상화가 대상을 버렸다고 해서 자연을 저버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추상은 자연의 겉옷을 버리기는 하지만 자연의 법칙은 버리지 않는다. 이 법칙은 자연을 외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내적으로 접근할 때, 즉 바라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체험할 때 비로소 나타나는 무의식적인 느낌이다. 이 체험과 느낌에서 대상은 오히려 걸림돌이다. 그것은 갖가지 편견과 오해로 뒤덮여 있기에 본질로 다가가지 못하도록 훼방 놓는다.
칸딘스키가 추상화를 처음 선보인 날, 그에게 쏟아진 비방은 충분히 예상된 수순이었다. 그의 변론은 거듭됐고 지칠 줄 몰랐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인생 말기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녹록지 않았던 삶의 여정을 대변한다. 1937년 뉴욕에서 칸딘스키의 개인전이 열렸다. 당시의 인터뷰는 추상미술에 진심이었던 그의 성실함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추상화가는 머리로만 작업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맞습니까? 그런 일이 종종 있기도 하지만 그건 대상적 사실주의 화가에게서 더 자주 일어납니다. 머리는 인간에게 필수적이며 중요한 신체의 부분이지만 그것은 가슴 혹은 감정과 유기적인 연관이 있을 때 한해서입니다. 이런 연관이 없다면 머리는 모든 위험과 부패의 근원이 됩니다. 모든 영역에서 그러하며 미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미술에서는 더 합니다. 머리 없는 대가는 있었지만 가슴 없는 대가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위대한 시대와 위대한 예술가에게는 늘 머리와 가슴 혹은 감정의 유기적인 연결이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대혼란기에나 미술이 머리만으로도 달성되리라는 빈약한 사고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여하튼 미술은 내적 명령 없이는 생길 수 없습니다. 즉 직관이 필요합니다.
최초의 추상화 작품들은 공식적으로 어떤 반응을 얻었습니까? 내 그림은 아주 광적으로 거부당했습니다. 나는 완전히 홀로 서 있었고, 내가 들은 욕설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재능 없는 사기꾼’은 그들이 즐겨 쓴 말입니다. (…) 추상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한 평론가들이 아직도 여기저기 널려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평론가들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선생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25년 넘게 지속된 추상미술에 대한 논쟁이 바로 추상미술의 필수성과 위대한 힘의 증거입니다. 매끈하고 빠르게 진척되는 것은 늘 무가치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