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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스카이 Nov 10. 2022

나의 Ex- 스페인 시어머니 1

영화 같은 만남

그 모든 것의 시작


여러분은 전생을 믿으시나요? 전 살아오면서 제가 전생에 스페인 사람이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믿음의 시작은 스페인 보스와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됩니다. 제목은 시어머니지만 아무래도 긴 시어머니 얘길 시작하려면 결혼 얘길 먼저 해야겠죠.


전 미국 마이애미(Miami)에서 대학을 나왔고 남미분들이 넘치는 그곳의 특성상 교양과목으로 스페인어를 선택해서 조금 배웠습니다.  졸업 후 한국으로 와서 프랑스계 화학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곳의 부사장이 스페인 사람이었네요.  사실 같은 회사에서 근무한다고는 해도 저는 수출팀에서 일했고 그 사람은 부사장이면서 회계팀의 팀장이어서 그저 만나면 ‘Hi!’ 정도 하는 사이였죠.  우린 1년을 넘게 같은 회사에서 일했지만 그냥 부사장과 회사원이었어요. 참! 부사장이라고 하면 나이가 꽤 들었을 거라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이 사람은 29살에 프랑스 대기업 회사의 한국지사 부사장이 된 능력자였습니다. 제가 만났을 땐 서른을 좀 넘긴 나이었어요. 뭐 그런 게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싱글에 젊은 부사장이다 보니 회사에 이것저것 소문이 많이 돌았어요.  전 원래 소문을 옮기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회식 자리에서 듣는 얘기는 막을 수가 없었네요.


29살에 한국에 발령 나서 올 때 스페인에서 45살의 아줌마 여자 친구와 같이 와서 살았는데 한국생활에 익숙해지고 놀러 다니면서 여자들 좀 만나니까 슬슬 바람을 피웠다고 들었어요.  거기다 회사에서 일하는 여자 회계과장과의 루머도 있었죠.  워낙 일이 많고 야근이 잦다 보니 소문이 돌았고 그 여자 과장님은 정말 부사장이 하는 말엔 지나치게 하이텐션으로 웃어댔거든요. 그 웃음소릴 들으면 다들 서로 쳐다보며 ‘왜 저런데?’하는 표정을 짓곤 했었네요.  


이렇게 일하면서 저와 부사장은 전혀 상관이 없는 하루하루가 흘렀는데, 그런 날 있죠.  일상이 영화가 되는 순간이 온 거예요.  사실 저희 팀은 일이 많아서 야근이 잦았어요. 준비할 매출 관련 리포트도 많고, 수출 서류 준비, 해외 바이어들이 오면 모시고 다니며 접대까지 해야 했어요.  그날도 여느 날처럼 야근을 했고 몸이 엄청 피곤했는데 회식자리에 꼭 참석해야 한다고 하시는 과장님 때문에 지친 몸을 이끌고 회식자리에 갔습니다. 가보니 자리가 다 차서 전 얼떨결에 사장님과 부사장님 사이에 앉게 되었네요.  날이 쌀쌀하던 11월의 어느 날 피곤하고 배가 고팠던 전 앉자마자 주시던 빈속에 마신 술 한두 잔에 쉽게 취했습니다.  한마디로 난리가 난 거죠. 전 술이 취하면 엄청 기분이 업되는 스타일인데 회사 회식 자리에서 발동이 걸렸습니다.  제가 뭘 했냐 하면요…  사장님과 부사장님 사이의 대화를 통역하기 시작했어요. 통역이 무슨 잘못이냐고요? 잘못은 아니죠. 중요한 건 두 분이 영어로 대화하는데 제가 끼어들어 사장님이 영어로 하신 말을 부사장에게 스페인어로 말하기 시작했어요. 필요 없는데 계속 통역하고 술 마시고…  차도 주차장에 버려두고 2차 3차 달렸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의 스페인어 실력은 엉망이었네요.  술 때문에 용기백배였던 것 같습니다.


다음 날 머리를 쥐어뜯으며 일어났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나더라고요.  차도 어디 두고 왔는지 모르겠고 집에 어떻게 왔는지 조차 하나도 기억에 남은 게 없었어요.  그런데 기분이 싸한 게 뭔가 잘못한 느낌적인 느낌이 스멀스멀 들었습니다.  일단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사표를 내야 하나?’... 였어요.  필름이 끊기면 뭔가 굉장히 민망하고 황당한 기분. 다들 아시죠? 모르시나요? 근데 그 기분이 들면서 동시에 부사장하고 뭔 일이 있었던 게 꿈이었던가 생시였던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찜찜한 맘을 안고 출근했습니다. 가서 주변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분위기 업이긴 했지만 회식자리에서 별 짓은 안 했다는 다행스러운 얘길 들을 수 있었어요.  ‘오케이 사표는 안내도 되겠다’하고 안심하면서도 부사장한테 뭐라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엄청 되더라고요.  그래도 우린 성인이니까 쿨하게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먼저 연락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부사장 연락처야 회사 비상연락망에 다 있으니 식은 죽 먹기였어요.  전화하니 웃으면서 만나서 얘기하자고 하더라고요.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을'의 처지였던 저는 안 나갈 수가 없었어요.  사실 뭔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드디어 그와 만남의 날이 왔습니다.  어디서 만났던 건 기억이 안 나는데 레스토랑에 걸어 들어가는데 테이블에 앉아서 살짝 미소 짓고 있는 그가 보였어요. 제 심장은 쿵쾅쿵쾅 난리도 아니었죠. 생각해 보면 그렇게 부사장과 저의 썸은 시작되고 있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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