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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선 Feb 24. 2024

단칸 월세방

이사하는 날

우리가족 두 번째 이삿 날 이었다. 동시에 학교 등교날이었다. 정확히 몇 학년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반대편에 살고 있던 남자아이를 생각하면 초등학교 1~2학년이었던 것 같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아침 일찍 서둘러서 이사를 했었다. 난 학교 가방을 메고 있었고, 이사하는 엄마의 뒤에 서서 뚱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대문 앞에 낯익은 얼굴하나가 쭉 고개를 내밀었다. 같은 반 남자아이였다. 저학년인데도 성숙했던 나는 아직 씻지도 않은 내 모습이 부끄러웠고 내 상황이 부끄러워 미칠 것 같았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표현은 못했지만 마음으로는 울고 싶었다. 그때 충격이 컸는지 나는 내 가장 아픈 기억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면 그 장면부터 떠오른다. 멍한 표정의 내 얼굴, 그리고 이사하는 모습을 구경하던 그 남자아이와 눈미 마주친 순간을 말이다. 그날은 단칸 월세방으로 이사온 날이기도 했다.


그 친구는 반대편 2층 주인집에 사는 아이였다. 아침부터 이사하니 불구경하듯 구경하러 온 것이었다. 그뒤로도 난 그친구 얼굴을 자세히 본적이 없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왜 이사를 했냐고 물어 올까봐 걱정되었다. 난 그때 잘 몰랐지만 우리집은 아주 가난했었다.


지금처럼 포장이사 업체도 없었지만, 그럴 돈도 없었기에 파란색 트럭한대로 이삿짐을 쌓고 쌓아서 이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가 되고 엄마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때 쯤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 우리 2칸짜리 방에서 단칸방으로 처음 이사할 때 그 집 얼마였어?"엄마는 말했다."그때 전재산이 100만 원 있었다 아이가~."그때는  너무나 힘들었지만, 지금 웃으면서 말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편해 보이면서도 그때가 떠올랐는지 슬퍼 보이기도 했다.  짐작해 본건데 그때 엄마 나이가 지금 내 나이였다. 엄마 32살에 나를 낳았으니 내가 8살 이었다면 엄마 나이 40대 초반이었다. 지금 내 나이가 41살이다. 지금의 내 나이 때의 엄마를 생각하니 그 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이 아팠다. 이 질문을 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아서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 많이 힘들었겠구나'.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았던 청춘같은 40살이었다. 그 뒤로도 더 많은 날들을 힘겹게 살아온 엄마를 생각 하니, 눈물이 났다.


우리가족은 그 집에서 고학년이 될 때까지 살았다. 아니 조금더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월경을 그 집에서 했으니깐, 초등학교 5학년은 훌쩍 넘겼다. 초등6학년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도 그 집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 집에서 살았는지 새삼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했다.. 자아가 분리되던 시기의 나는 모든 상황들을 내려놓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그때는 이대로 평생 그 집에서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막연한 불안감으로 항상 나를 괴롭혔다. 나는 내면도 외면도 자라고 있었다. 이 집에서는 떠오르는 기억들은 많았다. 부엌겸 욕실에 있던 작은 거울까지도 기억이 났었다. 월세 단칸방의 기억은 잊어 버리고 싶어도 계속 기억 났었다. 내 유년 시절에 살았던 집이 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마음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나는 이 글을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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