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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영 Jan 28. 2023

92. 산모의 회복탄력성 그리고 당당함과 긍정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이야기 (5)

이제 28주가 된 A의 얼굴은 맑았다. 비록 남편이 우리 병원 내과에서 혈액암에 대한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사실 얼굴에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걱정만 가득 있진 않았고, 희망이 비로소 걱정을 이기고자 했기에 전체적으로 표정은 밝았으며 맑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녀는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남편의 상태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했다. 같이 진료실로 들어온 시어머니의 얼굴에서는 며느리에 대한 사랑과 염려가 느껴졌다. 나는 초음파를 보며 아기의 건강한 상태를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30주가 되었을 때 그녀는 입체 초음파를 찍고 싶다고 했다. 아기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면 남편이 이 병마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였다. 우리는 최대한 아기의 얼굴을 예쁘게 사진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남편의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이 아름다운 부부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첫째 아기를 낳은 B 산모가 대기 의자에서 진료실 들어서는 나에게 반가운 얼굴로 눈인사를 해왔다. 나는 외래 전 환자의 차트를 미리 검토하면서 첫째 아기가 최근 ‘취약 X 증후군’으로 진단되면서 둘째 임신에 대한 상담을 위해서 오는 환자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반가운 얼굴의 밝은 그녀가 그 환자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취약 X 증후군’은 대표적으로 X 염색체와 관련된 유전 질환이다. 설명하자면 산모는 ‘취약 X 증후군’과 관련된 유전자의 이상이 있지만 증상은 없고 이 유전자 이상이 자녀에게 ‘증폭’이 되는 특징적인 유전 양식을 보인다. (물론 증폭의 정도는 다양하다) 아기의 진단도 갑작스럽고 두렵고 걱정되는 부분이 많을 터인데, 그녀는 일단 본인에게 관련 유전자 이상 검사를 진행하자는 설명을 듣고 더 이상의 ‘앞서 나가는 자세한 질문 세례’를 늘어 놓지 않았으며 당당하고 밝은 표정이었다. 아기가 이상이 있는 경우, 산모들은 흔히 본인이 엽산을 늦게 먹기 시작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임신 초기부터 관리를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심지어 직장에 다니느라 신경을 못써서 그런 것은 아닌지, 본인 탓을 굳이 찾아 내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의학적 근거에 반하는 죄책감을 가지기도 한다. 아기의 유전자는 절반이 남편에서 오는 것이다. 물론 특정 질환은 산모의 나이와 관계되는 것도 있다. (다운증후군이 대표적) 반면, 특정 질환은 남편의 나이와 관련되기도 한다. (연골무형성증과 같은 상염색체 우성의 질환이 대표적) 아기는 유전자만으로 크는 것이 아니다. 이는 흡사 나무가 잘 자라려면 세밀한 수염 같은 뿌리가 침투해있는 토양이 좋아야 하는 것과 같다. 나는 모든 질환은 spectrum이 있는 바, 모든 ‘취약 X 증후군’ 아기가 동일한 발달을 보이지는 않으며 환경적 요인, 즉 적절한 교육과 환경이 아기의 상태를 양호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나는 당당한 그녀의 아들이 또한 당당하고 행복하게 클 것을 예감했다.


C 산모는 19주에 양수가 터졌다. 태아의 생존 능력 이전에 아주 이른 조기양막파수가 발생한 것이었다. 양수가 이렇게 이른 주수에 터지는 경우는 아기 폐성숙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신생아 예후는 전반적으로 좋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산모와 보호자가 충분한 설명을 듣고 원한다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왔던 첫 번째 의사의 조언처럼 임신 종결을 고려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두 번째 의사인 양석형 교수의 권유처럼 임신 유지를 원했으며, 다행히 염증이나 자궁수축이 발생하지 않았고 결국 31주 6일에 1.95kg의 아기를 낳았다. 우리 병원으로 전원 된 것이 26주이니, 6주라는 긴 시간 동안 그녀는 고위험산모 병실의 커튼 속에서 2022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으며 또한 음력 설까지 맞았다. 그녀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분만 때까지 늘 밝은 모습을 유지했다. 어느 날, 터진 양수 색이 붉은 빛으로 변한 순간부터 그녀의 불안감은 약간 높아지기 시작했지만 이 정도는 아기에 대한 믿음과 의료진 대한 신뢰로 극복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월요일 회진에는 심지어 나에게 주말 잘 지내셨냐는 안부 인사를 하기도 했다. 이토록 긍정적인 그녀의 아기는 질식분만으로 나오자마자 긍정적으로 울어 댔다.


우리의 인생이 예기치 못한 일 투성이인 것과 정확하게 동일하게 임신 및 출산의 과정도 예기치 못한 일 투성이인 것을 진료의 현장에서 하루도 빠짐 없이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산모가 지나치게 걱정을 하는 것은 그야 말로 백해무익(百害無益) 이다. 지나친 걱정은 몸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을 과도하게 분비시키고 이 호르몬이 임신의 경과에 좋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없다.


나는 얼마 전 최인아 책방에서 산 책,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저]에서 읽은 아래의 문장을 C 산모에게 읽어주었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 퍼센트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30 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들에 관한 것이며 22 퍼센트는 아주 사소한 걱정들이고 4 퍼센트는 우리가 전혀 손 쓸 수 없는 일이고 나머지 4 퍼센트만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하는 일이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처럼 산모의 회복탄력성 그리고 당당함과 긍정은 아기를 춤추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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