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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둘째를 낳아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이야기

by 오수영

그녀는 임신 27주에 양수가 터져 입원했다. 첫번째 임신이었고 특별한 고위험 요인이 없었기에 그녀는 이른 주수에 발생한 이 갑작스런 상황을 실감할 수 없는 듯 입원 당일, 아무 질문도 없이 정지 상태였다. 오히려 고위험 산모 병실에서의 생활이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에서 그동안 참았던 걱정 덩어리가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날이 왔다.

희고 고운 피부를 가진 그녀의 서글서글한 눈매에 눈물이 맺힌 순간이었다.


한 달 동안 아침 인사격으로 이루어지는 회진 시간에 더 이상 새로운 할 말이 없었던 나는 난데 없이 "둘째도 가져야지요?" 라는 질문을 했다. 나의 경험으로 대부분의 고위험 산모는 오히려 둘째를 원했고, 아무런 문제 없이 첫째를 출산했던 산모들은 출산 후 검진에서 둘째를 가져서 오면 된다는 말에 "제가요? 에이 아니요"라고 말했었기에 나는 이 고위험 산모도 벌써부터 둘째의 임신 계획을 할거라고 속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지금도 힘든데) 안 가지겠다 였다.


"아니, 왜요?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 둘째를 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덧붙여 둘째가 있어야 첫째가 같이 놀 수 있기에 엄마로서 손이 덜가고 편할 수 있다며 이것이 둘째를 낳아야 되는 첫번째 이유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머지 이유들은 정확한 시기를 예측할 수 없었던 그녀의 출산 후에 알려주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다행히 그녀는 양수가 터진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잘 버텼고 약 임신 33주가 되는 시점에서 자연 진통이 걸려 순산까지 할 수 있었다. 사실 제왕절개수술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가지로 감사한 일이었다.


나는 그녀의 회음부를 꼬맨 후 둘째를 낳아야 되는 두번째 이유를 말해주었다.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목적은 사랑하기 위해서란 말이 있어요. 그 맥락에서 제 생각엔 둘째를 낳는 것은 첫째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일 같아요."

나는 한 달 동안 고생했다고, 그래도 아기가 이 정도로 건강하게 나온 것은 감사한 일이라며

세번째 이유는 나중에 출산 후 검진 외래에서 말해주겠다며 또 미련을 남겼다.


한 달 후 그녀는 고위험 병실에 오래 입원해 있었을 때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완전히 사라진 밝은 얼굴로 외래에 왔다. 나는 자궁경부암 검사 및 회음부 진찰을 마치고 세번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제 남편이 외동이예요. 여자 형제도 없는.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이 연로해지시니 아프신 부모를 돌봐야 하는 것이 온전히 아들 한 명 (물론 며느리도 있지만)의 일로 남더라구요. 외동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거지요. 반대로 친정은 저 포함 셋이예요. 부모님이 나이드시면서 편찮으셔도 셋이 분담해도 살펴드릴 수 있다는 현실적인 장점이 적어도 둘째를 낳아야 하는 세번째 이유랍니다"


그녀는 미소지으며 둘째 출산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며 나에게 카드를 전해주었다.

나는 언젠가 조산아로 태어난 첫째를 데리고, 말씀대로 둘째를 가졌어요 라고 부끄럽게 이야기할 그녀의 고운 얼굴을 상상하며 카드에 쓰여진 예쁜 글씨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간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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