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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봉 Jun 26. 2022

여행 테러리스트


뉴욕의 야경을 내려다 ‘'탑 오브 더 락'이라는 전망대가 있는 록펠러 센터에 갔다. 록펠러 센터 앞에  아이스링크가 왠지 익숙했는데 <나 홀로 집에>에 나왔던 장소였다. 록펠러 센터는 크리스마스 영화에 배경이 되었던 장소여서 그런지 낭만적인 불빛으로 꾸며져 있었다. 아이스링크장은 크리스마스를 추억하듯 아직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려 있었고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도 반짝이고 있었다. 이 건물을 지나가는 모두에게 따듯한 연말을 선물하고 싶은 것처럼 록펠러 센터의 외관은 너무나도 따듯했다. 


모든 걸 다해줄 것처럼 따듯했던 정치인이 당선되면 차가운 얼굴을 보이듯 록펠러 센터 외관이 줬던 감성 가득한 이미지와 다르게 전망대에 올라가는 길은 삼엄했다. 특히 공항에서 출국심사 전에 소지품을 검사하는 커다란 기계를 지나야 전망대로 갈 수 있었는데 삼엄하게 느껴졌다. 한국에는 전망대를 올라간다고 소지품을 검사하지 않기에 더 그렇게 느껴졌다. 전망대를 올라가는데 굳이 검사를 할까란 생각을 했지만 총기 난사 사건과 911 테러의 아픈 기억도 있으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검사대에는 모니터링을 하는 직원과 흑인 경호원이 지키고 있었다. 흑인 경호원은 모건 프리건처럼 생긴 품격이 느껴지는 외모를 가졌다. 나이가 조금 들어 보였지만 큰 키와 정장핏에서 느껴지는 강인함은 나이가 무색하게 경호원의 강인함이 느껴졌다. 이곳이 관광지가 맞나란 생각이 들었다. 고객 회사를 방문할 때 입구에서 방문증을 받는 과정처럼 관광지보다는 보안이 철저한 회사를 방문하는 느낌이었다. 


심각한 범죄가 일어나는 곳이다 보니 긴장을 늦출 수 없을 것이라고 애써 생각하고 나는 검사 대기줄에 서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줄은 금방 줄어 금세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컨베이어 벨트에 나의 가방을 올려놓았다. 가이드대로 가방을 올려놓고 검사대를 통과하려는 순간 옆에 서 있던 모건 프리건을 닮은 경호원이 다가왔다. 내가 가방을 두는 과정에 실수가 있어서 알려주려고 하나 했는데, 내 가방을 열어 검사했다. 그러더니  “No bombs?”라고 말을 걸었다. 미국 사람들은 유쾌하게 이런저런 농담을 하기에 나는 웃으며  “I am not a Terrorist”라고 받아쳤다. 하지만 나의 농담에 그의 표정은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상황이 의아했지만 별 생각이 없어 그대로 검색대를 통과를 했다. 


검색대를 통과하면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록펠러 센터에 대해 설명해주는 영상이 나왔고 가이드분께서 상냥하게 설명을 해주면서 올라가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해 주셨다. 이제 좀 관광지에 온 듯한 느낌이 들면서 왠지 모르게 경직되었던 몸이 이완되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맨해튼의 야경은 정말 멋있었다. 정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정돈된 도로와 건물들이 인상적이었다. 왠지 건물들의 높이도 똑같이 맞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사이에 특색 있는 건물들이 심심할 것 같은 야경에 포인트를 주는 듯했다. 건물의 동서남북 방향으로 설치된 망원경과 나의 두 눈으로 맨해튼의 아경을 감상했다. 맨해튼의 잘 정돈된 도시의 야경은 멋지긴 했지만 왠지 인공미가 가득해 보였다. 지형에 맞게 구불구불한 도로와 높이와 넓이가 불규칙적인 서울의 야경과 대조되었다. 


정신없이 야경을 감성하고 있는데 점점 추위가 느껴졌다. 찬 공기를 모금은 바람은 얼굴은 바늘로 콕콕 찌르듯이 아팠다. 주변을 보니 함께 야경을 구경하던 관광객 대부분이 실내에서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서운 추위에 야경을 즐겁게 관람하기 어려워 나도 실내에 들어가 있기로 했다. 실내에서는 카페와 기념품 샵이 있었는데 모두 흥미롭지 않았다. 몸을 녹일 겸 기념품샵을 구경하다가 록펠러 센터가 지어일 때 인부들이 공중에서 식사는 모습이 담긴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공중에 떠있는 철 구조물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 굉장히 힙하게 보였고 여행의 흔적으로 남기면 좋을 것 같아 구매했다. 오래 머무르고 싶었지만 추위에 굴복하고 여행을 마무리했다. 


“그거 완전 인종차별 발언이야!!”


한국에 돌아와서 직장 동료들과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재미교포 수잔이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당시에 나는 경호원이 나에게 건넨 농담인 줄 알았는데 심각한 인종차별적 발언이었던 것이었다. 수쟌은 록펠러 센터의 경호원이 말했던 “No bombs?”라는 표현이 소송해도 모자라지 않는 인종차별 발언이라고 했다. 멋있게 느껴졌던 그  경호원에게 배신감이 느껴지면서 그 당시의 추억도 조금은 부정적으로 보정되었다. 


곱씹어 보니 북한 사람으로 생각해 나를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웃으며 테러리스트 아니라고 한 나를 그 경호원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날 전망대 매표소에서도 직원이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었었다. 자연스러운 대화였긴 했지만 당시에도 내 국적을 왜 물어보지? 란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인종차별이었을까?


미국 여행을 하면서 인종차별을 종종 당하긴 했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향해 “Yellows”라고 외치기도 했고, 빌딩을 잘 못 들어갔는데 필요 이상의 경호원들이 나와서 나를 제지하기도 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흑인들이 걷고 있는 나를 조롱하기도 했었다. 


여행 중 이런 일이 발생하면 너무 기운이 빠졌다. 정말 가고 싶었던 필라델피아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지나가는 흑인들에게 받은 모욕은 바로 한국에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그러는 것일까? 자신은 나와 무엇이 다르기에 그렇게 대할 수 있는 것일까? 정말 여행을 망치는 테러리스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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