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봉 Sep 16. 2022

진심은 번역이 필요 없다


뉴욕 여행을 일주일 연장하기로 했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뉴욕을 더 즐기고 싶은 것도 있었고 필라델피아와 워싱턴을 가보고 싶어서였다. 특히 영화 록키의 명장면 촬영지인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너무 가보고 싶었다.


온라인으로는 비행기 연장이 안돼서 직접 공항을 방문했는데 역시나 부족한 영어실력이 발목을 잡았다. 두 번째 공항을 방문하고 나서야 이 여행을 일주일 연장할 수 있었는데 한국으로 출국하기 3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뉴욕에 더 머무를 수 있고 가보고 싶었던 필라델피아와 워싱턴 DC를 갈 수 있어 기뻤지만 한편으론 예산을 너무 초과하게 되어서 부담이 되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머리가 복잡했다. 우선 필라델피아를 가는 법도 찾아야 했고, 숙소도 알아봐야 했다. 일주일 늘어난 김에 워싱턴 DC까지 가보고 싶어졌다. 갑작스럽게 연장된 나의 일정을 무엇으로 채울지 생각으로 가득했고 머리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잡느라 돌아가는 버스에선 머리가 복잡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내일 필라델피아로 떠나는 버스와 워싱턴 DC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예정된 날보다 일찍, 그것도 내일 당장 방을 빼야는 슬픈 소식을 루이스에게 알려야 했다. 전화는 영어가 두려워서 다른 방법을 고민하다가 편지를 써서 그의 사무실에 놓기로 했다. 2층의 식탁에 앉아 메모지를 찢어서 루이스에게 영어 편지를 썼다.


방에서 짐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자 프랑스 룸메는 갑자기 떠나냐며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어설픈 영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루이스에겐 연락했냐는 말에 편지를 썼다고 하니 그 친구는 커다란 놀란 눈을 하였다. 그때 그 친구의 눈동자가 파란색인 걸 처음 알았다. 곁눈질로 영어로 빼곡한 나의 편지지를 확인하며 거짓말이 아님을 확인했다.


"너는 영어로 말은 못 하는데, 글은 쓸 줄 아네?"


영어는 어버버 말하는 동양인 룸메가 영어로 편지를 썼다니 놀라는 눈치였다. 자신은 영어로 말은 할 수 있지만 글은 쓸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오히려 그게 이해가 안됐다. 말을 할 줄 아는데 그걸 글로 쓸 수 없다니. 말을 그냥 글로 적으면 되는 것 아닌가? 언어능력 이란 것은 정말 신기하다.


다음 날 캐리어를 끌고 1층으로 내려갔다. 루이스는 사무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떠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서로 이야기 나눴다. 갑작스럽게 이별을 하는 게 너무 아쉬웠다. 손님과 주인으로 만난 사이였지만, 원래 알던 친구처럼 알뜰살뜰 챙겨준 것들이 생각나 조금 울컥했다. 그래도 난 손님이니까 준비한 돈을 루이스에게 건넸다. 루이스는 내 돈을 세어보더니 갑자기 생각에 잠겼다. 돈뭉치의 일부분을 집더니 나에게 돌려주었다.


"Discount"


명절날 집을 떠날 때 펼쳐지는 풍경처럼 돈을 안 받으려는 나는 돈을 주려는 루이스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나는 돈을 받았고, 마지막까지 신세를 지는 것 같아서 루이스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 조금이라도 돈을 아낄 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다. 인사를 하고 루이스의 숙소를 나오는 순간 이제는 이곳을 다시 오기가 힘들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미국에 도착해 첫끼를 사 먹었던 노점부터 로터리에 있던 한식당까지 약 2주 동안 머무르면서 정들었던 거리를 한 바퀴 거닐고 필라델피아로 떠났다.


재미교포 수잔과 미국인의 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 여행을 할 때 미국 사람들은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실례합니다”는 말을 많이 해서 만원 지하철을 타도 부딪힐 일이 없어 불쾌할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루이스가 숙소비를 할인해준 이야기도 덧붙였다.


"오 신기하네"


재미교포인 수잔은 루이스가 숙박비를 할인해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기해했다. 그녀의 말로는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특히 뉴욕에서는... 그 이야기를 듣고 루이스의 배려를 조금은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어릴 적과 다르게 이제는 한국에서도 기대하기 어려운 배려이기에 해외에선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와닿았다. 수쟌의 말에 머리를 쌔게 맞은 느낌이었다. 한 번 보고 말 수 있는 나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어준 루이스에 대한 감사함을 너무 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루이스가 숙박비를 돌려준 건 그냥 돈이 아니었다. 이별에 대한 아쉬움과 나의 어설픈 영어 편지로 전달한 진심에 답변을 해준 것이었다. 우린 국가도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도 달랐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진실한 마음만큼은 하나의 언어로 소통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