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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봉 Mar 18. 2022

자유의 난이도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 갑자기 춤판이 벌여졌다. 처음엔 플래쉬몹FlashMob에 참여하는 일부 댄서들만 춤을 췄는데 갑자기 너도 나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렇게? 갑자기?”


춤판이 벌여진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은 맨해튼을 상징하는 오래된 기차역이다. 뉴욕에 도착한 지 2일 차에 애플스토어 때문에 방문한 이곳은 고풍스러운 외관이 증명하듯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큰 기차역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만큼 광활한 승차장이 인상 깊은 곳이었다. 건물 내에는 애플스토어를 비롯한 여러 상점들이 있었고 푸드코트를 비롯한 여러 편의시설들이 있었다. 


100주년을 알리는 전광판



마침 방문한 날이 딱 100주년이 되던 날이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로비에서 준비 중이었는데 굉장히 어수선했다. 장비들을 연결한 선들이 바닥에 깔려 있었고, 행사를 준비하는 스태프와 이동하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길목에 있는 스테프들은 “watch your step”이라고 외치며 사람들에게 사고 나지 않게 주변을 환기시켰다.


공연을 기다려보기로 결심하며 가져온 여행책을 꺼내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 대해서 찾아봤는데 그제야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100년 전이면 우리나라는 막 전차가 들어오고 여전히 말을 타고 다닐 때인데, 한 세기가 지나도록 여전히 세계에서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하는 기차역을 지었다고 생각하니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경제 차이가 피부로 느껴졌다. 터미널 구석구석을 구경하다 보니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누나들의 파워풀 댄스



공연은 뉴욕의 농구팀 치어리더 공연으로 시작했다.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고 시장 같은 분이 나와서 연설도 하는 등 한국에서 봤던 행사와 똑같았다. 행사가 지루해서 잠시 푸드코드에서 요기를 채우고 오니 공연의 막바지가 되었다. 마지막 순서로 밴드들이 재즈 같은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연주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갑자기 관중 속에 있던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 선이나 동작을 봤을 때 전문 댄서들이었다. 플래시몹 퍼포먼스를 하는 듯했고 점점 군중에 숨어있다가 합류한 댄서들이 늘어났다. 어느덧 댄서들이 군중의 중심을 차지하고 춤을 추지 않는 일반 사람들은 점점 밖으로 밀려나며 강강술래 같은 대형이 되었다.


군중들에 둘러싸여 춤추는 댄서들의 즐거워하는 미소와 춤사위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춤을 추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내 앞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도 주춤주춤 하다가 바닥에 짐과 외투를 내려놓고 춤추는 무리로  뛰어들어갔다. 한 명이 바닥에 짐을 내려놓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 짐을 근처에 두고 춤을 추러 갔다. 순식간에 많은 사람이 서로 뒤섞여 춤을 추고 있었고 결국 구경하는 사람보다 춤을 추는 사람이 많아졌다. 


우리나라였으면 다들 구경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기 바빴을 텐데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이 순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문화충격이었다. 춤을 잘 추든 못 추든 그냥 그 분위기에 참여하는 자유로움과 여유는 어디서 오는지 궁금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나도 무리에 들어가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가 나를 끌고 들어가 춤을 출 수 있게 해줬으면 했다. 


춤판이 벌여진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바닥에 짐을 놔두고 춤추러 가버렸다




한껏 자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내 옆에 누가 서 있는 느낌이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연두색 니트 카디건을 입은 백인 여자가 있었다. 귀여운 빨간색 크로스백을 몸을 가로질러 매고 있었고 명화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의 주인공처럼 동글동글하고 엄청 큰 두 눈을 가지고 있었다. 한참 그녀를 바라보는데 그녀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갑자기 그녀가 보내는 텔레파시가 느껴졌다.


“같이 춤추러 가자!”


왠지 긴장이 되었다. 그녀 옆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어느 멋진 영화의 남자 주인공처럼 그녀에게 정중히 춤을 요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난 저런 춤 못 추는데”, “영어도 못하는데” 찰나의 생각들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3초 정도의 찰나의 순간이었을까? 결국 나는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며 더 접근하지 못했다. 실망한 기운이 느껴졌고 그녀는 한동안 춤추는 인파를 바라보다 자리를 떴다. 

터미널을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아쉬움과 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마음보다 주변 시선을 신경 쓴 나머지 끝내 그녀와 즐기지 못했던 나에게도… 




그날의 분위기


아빠와 딸의 무도


공연 전 터미널에서 펼쳐진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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