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떠나기 일주일 전,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문의 메일에 대한 답장이 왔다. 답장을 읽으며 내려가는데, 한 문장이 내 시선을 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Home of 2NE1”
어떻게 이 문장이 이메일에 쓰이게 된 걸까, 한참 동안 그 이유를 생각했다. 지금이야 방탄소년단 덕분에 외국인들이 한국 가수에 대해서 잘 알고 한국 문화 또한 많이 알려졌지만 그때 당시 전 세계는 대한민국에 대해 다소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해에 싸이가 강남 스타일로 히트를 쳐서 한국 가수하면 싸이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2NE1을 비롯한 다른 가수를 아는 미국 사람이 있을지 의아했다.
당시엔 한국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전방위로 노력하던 시기였다. 무한도전에서는 한국을 알리기 위한 CF를 촬영해서 타임스퀘어에 광고를 하고, 미국에서 한국 식당을 열어보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했었다. 국가에서부터 개인까지 "여기 사람 있어요"라고 할 만큼 우리를 알리기에 열과 성의를 다했지만 응답이 없는 상황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그룹이 2NE1이라는 게스트하우스 주인 루이스의 메일은 반갑고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국뽕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한국을 알아주는 루이스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 그에게 줄 선물을 샀다. 2NE1이 들어가 있는 선물을 좋아할 것 같아 펜시점에 갔다. (당시엔 문구점들에서 스타들의 비공식 굿즈들과 사진들이 판매되었다.) 당시는 소녀시대가 최고 전성기던 시절이라 2NE1 상품이 없어서 아쉬운 대로 소녀시대의 사진과 책받침, 지우개, 스티커 같은 걸 샀다.
놀라운 메일을 받은 지 일주일 후, 나는 퀸즈에 있는 루이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을 했다. "물 한잔 줄까?" 15시간의 비행에 이어 공항에서 1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오느라 기진맥진한 나를 본 루이스가 한 내게 건넨 첫마디였다. "Yes"라고 답하자 유리잔을 꺼낸 루이스는 싱크대의 수돗물을 담아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첫 컬처 쇼크였다. 성의가 없어 보였지만 그의 성의에 반할 수 없어 꿀꺽꿀꺽 마셨다.
루이스는 나를 환대해줬고, 집안 곳곳을 설명을 해줬다. 설명이 끝나고 루이스가 정해준 자리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1층의 사무실에 찾아가 서울에서 가져온 비장의 무기를 건네주었다. “Oh my god!” 나의 선물을 본 루이스는 눈이 동그랗게 뜨며 커다란 리엑션을 해줬다. 나는 2NE1이 아니라 미안해했지만 루이스는 소녀시대도 알고 좋아한다며 어눌한 한국말로 <Gee>를 불렀다. (다행히 율동은 하진 않았다) 낯선 미국 땅에서 잠시나마 한국과 떨어져 보려고 한국인이 없을 것 같은 지역의 게스트 하우스로 예약했는데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을 만나다니. 정말 신기한 인연이었다.
루이스는 40대 후반으로 보였고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사람 느낌이 났다. 어쩌면 하얀 피부의 브라질 사람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갈색의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고, 곱실거리는 컬이 특이했다. 나이와 다르게 장난기가 엄청 많았어서 그를 만나면 나는 장난의 대상이 되었다. 키도 190cm로 보일 정도로 커 보였다. 살짝 다리를 절뚝였는데 젊었을 때 농구를 하다가 다쳤다고 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아들과 딸이 같이 살고 있었고 사연을 알 순 없었지만 아내는 여행기간 내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집을 게스트 하우스로 운영하면서 돈을 벌고, 틈틈이 외부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는 것 같았다. 나에게 장난도 많이 치고 개그감도 상당한 그의 이면엔 무거운 가장의 무게가 함께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 때문에 태권도를 배웠던 그는 태권도 때문인지 한국인 친구가 주변에 많았다고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루이스는 한국이 익숙하고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는 한국의 사회 현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질문을 많이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한국에서 실제로 성형을 많이 하냐는 대한 질문이었다. 당시 한국에선 TV에서 성형을 해주는 프로그램도 생길 정도로 성형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던 시기였다. 이에 다양한 시선과 논쟁이 쟁쟁했었는데 이런 한국의 상황을 미국인인 루이스가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분명히 넘어서고 있었다. 주로 나는 안 되는 영어로 한국 노래 가사 뜻을 가르쳐주고, 그는 미국에 대해 알려주면서 지냈는데 생각해보면 그와 대화하는 건 함께 외출하는 날을 제외하곤 하루에 1시간 이내였다. 게다가 그는 두 자녀를 둔, 나와 20살 가까이 차이 나는 아저씨였지만 이상하게 편안한 동갑내기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 나이 차이가 나면 소통도 안되고 재미없는 개그만 하는 한국의 아저씨가 되던데 나이 차이에 상관없이 유쾌하고 망가지기도 하고 격 없이 지낼 수 있는 루이스가 참 좋았다. 더불어 사람 간에 격의가 없는 이 문화가 참 좋았다. 나 또한 훗날 루이스 같은 아저씨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루이스와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리 맞은편 좌석에 동양인 여자 관광객 둘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들을 보며 루이스가 말을 걸었다.
"저 여자들 어느 나라 사람이야?"
"일본 사람이야"
"어떻게 알았어?"
나는 옷 스타일과 일본어를 듣고 바로 일본인임을 알게 되어서 그것을 설명해 줬다. 루이스는 또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예전에 알려준 Gee 가사의 “예뻐”의 반대말이 한국어로 무엇인지 물어봤다. “못 생겼어”라고 알려주자 잠시 머리를 굴린 루이스는 내게 한국말로 얘기했다.
"일본 사람! 못 생겼어!"
하… 루이스. 넌 정말 한국을 잘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