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했던 13시간의 비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창밖에는 게츠비Gatsby가 살았던 롱아일랜드로 추측되는 긴 섬이 보였다. 도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고 승객들은 이 비행의 끝을 축하하듯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로 축제를 열었다. 하지만 이 축제를 즐기지 못하며 걱정스러워하는 아마 유일한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내 옆자리에 앉은 여인이었다.
나는 일본을 경유하는 델타 항공 비행기를 탔는데 편한 자리를 안내해주는 Seatguru라는 사이트에서 평점이 제일 높은 특별한 좌석에 앉았다. 보통 3개의 좌석이 한 세트인데 내가 선택한 좌석은 2개로 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평가대로 좌석 옆에 넓은 공간이 있어서 매우 쾌적했고 맨 뒷자리라 편하게 시트도 끝까지 누일 수 있었다. 보통 맨 끝자리는 창문이 없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 비상구 자리보다 최고의 명당이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내 옆자리에 누가 앉느냐는 것이었다. 어느 남정네가 그러하듯 여자 사람이 앉아 재밌게 대화하며 여행지에서 로맨스가 펼쳐지는 상상을 했다. 만약 내 상상이 이뤄진다면 열 시간 이상의 비행이 행복할 것 같았다.
넓디넓은 비행기의 좌석들의 빈자리가 점점 채워져 갔는데 내 옆자리는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는데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욱 누가 내 옆자리에 앉을지 궁금해졌다. 거의 모든 좌석이 채워져 있을 때쯤 저 멀리서 할머니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제발 제발!!!"라고 속으로 외쳤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의 이치대로 그녀가 나의 옆자리 인연이 되었다.
자리를 확인한 검은 피부의 그녀는 나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했다. 청바지와 바람막이 같은 외투의 편안한 복장을 입었는데, “New york city”라고 적힌 그녀의 모자를 보며 뉴욕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좌석 위 수화물 칸에 자신 짐을 넣으려고 했는데 늦게 탑승하는 바람에 적당한 자리가 부족해 애를 먹었다. 애를 먹고 있는 그녀를 발견한 승무원들이 도와줘 겨우 짐을 보관할 수 있었다.
짐을 정리한 할머니는 영화에서 본 미국인처럼 적막함을 깨부쉈다. 이륙 후 정상적으로 궤도에 진입할 때까지 순간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우리의 수다는 끊이질 않았다. 할머니는 내가 신기한지 이리저리 말을 거셨다. 그녀는 일본에 있는 자녀를 만나고 미국으로 돌아가시는 길이었고, 일본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영어를 못하는 나이기에 그녀의 말을 잘 알아들 수 없었지만 그녀가 무안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가 말해야 하는 차례가 왔을 땐 너무 곤욕스러웠다. 인터넷이 안 되는 야속한 환경에 아는 단어들을 최대한 끄집어내는 것도 모자라, 손짓 발짓까지 동원해 나의 의견과 생각을 전달했다. 그 과정이 결코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지금 소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나는 할머니와 여행하는 손자가 되었다. 이리저리 나를 챙겨주셨는데 첫 장거리 비행이고 하니 일정 시간이 되면 기내를 걷거나 스트레칭을 하라고 알려주셨다. 또 내가 필요한 게 있으면 승무원을 불러 유창한(?) 영어로 대신 해결해 주셨다. 뉴욕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한 100가지는 된 것 같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며 풍화되어버린 것이 대부분이지만,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 있다. 바로 그녀가 알려준 피자 가게다. 브라이언트 파크 근처에 있는 가게라며 위치를 설명을 해주셨는데 자기가 알려준 모든 정보 중에 이 가게만큼은 꼭 가봤으면 하는 바람이셨을까? 갑자기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손수 지도를 그려주셨다. 할머니의 마음과 정성에 감사했지만 그녀의 설명의 10%도 이해 못 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이 가게라도 꼭 가서 그녀의 정성에 보답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혹시라도 이 지도를 잃어버릴까 봐 아이패드로 그녀의 약도를 찍었다.
점점 착륙이 다가오자 이 영어를 못하는 동양의 어린 청년이 홀로 미국 여행을 가는 것이 어지간히 걱정이 되셨던 것 같다. 또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서 자신의 집 전화번호를 적어주시며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을 하라고 하셨다. 영어라는 큰 벽이 있었지만 왠지 뉴욕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든든함이 생겼다. 비행기는 안전하게 JFK에 도착을 했고 나는 진짜 미국에 왔다. 그녀와 함께 비행기를 내리며 JFK 입국장으로 향했고, 내국인과 외국인이 갈라지는 그곳에서 서로의 행운을 빌며 헤어졌다. 그녀는 손을 흔들며 미소를 보내주었지만, 그 뒤에는 애써 감춘 걱정이 가득했다. 처음 본 낯선 사람에게 베풀어준 애정과 여러 조언에 대한 감사함을 듬뿍 담아 안아드리면서 최대한 내 마음을 전했다.
3주간의 미국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 그녀에게 전화하기 위해 영어 대본을 만들었다. 전화를 걸면 "어... 음..."만 하다가 전화를 끊을 것 같았다. 최소한이라도 그녀 덕분에 여행을 잘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비록 그녀가 알려준 최애 피자가게는 못 갔지만 브라이언트 파크의 아이스링크는 구경했다는 등 나의 여행 이야기를 구글 번역기의 힘을 빌려 대본을 적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공중전화로 그녀에게 전화했지만 아쉽게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 공중전화가 보일 때마다 전화를 했지만 반가운 그녀의 목소리 대신 무심한 연결음만 들었다.
우리 할머니 같은 그녀의 따듯하고 푸근했던 마음에 너무 감사하다. 그녀의 걱정과 축복 덕분에 미국 여행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했던 여행들에서 좋은 인연들을 만나게 된 것 같다. 더 이상 그녀와 연락할 수 없지만 먼 훗날 하늘에서 만나게 된다면 유창한 영어로 나의 여행 무용담을 들려주고 싶다. 걱정이 아닌 기특함이 가득한 동양의 한 청년의 멋진 성장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