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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봉 Mar 15. 2022

다시 만난 세계 in Newyork




“내일 뭐해?”


루이스는 숙소를 나서는 나를 불러 내일 여행 스케줄에 대해서 물었다. 본인이 내일 아케이드arcade를 갈 건데 시간이 되면 같이 가자고 했다. 아케이드가 뭐 하는 곳인지 몰랐지만 그 자리에서 알겠다고 했다. 다음날 만날 시간을 정하고 나는 숙소를 나와 하루의 일정을 시작했다.


다음날 약속시간에 맞춰 만난 우리는 버스를 타고 맨해튼으로 향했다. 아케이드가 뭐냐는 나의 질문에 루이스 답변을 들어보니 우리나라의 오락실 같은 것이었고, DDR(Dance Dance Revolution) 게임을 좋아해서 종종 간다고 했다. 퀀즈에서 맨해튼을 넘어가는 다리 중 하나인 퀸즈버러교Queensboro Bridge가 있는데 이 다리를 기점으로 루이스는 창밖을 가리키며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 역시나 그의 이야기를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맨해튼을 향하는 은색의 낡은 시내버스는 어느덧 나의 관광버스가 되었다. 



딱 뉴욕스러운 풍경



맨해튼 도심에 들어오자 루이스의 안내는 최고조에 이르렀는데, 나에게 무언가 중요한 것을 알려주고 싶은 듯했다.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했지만 맨해튼에 솟아 있는 빌딩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내가 잘 못 알아 들어서 그런가? 내 눈에는 그저 한국에도 있는 콘크리트 더미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솔직히 뭐가 특별하다고 이렇게 설명을 할까라는 불순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국의 빌딩들이 더욱 화려하고 멋진데..' 하면서 말이다.


"빌딩들의 입구를 자세히 봐봐!"


그때 루이스의 한 마디가 내 귀에 꽂혔다. 루이스의 말에 따라 유심히 보니 빌딩 입구들이 저마다의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는데, 마치 조각 작품을 붙여놓은 것 같았다. 루이스는 맨해튼의 빌딩 입구에는 각자 독특한 마크가 있다고 했고, 빌딩을 지날 때마다 그 빌딩의 마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주었다. 맨해튼을 돌아다닐 때 빌딩들을 유심히 보면서 다녔으면 좋겠다며 그의 바람을 말했다.


약 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맨해튼 어딘가에 내렸다. 나는 루이스를 따라 한건물의 2층으로 올라갔는데 한국의 영화관 같은 화려한 공간이 펼쳐졌다. 그동안 봤던 맨해튼의 건조한 분위기와는 너무 달랐던 인테리어였다. 루이스를 따라 그곳에 들어가는데 갑자기 경호원이 나를 막아섰다. 강압적인 말투로 나에게 뭐라고 하며 저지를 했는데 그 모습을 발견한 루이스가 자기 친구라며 경호원을 설득하고 나를 들여보내 줬다. 알고 보니 그곳은 회원제로 운영되는 장소인데 회원카드가 없는 내가 들어가니까 막아선 것이었다. 루이스 찬스로 일반 관광객이라면 들어가기 어려운 곳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루이스는 곧장 DDR 게임기 앞으로 갔다.


“DDR 잘해?”


나름 한국 오락실에서 펌프Pump를 해봤어서 “So So”라고 이야기했는데 얼마 후 겸손하지 못했던 나를 후회했다. 루이스는 정말 DDR의 신이었다. 제일 어려운 모드로 모든 노래들을 해치워나갔다. 발판 위에서 춤을 추는 경지는 아니었지만, 날렵한 몸으로 화살처럼 날아오는 화살표에 맞춰 정확한 타이밍에 버튼을 밟았다. 시간이 지나자 DDR 게임기 주변에는 루이스의 신들린 듯한 플레이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2P모드로 같이 하고 있었는데 점점 모여드는 사람들 때문에 괜히 주눅이 들었다. 나는 조금 비겁하지만(?) 힘들다는 핑계로 그 자리를 떠나 아케이드를 구경했다.


아케이드가 우리나라의 오락실과 달랐던 점은 우리가 ‘오락실’ 하면 떠올리는 모니터 달린 게임기보다 DDR이나 오토바이 게임 같이 체험형 게임이 주를 이뤘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게임을 잘하지 못했고 잘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게임보다는 일행들끼리 대화하며 시간을 즐기는 것이 더 중심을 두는 것 같았다. 게임을 하면 이겨야 하고, 노래방을 가면 노래를 잘해야 하고 술을 마시면 많이 마셔야 했던 내 모습과는 달랐다.


루이스와 아케이드를 다녀온 이후 거리를 걸을 때마다 무심하게 스쳐지나갔던 빌딩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 머릿속에서 빌딩은 그저 네모나고 길쭉한 회색의 배경일 뿐이었는데, 이제 빌딩 고유의 장식과 구조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 다른 건물이지만 하나로 합쳐져 보이는 빌딩, 외관이 금으로 장식된 빌딩 등 빌딩들이 회색을 벗고 새롭게 다가왔다. 루이스의 말대로 빌딩의 입구를 살펴봤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건물마다 각양각색의 문양들이 있었다. 나는 저마다의 얼굴을 가진 빌딩 입구를 미술 작품처럼 구경했다. 그냥 음악을 들으며 걸었던 거리들이 갑자기 관광지가 되었고, 볼거리가 넘치는 거리가 되었다. 뉴욕에 있는 동안은 어딜 가든 빌딩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뉴욕 여행을 마친 지 10년이 지나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순간에도 뉴욕의 빌딩을 보며 여행을 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뉴욕이지만 나는 루이스 덕분에 관광객이면 가볼 수 없는 공간을 만났다. 그리고 혼자 다닐 땐 무미건조했던 뉴욕의 거리와 풍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만날 수 있었다. 2022년에도  여전히 누구에게나 똑같은 뉴욕의 광경이겠지만 그곳엔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만의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


루이스가 좋아한 소녀시대의 명곡 <다시 만난 세계> 영어 제목은 <Into the new world> 다. 여행이라는 것은 어쩌면 다른 세상 사람들의 세상에 성큼 뛰어들어 나의 세계로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아케이드를 루이스의 세상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내가 본 세상은 없었을 세상이니까.



다른 건물이지만 딱 붙어있는 건물. 어떻게 만들었을까?



금빛으로 치장된 건물들



건물 입구의 특이한 문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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