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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선 몰랐던 것들

전등사에서의 첫날, 나는 ‘상락원’이라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이곳은 원래 산장이었다가 직원 숙소로 개조된 곳이었다.
산속에 덩그러니 자리한 이곳에서, 나의 첫 번째 산속 생활이 시작되었다.


20250314_143601.jpg 최근에 방문했는데... 겨울되니 더 삭막하다


처음에는 모든 게 새로웠다.
매일 아침, 삼랑성 성문을 지나 성곽 안으로 출근하는 길.
수백 년 된 소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보물로 지정된 전각들이 자연스럽게 자리한 곳에서 일하는 생활.
도시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일상이었다.

출근길에는 항상 다양한 새들이 눈에 띄었다.
자동차 소음이 가득한 도시에서는
출근길에 이런 광경을 마주하는 게 상상도 안 되는 일이었다.


KakaoTalk_20250324_145849921.jpg 출근길에 다양한 생명체를 만나곤 한다


하지만, 그 로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밤 10시.
전등사의 모든 불이 꺼졌다.
전깃불 하나 없는 어둠이 산속을 완전히 뒤덮었다.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진짜 어둠’이었다.
내가 사는 상락원 주변에는 폐가도 몇 채 있어 더 음침했다.
바람이 불면 어둠 속에서 나뭇가지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도시에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고요함’이었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무서운.


KakaoTalk_20250324_145818280.jpg 밤에는 작은 불빛도 감사했다


첫날 밤, 나는 불을 끄고 누웠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건물 안에 있는 게 아니라,
건물 밖의 어둠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적응하기 어려운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벌레.


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바닥에는 하얀 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작은 벌레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이게 뭐지?"

알고 보니 지네 퇴치용 약이었다.
산속이다 보니 벌레가 많았고, 그중에서도 지네가 특히 많다고 했다.

그리고 곧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문을 열었더니,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지네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절에서는 살생을 하면 안 되니, 용기를 내어 수건으로 포획해 밖으로 내보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그런데 그날 밤, 자다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눈을 떴다.
내 몸 위로 지네가 기어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그날 이후로 온갖 퇴치약을 뿌리고, 초음파 기계를 설치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봤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야기를 직원들에게 했더니,

“여기 있으면 다 한번씩 물려”
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렇다.
전등사에서 지네에게 한 번도 물리지 않고 버틴 나는 행운아였다.

그러면서 문득 깨달았다.

도시에서는 ‘벌레가 나오지 않는 환경’이 너무나 당연했는데,

그게 사실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도시는 철저히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산속에서는 내가 벌레를 피해 다녀야 했지만,

KakaoTalk_20250324_145729590.jpg 벌레 크기도 도시의 벌레와는 달랐다


도시에서는 벌레들이 나를 피해 다녔다.
산속에서는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되었지만,
도시에서는 자연이 인간에게 맞춰 조정되어 있었다.

도시에서는 익숙했던 것들이,

여기서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가로등이 있어서 밤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
에어컨과 제습기가 있어서 습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
마음만 먹으면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 먹을 수 있다는 것.

모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편리함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리고 있었다.

산속 생활이 불편했던 이유는,
도시의 규격화된 안전함과 편리함을 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편리함을 제공하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살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가로등을 점검하는 사람들,
해충 방역을 해주는 사람들,
우리가 몰랐던 수많은 손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도시에 살면서 한 번도 감사해 본 적 없었던 것들.
그게 없어진 환경에서야 비로소,

나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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