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삼랑성 성문을 지나 성곽 안으로 들어섰다.
길을 따라 오래된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었고,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서걱이며 속삭였다.
사무실이 있는 종무소로 향하는 길목에는 보물로 지정된 전각들이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매일 수백 년 된 성문을 지나 출근하는 기분이란…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신비로웠다.
전등사에 입사했을 때, 대웅전은 복원 공사 중이었다.
웅장해야 할 대웅전은 나무로 기둥을 지탱하고 있었고, 문은 임시로 합판으로 덧대어져 있었다.
전등사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공사 중인 대웅전은 왠지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문화재가 복원되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나는 대웅전과 석축 복원 담당자로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벌써 4회차였다.
복원 공사를 담당하는 HS건설(가명) 대표님이 오래된 문헌과 사진 자료를 조사하여 가져오셨고,
전등사 직원들과 주지스님은 "어떤 모습으로 남길 것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토론을 벌였다.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남길지, 시대에 맞춰 보완할지.
그 과정에서 복원이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다시 세우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복원은 고증과 현실 사이의 치열한 절충이었다.
회의 자료를 보면서 전등사의 모습이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대웅전 앞에 계단이 있었다가 사라지기도 했고,
대웅전 뒤에는 과거에 담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터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전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이미 많은 변화를 거쳐온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의 전등사의 모습은 오랜 세월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 왔다.
어느 날, HS건설의 이사님과 복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스님들이 절의 구조를 바꾸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게 전통을 지키는 걸까요?”
이사님은 웃으며 답했다.
“그것도 전통이죠”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통을 지킨다는 건, 옛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이사님은 전등사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은 ‘회주 스님의 감각’이라고 했다.
지금의 전등사는 단순히 몇백 년 전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회주 스님께서 전등사와 삼랑성의 조화를 고려하여 가꾸어 오신 결과였다.
사찰이 무조건 오래된 건축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면,
새로운 건물을 짓거나 바꾸는 것은 어쩌면 ‘전통을 훼손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통은 단순히 물리적인 건축물이 아니라, 그 공간이 품고 있는 정신과 조화가 아닐까?
사실, 절마다 분위기가 다 다르다.
어떤 절은 지나치게 화려한 불사를 진행하면서 오히려 본래의 정취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전등사는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았고,
시간이 쌓여온 듯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사님은 그 균형이 바로 ‘회주 스님의 감각’에서 나온 것이라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전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절이라는 공간도 결국,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채워나가는 것이다.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손길이 닿으며 이야기가 더해지는 것.
그 또한 전통을 이어가는 방법이 아닐까?
전등사에서 일하며, 문화재는 스님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문화재지킴이분들이 와서 벌초를 해주고,
문화재에 관심 있는 분들이 사진과 자료를 찾아 보내주시고,
그렇게 전등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로 유지되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절에서 일하는 우리도 어쩌면 전통의 수호자가 아닐까?
우리가 매일 문을 열고, 마당을 쓸고,
절을 찾는 이들을 맞이하는 것.
그 모든 순간이 전통을 이어가는 과정인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고민이 남는다.
‘전통’이란 결국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디까지를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새로운 것을 더하는 것도 전통이라면,
언젠가는 지금 우리가 바꾼 것들이 또 다른 옛것이 되겠지.
그렇다면, 나는 지금 전통을 지키고 있는 걸까,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는 걸까?
아마 이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