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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모인 작은 아시아

전등사에서 이주민 축제가 열린다는 말을 들었을 땐, 솔직히 좀 놀랐다.

절이라는 공간과 ‘다문화 축제’는 쉽게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축제는 무려 19년이나 이어져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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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의 회주 스님께서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들을 위해 시작한 행사인데

불교와 직접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행사를,

스님이 19년간 꾸준히 이어오셨다는 사실은 꽤 인상 깊었다.

지금이야 이주민이 많고 외국인과의 교류도 활발하지만, 19년 전이라면 꽤나 선구적인 시도였을 것이다.

축제 당일, 전등사의 분위기는 평소와는 완전히 달랐다.


20240609_134417.jpg 엄청난 인파가 전등사에 모였다.


경내에 무대가 세워졌고, 약 700명의 외국인 참가자들이 전등사에 모였다.

각국 이주민들이 자신들의 전통의상과 춤, 음악을 선보였고

젊은 친구들은 K-POP 댄스를 추며 환호를 받았다.

다양한 언어, 향신료 향이 감도는 음식 부스, 전통의상, 웃음소리, 뛰노는 아이들…

이날만큼은 전등사가 작은 아시아가 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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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 매년 참석해 오신 동국대학교한의대 교수님도 만날 수 있었다.

외국인들을 위한 간단한 진료를 해주시고 계셨는데, 짧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매년 오시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라고 인사를 드리자, 교수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내셨다.

“처음 왔을 땐 얼굴에 그늘진 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이주민들 얼굴이 밝아졌어요. 뭔가 살아갈 힘이 생긴 표정이에요.”

19년 동안 사람들을 지켜봐온 이의 말이었기 때문에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20240609_112141.jpg 동국대 의료 부스에서


실제로, 베트남 이주민들은 이번 행사에서 자발적으로 부스를 열고 싶다고 요청해왔다.

그동안은 초청을 받고 참가하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이 자리를 꾸려보고 싶다'고 말할 만큼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부스에서는 베트남 전통 음식도 팔고, 자신들의 문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20240609_101532.jpg 베트남 부스


그 모습을 보며,

'아, 시대가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하고 느꼈다.

이주민들이 이제는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고,

더 이상 도움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능동적으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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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축제의 목적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19년 전엔 이주민들이 막막한 한국 생활 속에서 위로를 받는 행사였다면,

이제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서로를 축하하고 이해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 속 이주민’이 아닌,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바라보며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


그건 아마도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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