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종무소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검은 옷에 커다란 짐가방을 맨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들었다.
전등사는 관광지이기도 해서 종종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스님을 찾아오는 이도, 기도를 하러 오는 이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다분히 ‘목적’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그래서 처음 보는 낯선 얼굴에 나도 모르게 살짝 긴장했다.
그 남자는 자신을 3D 스캐닝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전등사 전체를 스캔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이것저것 질문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계시던 총무 스님께서
조용히 그를 불러 회의실로 들어가셨다.
사실 나도 조금 의아했다.
이 낯선 제안을, 스님께서 이렇게 빠르게 반응하실 줄은 몰랐다.
그런데 알고 보니, 스님께서는 이미 계획이 있으셨다.
전등사에 새로 짓고 있는 역사문화교육관에서 활용할
전등사의 디지털 콘텐츠를 고민하고 계셨던 것.
그러던 차에 이 3D 스캐닝 제안이 딱 들어맞았던 거다.
그야말로 ‘찰떡같이’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나는 그때 ‘디지털 트윈’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3D 스캐닝이라는 말은 익숙했지만,
‘트윈’이라는 말이 붙으니 묘하게 어렵고 낯설게 느껴졌다.
디지털 트윈이란, 현실 공간을 똑같이 가상에 복제하는 기술이다.
일종의 메타버스이자, 평행세계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사람이 없는 시간에 촬영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스캔은 새벽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나도 평소보다 훨씬 일찍 출근했다.
새벽 안개가 걷히지 않은 전등사의 전각들을
차분하게 훑고 지나가는 레이저 빛과 장비들의 움직임은
묘하게 신비롭고, 신선했다.
며칠 후, 전등사의 3D 스캔 작업은 완료되었고
구글에서는 전등사 내부를 로드뷰처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사찰 안을 걸으며 내부 구조를 보는 건 이제
단지 ‘절에 와야만 가능한 경험’은 아니게 되었다.
이 일을 지켜보며 가장 크게 든 생각은
“두드려야 열린다”는 것이었다.
업체 사장님도 사실, 퇴짜 맞을 각오를 하고 오신 것 같았다.
워낙 전통적인 공간이다 보니
최신 기술과 접목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그런데 그날 우연히 스님이 이야기를 들으셨고,
생각보다 빠르게 일이 진행되면서
그분도 약간은 어리둥절한 듯했다.
하지만 역시 인연이라는 건 그런 것 아닐까?
될 일은, 어떻게든 되는 법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