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대로 된 자식이 못 되어 죄송한 마음
칠백만원
박형준 시인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식구들 몰래 내게만
이불 속에 칠백만원을 넣어두셨다 하셨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불 속에 꿰매두었다는 칠백만원이 생각났지
어머니는 돈을 늘 어딘가에 꿰매놓았지
대학 등록금도 속곳에 꿰매고
시골에서 올라왔지
수명이 다한 형광등 불빛이 깜빡거리는 자취방에서
어머니는 꿰맨 속곳의 실을 풀면서
제대로 된 자식이 없다고 우셨지
어머니 기일에
이제 내가 이불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얘기를
식구들에게 하며 운다네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가 이불 속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내 사십 줄의 마지막에
장가 밑천으로 어머니가 숨겨놓은 내 칠백만원
시골집 장롱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는
이불 속에서 슬프게 칙칙해져갈 만원짜리 칠백 장
몇 달 전 필사를 하면서 어머니를 많이 떠올린 시가 바로 박형준 시인의 '칠백만원'이다.
특히 '제대로 된 자식이 없다고 우셨지'하는 시구에서 좀처럼 눈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한 살 때나 나이 막 오십이 넘었을 때나 늘 걱정만 하게 만든 자식.
어제 저녁 퇴근길 우산을 쓰고 천천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고개를 돌려 꽃집에서 잠시 멈춰서서
비 맞고 있는 카네이션 바구니와 화분을 지그시 응시하였다.
그러다가 이제 이걸 사가더라도 받아줄 이 없다는 생각에
한참동안 바라보다 천천히 갈 길을 재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