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브루타는 보물창고예요
오늘은 무슨 글을 써야 할지 어제 저녁부터 생각이 많았다. 일상에서 보석을 발견해내야 하는데 휴일인 어제는 저녁 먹을 때쯤 되어서야 아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보았다. 오물오물 작은 입뿐 아니라 볼까지 잔뜩 묻혀가며 먹는 아이들. 아직도 앳된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왜 이제야 아이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을까 후회가 남는다.
무슨 글을 써야 하나 어제부터 고민했지만 결국 글감이 떠오른 것은 새벽에 일어나 오늘의 일정을 써 내려갈 때쯤이었다. 얼마 전 아이들을 재우며 나누었던 보석 같은 대화가 문득 떠오른 것이다.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출애굽기 12장 29, 31절)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시대다. 무수한 박해를 받으며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과 하신 약속을 기억하여 모세를 통해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하시는 역사. 여러 재앙으로 애굽 땅을 치시지만 바로가 마음을 완악하게 먹고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다가 장자가 죽는 재앙 후에야 내보내는 장면을 읽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 유월절 음식을 급하게 먹으라고 했는데 애굽에서 빨리 도망쳐야 하는데 어떻게 급하게 먹어? 낙타나 말 위에 앉아서 달리면서 먹어?"
시각화하며 읽고 이해하는 첫째는 말씀을 읽어줄 때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눈앞에 그려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 바로는 왜 첫째가 죽으니까 이스라엘 보고 나가라고 했어?"
"왜 그랬을 것 같아?"
"바로는 첫째를 제일 좋아하나?"
어쩌면 관계 중심적일 수 있는 둘째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한다. 문득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럼 바로는 둘째가 죽으면 이스라엘을 안 내보냈을까?"
"..."
"첫째가 죽으니까 둘째도 죽고 셋째도 죽으면 어쩌지 하고 무서웠을까?"
"응, 그랬을 것 같아."
"첫째가 죽으니까 바로가 둘째도 죽을까봐 무서워서 얼른 이스라엘을 내보냈구나."
성경 말씀을 읽다 보면 장자와 차자의 이야기가 유난히 많이 나온다. 둘째는 은연중에 자신에게 대입해서 읽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 아빠도 형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바로도 첫째를 제일 좋아하나보다 하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둘째도, 셋째도 사랑했을 바로의 마음을 읽게 해 주니 그제야 둘째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둘째와의 관계가 많이 삐걱대는 요즘 오랜만에 둘째가 옆에 누워 엄마 손을 꼭 잡고 잠이 들었다.
하브루타는 말 그대로 짝을 지어 이야기하는 것이다. 간단한 질문과 대답의 연속일 수도 있고, 쟁점을 정한 뒤에 하는 토론이 될 수도 있다. 성경을 읽어주고 "궁금한 거 있어?"라는 단순한 질문에도 아이들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렇게 쉽게 하브루타에 접근할 수 있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말씀을 읽어주며 첫째, 둘째와 간단히 나눈 하브루타를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 책에서만 읽었던 하브루타의 유익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하브루타를 하면 좋은 점
하브루타 첫걸음이라 글의 제목을 정하고 써 내려가는 이유는 하브루타에 대해 전문적인 글이 되지 못할 것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기 위해서다. 교사 재직 중에 받은 하브루타 연수, 그리고 최근에 읽은 하브루타 서적 1권이 하브루타에 대한 지식의 전부이다. 그렇게 얕은 지식에도 불구하고 하브루타가 어떻게 좋은지 깊이 느꼈다. 그리고 홈스쿨러로서 내가 발견하고 느낀, 하브루타를 하면 좋은 점을 이야기하려 한다.
첫째, 하브루타를 하면 자녀에 대해서 깊이 알게 되어 좋다.
하브루타는 대화다. 자녀와 하는 하브루타라면 자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단순한 대화와 구별되는 점은 부모가 자녀의 이야기를 시답지 않게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들어주고 수용해준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자녀의 입장에서는 더 깊이 부모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어떤 질문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 또한 부모의 입장에서도 자녀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니 자녀에 대해 더욱 깊이 알아갈 수 있다. 첫째와 하브루타를 하다 보면 첫째에게 어떤 필요가 있는지 발견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 시각화하며 이해하는 첫째는 요즘 성경을 읽든, 책을 읽든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지 궁금해한다. 첫째에게 이제야 역사에 대해 가르칠 때가 되었구나 싶다. 특히 고대 문화사에 대해서, 즉 옛사람들이 어떻게 입고, 어떻게 식생활을 했으며, 어떤 집에 살았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대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아이의 필요를 보여주시고 교육과정을 계획하게 하신다.
둘째, 하브루타는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다.
애착 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놀이'를 이야기하시는 분이 많다. 아이들과 살을 부대끼며 함께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브루타도 애착 형성에 큰 도움이 된다.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어주다 보면 자기가 품은 마음대로 이해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특히 둘째가 바로는 왜 첫째가 죽자 이스라엘을 내보냈냐고 질문하는 것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늘 형과 경쟁해야 하고 형이 가지고 있는 것이 늘 더 좋아 보이는 둘째에게는 그 구절이 그렇게 보인 것이다. 하브루타를 하다 보면 질문과 대답이 계속 이어진다. 그 속에서 아이는 자기 속내를 내비치게 되고, 부모는 아이의 속내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면 그 마음을 만져주면 된다. 역시 질문과 대답을 통해서 말이다. 바로가 둘째, 셋째도 죽을까봐 얼른 이스라엘을 내보낸 것 아닐까 하는 대답에 둘째는 환한 얼굴로 기뻐했다. 그 마음이 만져진 것이다.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자 엄마의 손을 진심으로 잡아주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면 아이들에게 엄마의 감정을 쏟아낼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내가 이런 모습인데 아이들에게 더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 기관에 보내면 더 인격적이시고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날텐데 그런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더 좋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홈스쿨링의 길에서 갈팡질팡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달리는 중이란 것을 잊지 말자.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 아이들이 잘못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지키시고 많은 도움을 곳곳에 배치해놓으셨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편 2절)." 하브루타도 주님께서 주신 도움 중 하나다. 밤에 자기 전에 나누는 하브루타를 통해 서로의 감정을 씻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진한 애착이 형성된다.
셋째, 하브루타를 통해 정체성 또는 신앙을 전수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그 오랜 기간 흩어져 살아오면서도 민족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안식일 식탁을 이야기한다. 안식일 식탁을 지키며 그 안에서 이루어진 가족시간, 즉 가족과 함께 '부지런히 말씀을 강론(talk about)'한 시간을 통해 민족성과 부모의 신앙이 전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주님께서 민족의 문화를 만드시고, 지키게 하시며, 그 속에서 부모의 신앙을 전달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 가정의 문화도 이러한 관점으로 돌아보자. 우리 가정의 일과, 가정 특유의 문화 등을 살펴볼 때 주님께서 신앙 또는 가정의 정체성이 전수되도록 고안하셨을 것 같은 시간이 있는지 돌아보자.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하는 유명한 말씀, 쉐마에도 나와 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명기 6장 6-7절)" 일과 중 언제라도 말씀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시간을 통해 자녀에게 주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칠 수 있다. 말씀으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가정예배를 드리는 시간 또는 놀아주는 시간, 책 읽어주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하다못해 엄마가 집안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이 옆에서 사부작 거리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잠자기 전에 하는 하브루타를 통해서도 말씀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모든 시간이 주님이 의도적으로 고안하시고 지키게 하신 시간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자. 다른 특별한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신앙이 전수되도록 계획하셨다면 우리는 그 시간을 사수하고 또 그 시간 가운데 더욱 주님과 동행하며 말씀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소개하고 싶은 하브루타의 좋은 점은 바로 사고력에 관한 것이다.
사고력은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통해 길러진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은 질문을 통해 할 수 있다. 질문을 통해 아이에게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부모가 질문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아이가 질문하는 것이다.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도 스스로 생각할 좋은 기회가 된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출애굽기 14장 21-22절)
출애굽 여정에 대해 말씀을 읽어주고 있을 때였다.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는데 어떻게 물이 좌우에서 벽이 돼?"
시각화하기 좋아하는 첫째가 말씀을 한참 듣더니 질문했다. 동풍에 대해 설명하고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며 아이와 한참 이야기 나누는데 나도 어떻게 좌우에서 벽이 되는지 모르겠다. 말씀을 다 읽고 나서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정말 이 대목으로 연구한 과학논문이 꽤 있었다. 그중 제일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아이에게 설명해주었다.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질문이었는데 귀하게 여겨주니 정말 귀한 질문이 되었다. 스스로 한 그 질문으로 이리 가설을 세워보고 저리 가설을 세워보며 나름의 연역 추리를 해본 것이다. 과학과 관련된 질문이 아니더라도 하브루타는 일상의 모든 문제를 철학적인 질문과 연결시킨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어떤 현상을 통해서도 스스로 의문을 갖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하브루타는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하는 좋은 장(場)이 된다.
하브루타, 어떻게 할까
하브루타를 하는 방법은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복잡다단하게 논해야겠지만 여기서는 첫걸음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좋은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려고 할 때에는 시작하기 쉽게 부담 없는 보폭으로 발걸음을 떼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하브루타의 첫걸음은 하브루타는 질문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도 철학적인 질문과 연결시키는 지름길은 부모가 또는 자녀가 상황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굳이 의도를 가지고 토론의 상황을 만들지 않아도 질문 하나로 하브루타가 시작된다.
하브루타가 질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연습을 해보면 어떻게 질문하는 것이 자녀와 깊은 대화를 나누게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첫걸음은 "왜"그리고 "만일"이다. 이 두 가지 질문만으로도 하브루타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왜 받지 않으셨을까, 만약에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이미 받은 사람들이 가나안 전쟁에서 앞에 서서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할 수 있고, 성경 말씀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뿐 아니라 왜, 그리고 만일의 질문은 아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문제에 적용할 수 있고 이것은 성품교육과 연결되기도 한다. 훈육해야 할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 단순히 판결을 내리고 야단을 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왜), 모두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만일)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 스스로 문제를 깨닫고 해결방안을 찾는 데까지 나아간다. 형제가 함께 놀다가 문제가 발생한 경우 원인을 찾고 사이좋게 놀기 위한 방법을 찾는 훈련을 돕자. 이는 단순히 해결방법을 찾고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한 훈련을 통해 해결방법을 찾고 상황을 해결한 경험이 쌓이면 '나는 형과, 동생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고 '문제를 건강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강한 정체성이 형성된다. 이는 나아가 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기꺼이 선택할 수 있게 한다.
둘째, 구체적으로 하브루타 훈련을 시작했다면 많은 내용보다 한 내용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이 좋다. 하브루타는 학습이 아니라 훈련이기 때문이다. 훈련이기 때문에 또한 하브루타는 정기적으로, 꾸준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하브루타는 어떤 면에서 질문이자 반응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질문하고, 또한 아이의 어떠한 대답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반응이 오갈 때 심도 있는 하브루타가 이루어질 수 있다.
첫째가 말도 못 하던 어린 시절부터 성경동화로 알게 모르게 하브루타를 해왔다. 책을 읽어줄 때 아이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읽는 게 좋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었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가지만 무작정 질문해보고, 질문하면 옹알이나 의성어로 대답하곤 했다. 좀 더 자라 제법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했을 때는 하브루타의 맛을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성경도 아니고 성경동화를 보면서 아이가 던진, 다소 엉뚱하게 느껴지는 질문을 곱씹노라면 엄마인 내 묵상부터 깊어진다. 귀하게 여겨주면 귀한 질문이 되곤 한다. 아이와 서로 부딪치고 생채기를 하나둘 만들곤 하는 요즘은 하브루타를 하며 울컥하기도 한다. 아이의 마음이 만져지고 내 마음이 씻겨지는 것이 느껴져서다. 이 모든 시간이 하브루타를 통해 아이도 부모도 함께 자라는 시간이다. 하나님이 부모와 자녀를 위해, 가정을 위해 고안하신 하브루타를 오래오래 꾸준히 해나가고 싶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