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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

퍼포먼스 

by 재비 Jan 31. 2025


'베이글 좋아해요?'


라고 묻는 대표님의 말에

'딱딱하고 질겨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라고 나는 대답했다. 모양만 베이글을 만들어 봤지 실제 업장에서는 데치기 과정을 생략하는 곳이 많았다. 심지어 진짜 그 과정을 거친 베이글 중에 맛있는 곳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가본 적은 없었다.

'나는 베이글을 만들고 싶어요. 예전에...'

대표님은 예전에 먹었던 베이글 얘기로 시작해서 베이글 단일품목으로 전문점을 생각한다 하셨고, 이 매장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싶어 하셨다. 



베이글은 질기고 단단하다.라는 인식이 내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보탰다.

'모양과 공정은 베이글처럼 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게 부드럽지만 쫄깃하게 만들면 반응이 좋을 거 같습니다.'

라고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표님과 같이 있던 면접관의 눈이 빛났다. 급여도 직전회사보다 적었고, 복지나 다른 처우들도 없었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고 또 그 초석이 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 설레었다.



그렇게 얼마 후 입사를 하게 되었다. 대표님은 급하셨는지 기존 인계 부분보다 입사 첫날에 바로 서울로 시장조사 겸 다녀오자고 하셨다. 그 면접관이었던 어린 친구와 나, 대표님 이렇게 당일 일정으로 새벽 4시에 KTX를 타고 상경했다. 지금이야 지점도 많고 유명하지만 그때 당시 오픈한 지 1,2개월밖에 안되어서 본점밖에 없었던 북촌의 베이글전문점, 영등포에 지점이 있는 베이글 전문점에 가서 제품도 다양하게 먹어보고 전체적인 매장도 둘러보았다.



그리고 부산에 와서 본격적으로 신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기존 베이커리 직원들은 인계를 하루 해주고, 퇴사해 버렸고 나는 기존제품을 하며 개발을 해야 했다. 쫄깃한 맛을 위해 탕종이나, 타피오카 등 을 첨가해 테스트해보기도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클래식으로 돌아갔고, 레시피를 계속 고쳤다. 꼬박 3주 정도가 걸렸다. 초기 라인업 12종 크림치즈 8종. 기장의 한 카페에서 소소하게 베이글을 런칭하게 되었다.



런칭하고 얼마 되지 않아 점점 입소문이 나며 손님들이 늘었다. 11월에 입사하여 12월에 런칭하고 바쁜 나날을 보냈다. 개발했던 레시피는 믹싱시점이나, 발효점 등 디테일한 부분을 계속 조율하며 완성도를 높여갔고, 새로운 제품도 몇 개 도전했다.



2개월이 지났을 무렵 대표님께서 부산 전포동에 분점을 낼 예정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현재와 같이 단일 품목으로 베이글을 판매하기로 결정했고, 매장이름을 다르게 해서 오픈하기로 했다. 그 매장의 오픈멤버 교육을 기장에서 2-3주 진행했다. 아무래도 상권이 다르기도 하고, 당시 핫하던 전포카페거리나 중심가와도 많이 멀었다. 공사하는 곳을 가봤지만, 유동인구는 거의 없이 차만 다니는 길이었다. 타깃광고나 마케팅을 따로 하지 않고 그냥 자연빵(?)으로 5월에 오픈했는데 카페, 디저트 쪽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다녀가면서 갑자기 손님이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입사한 지 반년만에 직영점이 2개가 되었다.



전포에 오픈한 베이글 매장은 생각보다 기세가 대단했다. 유동인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픈시간에 맞춰서 손님들은 줄을 서고, 금방 제품이 바닥났다. 내가 만든 제품은 사실 대표님 입장에서는 효율이 좋지 않은 제품이다. 손이 많이 가고, 예민하고, 작은 부분이라도 놓치면 귀신같이 티가나는. 그런 제품의 퀄리티를 지키기 위해 나는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관찰하고, 또 보완했다. 그리고 그 방식들을 직원들이 알 수 있도록 교육에 전력을 다 했다. 성형방법도 처음에는 밀대로 미는 방식에서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내용물이 들어가지 않은 제품은 밀대를 사용하지 않고 만드는 방식으로 바꿨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포에.. 아니 부산 전체에 베이글 전문 매장이 엄청나게 많아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우리 매장보다 컨셉이나, 기획력, 인테리어가 좋은 매장은 많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느 날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광안리에 매장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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