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우리 광안리에 매장할 거야.'
대표님의 그 한마디에 나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매장은 2개월 후에 전포랑은 또 다른 이름으로 오픈한다고 하셨다. 그때 당시 전포에 있던 직원이 팔을 다치면서 기장과 전포를 오가며 정신없이 매장 2곳을 관리하고 있었다.
광안리 매장을 할 자리는 50평 정도 되는 규모에 바로 바닷가 앞이라 유동인구가 정말 많았다.
그럼 베이커는 최소 5~6명은 있어야 할 텐데 그 친구들을 언제 구하고, 언제 교육시키지..?라는 생각에 갑자기 막막해졌다. 기복이 심하고 예민한 제품을, 직영점 3곳에서 직원들이 제대로 생산하록 만들고 싶은데 시간이 촉박했다.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잘 만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광안리 중심에 베이글 매장을 오픈하기 위해 본격 오픈멤버를 구인하기 시작했고 면접만 30명 이상을 봤다. 아무나 뽑고 싶지 않았다. 이 소중한 제품을 잘 구현해 줄 좋은 베이커를 채용해서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오픈멤버로 고르고 고른 팀원 4명이 전포의 작은 매장에서 1달간 트레이닝을 받고, 광안점에서 근무하기로 했다.
기본 철거 작업이 시작되고 베이커리실 동선을 이리저리 짜봤다. 기장에 매장은 기존 제과를 하던 동선에서 가스버너로 베이글을 데치는 열악한 환경이었고, 전포는 동선이랄 것도 없이 기계만 다 들어가도 다행일 정도로 좁았다. 하지만 광안점은 확실히 수요도 많고, 매장도 크기 때문에 무조건 생산량이 많을 것을 예상. 베이커리실을 좀 넓게 빼서 동선을 짰다.
1달 후 5월 5일 어린이날 오픈하게 된 광안점. 신입 4명 기존 전포점에서 오픈멤버로 일했던 직원 1명 그리고 나. 이렇게 6명에서 오픈을 했다. 그날은 비가 많이 왔다. 손님들이 너무 많이 몰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베이글은 1시간도 안 돼서 준비한 물량이 전부 소진되었다. 제품은 턱없이 부족했으나,
'여기서 모자란다고 기준치 미달 제품을 냈다가는 그대로 나락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생각했다. 텅 빈 매대를 등지고 베이커리실을 보는 손님들의 눈에서, 그리고 그 손님들을 놓친 대표님의 눈에서 무언의 압박을 느꼈다. 하지만 직원들을 다그친다고 더 나올 수 없는 상태였다. 시간이 해결해 주길 바라면서 쉬는 날 없이 3개월을 출근하는 기염을 토했다. 매뉴얼도, 직원들의 숙련도도, 매장의 분위기도 안정돼 가는 모습을 보니 힘이 났다.
6개월이 지나, 광안점은 직원이 9명이 되었다. 생산량도 늘렸고, 어느 정도 안정화는 됐으나 제품은 내 기준 균일하게 나오지 않았다. 그땐 매장에서 직접 반죽을 쳐서 생산하는 방식이었는데, 제빵개량제나 영양강화믹스, 비타민 등을 사용하지 않는 레시피라 믹싱시점을 비롯해 모든 공정에 따라 제품이 들쑥날쑥했다. 매번 광안점에 가서 반죽을 체크했고 그건 나머지 직영점 2곳도 마찬가지였다. 직영점 3곳의 제품균일화를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나는 늘 각성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베이글로 프랜차이즈 하자!'
'네? 프랜차이즈요? 절대 안 됩니다.'
라는 내 외침은.. 대표님의 실행력에 묻혀버렸다.
이미 부암동에 건물은 2층 베이글 생지공장과 1층의 4번째 직영점을 생각하시며 철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내 기준에 우리 직영점 베이커들도 아직 더 가르쳐야 하는데 전공자나 경력자도 교육해도 겨우겨우 따라오고 있는데 프랜차이즈라니 그렇게 양산형으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이 아니었다. 못합니다 안 합니다 해도 이미 내 머릿속은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 생각해. 생각해.
부암점은 냉동생지로 제품을 만드는 첫 번째 매장이 될 거였다. 동선에 반죽기계와 작업대를 빼고 4 도어 냉동고와 도우컨디셔너를 넣었다. 2층은 해썹시설로 설비해야 지점에 납품이 가능했다. 컨설턴트를 꼈지만, 안에 들어가는 기계장비나 동선은 내가 다 컨텍하고 짜야했다. 스트레이트 베이글반죽을 냉동생지로 레시피조정을 해야 하고, 생지 매뉴얼을 정립하려면 수많은 테스트가 필요했다.
이미 프랜차이즈 사업하는 곳이나 대형프랜차이즈는 원래 있는 틀에서 일을 하지만, 내가 개국공신이 되어 모든 걸 새로 만드는 건 또 다른 경험이었다. 매장 하나 오픈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해썹공장과 직영점 동시 오픈이라니.. 체력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해야지. 해내야지.
해썹시설 승인을 받으려면 그 업종에 맞게 실구분 등 내부 공사를 진행하고( 요구하는 기준의 자재들로 공사를 해야 한다.) 사용하는 기계장비, 서류나 시스템을 먼저 갖추고 인증원에 신청해서 승인을 받아야지 공장을 운영할 수 있다. 해썹팀장 교육도 받아야 하고, 해썹이 원하는 서류상 시스템과 동선, 그리고 직원들이 일하기 좋은 동선의 교집합을 찾아내야 했다. 시공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냉동생지 테스트에 들어갔다.
이스트를 냉동용으로 바꾸고 천연발효종인 르방비율도 조정했다. 그래도 냉동생지는 개량제가 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했지만 생지를 만드는 공정과, 생지를 해동하고 나서 공정을 조금만 신경 쓰면 개량제 없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제품이 나왔다. 오픈전인 부암점 1층과 공장 2층을 오가며 테스트를 했고, 오픈일이 임박해 왔다. 해썹시설도 무난하게 인증받았다. 부암점을 오픈하며 생지 매뉴얼을 만들었다. 2개월 후 각 직영점도 생지 시스템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기계도 교체하고 교체시기에 맞게 생지를 보내서 발효점, 특성 등 냉동생지 교육을 3일 정도 각 매장에서 진행했다.
공장에서 만든 냉동생지가 안정적으로 직영점에서 구현될 때 한시름 놨다 싶었으나, 가맹사업이 빠르게 진행됐다. 가맹사업은 그냥 도장만 찍는다고 오픈할 수 없다. 점주님이 받을 가맹교육에 대한 자료가 필요했다. 교육기간은 10일. 그 교육기간 안에 모든 커리큘럼을 녹여야 했다.
'나...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