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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

내 인생의 챕터 1

by 재비

사장님은 얘기했다.

' 학원은 가면 안돼. 가면 자격증 따기 위한 수업만 하고, 실무에서는 별로 쓸 일이 없다고. 케이크 아이싱도 배우고, 이론도 많이 배우고 싶으면 내가 얘기하는 곳에 원서 넣어봐 '


그래서 원서를 넣은 게 C*에서 나온 프랜차이즈 제빵 브랜드 'T'사였다.

대기업이기 때문에, 제빵기사를 양성하기 위해서 1년에 3~4번 신입 훈련생들을 뽑아서

교육을 시킨 뒤에 기사로 채용하는데, 거기 훈련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었다.


훈련원에서 가르치는 것은 크게 3가지였다.

1. 제과제빵 기초지식과 냉동생지의 이해

2. 일반 스트레이트 반죽과 냉동생지 실습

3. 케이크 아이싱 연습, 데코 연습


9시부터 6시까지 월-금 이렇게 실습을 진행하고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은 쉬는 날이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훈련원에 있다가, 일정이 끝나면 7시까지 다시 매장으로 가서 11시나 12시까지

마감 아르바이트를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때 매달 내야 하는 돈이 학자금 대출, 핸드폰 요금, 차비, 용돈 정도여서

최소 50만 원 이상은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풀로 근무를 하고, 평일에는 저녁에 마감 근무를 하면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으면서 사장님이나 사모님을 만나면 한 번씩 물어보셨다.

'교육받는 건 어때?'

'재밌어요! 손으로 만들고 하는 게 신기하고, 매장에서 본 게 있어서 그런지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사장님은 '수료하고 우리 집에서 일할 생각은 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처음에는 무슨 말이지? 생각하다가 그 말을 들은 나도 마음이 상해서 '안 할 거예요!'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3개월 동안의 교육을 수료할 시점에 같은 기수 사람들과 많이 친해졌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알게 되는 건 좋은 일이었다.

중간중간에 실습한 내용들로 시험을 치기도 했는데, 케이크 만들기에서 top3로 뽑혔었다.

그때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학교 공부도 그렇고 흥미가 없어서 대충대충 했던 일에 비해서

내가 직접 만든 제품이 인정을 받는다는 건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나름 그 기수에서 에이스라고 칭찬받으며 훈련과정을 마쳤으나, 나는 제빵기사로 취업하지 않았다.

교육을 해주신 선생님도 나에게 추천을 해주셨지만, 내 마음은 더 깊이 있게 배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은 케이크를 만들기 위한 시트나, 빵 반죽들이 냉동해서 들어오는 시스템이어서,

깊게 처음부터 뭔가를 배울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수료를 하고 모든 사람이 다 제빵기사로 취업하는 건 아니었다.

중간에 이탈하는 사람도 생기고, 선생님과 면담을 진행하고 낙오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 1/3 정도가 기사로 취업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수료할 때쯤 시험 쳤던 날 만든 케이크를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가지고 갔었는데,

사장님이 대뜸 '니 거기에서 케이크시험 봐서 1등 했다며'

'네'

'언제부터 출근할래?'

'네? 갑자기요?'

하면서 말을 했는데, 생각해 보면 다른데 보다 알고 있는 곳이 더 나을 거 같아서

그냥 급여도 안 물어보고 바로 일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집 빵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수료 후 바로 일하게 되었다.


내가 일하는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에게 신사답고 친절했던 공장장님이 '이제 말 놓을게'로 시작하면서 내가 일을 잘 못하고 늦거나 실수할 때는 ' 야이씨! 내일 갈 거야? 왜 이렇게 늦어 이거 ' 라며 거칠거칠한 공장장님으로 변했다. 물론 이해했다. 늦었으니까. 하지만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경상도 남자 특성상 그냥 억양이 그럴 뿐이지 사장님도 그렇고, 공장장님도

나에게 나쁜 감정이 없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오래 해서 그때 깨달음으로 '네네'하며 깍듯하게 해 봤자

나한테 좋을 건 없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더 선을 지켰다.

그때 당시 편하게 대하지 않아도 무례한 발언을 많이 하던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퇴근시간이랄 게 없었다. 일이 끝나면 퇴근이었다.

매장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는 즐거웠다.

일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시간 되면 출근하고 시간 되면 퇴근하니까, 피곤할 일도 힘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생산실은 그게 아니었다. 아침부터 전쟁이었고, 시간 내에 빵이 나가야 했으며, 여러 명이 같이 일하는데 파트가 나눠져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한 사람 몫을 안 하면 그냥 내 할 일이 늘어날 뿐이었다.

내 신경은 점점 곤두세워졌고, 예민해졌다.

처음에 일 배우는 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내가 늦었다고 생각해서 빨리 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었다.

그러다 2~3달이 지나고, 일이 돌아가는 걸 알게 됐을 때쯤

일을 잘 못하는 신입이나 동료, 자꾸 담배 피우러 가는 남자 선임들이 눈에 거슬렸고 미웠다.

한번 나가면 2~30분 동안 들어오지 않았고, 나 혼자 발을 동동 구르며 일을 했다.

작업대에서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는데 발효가 다돼도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여유로웠다.


내 출근시간은 6시 30분이었는데, 다행히도 집이 가까워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였다.

퇴근시간은 빠르면 7시 30분. 보통은 8시~9시까지 일하는 날이 많았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데 쉬는 날은 온전히 집에서 잠만 잤다.

그때부터였을까.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던 내가 집순이가 된 게.

일에 지장을 주고, 일할 때 컨디션이 안 좋은 게 싫었다.

수행능력이 떨어지고, 내가 일을 못하게 되면 퇴근시간도 늦어지니까 그것도 싫었다.


또 한 가지 문제인 게 시즌이 너무 많았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시즌별로 나열해 보면


1월 연초 - 선물용, 파운드, 롤케이크

2월 -밸런타인데이 -수제 초콜릿, 쿠키, 구움 과자 세트 + 구정 -선물용, 파운드, 롤케이크

3월 -화이트 데이 -수제 초콜릿, 쿠키, 구움 과자 세트

4월 - 5월 준비

5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선물용, 파운드, 롤케이크, 카네이션 케이크

6월, 7월, 8월 -팥빙수 시즌 직접 삶는 팥

9월 -추석 선물용, 파운드, 롤케이크, 쿠키세트 등

10월-수능 준비 떡(찹쌀떡 직접 제조), 수제 초콜릿

11월- 빼빼로데이 - 수제 빼빼로

12월 -크리스마스, 연말 -케이크


시즌을 준비하거나 시즌 당일 퇴근 시간은 10시~11시 정도고

보통 크리스마스 시즌은 케이크 시트도 준비하고 고구마케이크, 치즈케이크 등 다른 것들도 준비해야 돼서

시즌 당일 22,23,24는 11시~1시 퇴근 25일 당일은 그나마 8~9시쯤 퇴근하게 된다.


이러니 파티시에의 부푼 꿈을 안고 일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은

그 강행군을 버티지 못해서 그만두는 사람도 있고, 프랜차이즈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

아니면 아예 다른 직종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대다수였다.

기혼 여성분들은 당연히 없었다. 왜냐하면 아기 낳고 일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의 20대 여자들이 많고, 그때 당시에는 2~30대 남자들도 꽤 많았다.

체력이 여자보다 남자가 좋으니까 여기조차도 남자 선호사상이 강했다.


힘들었지만 계속 일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1.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나는 싫증을 잘 내서 단조로운 일이나 단순노동을 잘 못하는 편인데, 여러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다 보니 배우는 게 많고, 파트별로 나눠져 있으니, 나중에 다른 파트에 들어가서 완벽하게 배우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2. 내 미래가 그려졌다.

내 전공은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내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뭘 좋아하지? 이 직업이 나랑 맞나? 디자인을 배우면 어떻게 해서 취업을 할 수 있지?'

이런 물음표가 계속 떴었다.

하지만 제과제빵을 배우고 난다음에는 머릿속에 하나만 생각했다.

'이렇게 장사가 잘되는 동네 빵집 창업하기'

내 매장을 갖는다는 거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좋았다.

그리고, 매장에서 근무할 때 하루매출이 얼만지도 알았고, 월세나 기타 다른 부분도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건비 계산기 두드려 보니까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남는다는 사실.

실제로 내가 들어간 해부터 매출이 많이 오르기 시작해서, 사장님 사모님이 좋은 집으로 이사도 가시고,

차도 바꾸시고, 삶이 정말 윤택해져 가는 걸 직접 목격했다.

사모님과 나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16~7살 정도 나이 차이가 났었다.

처음 아르바이트 할 때 사모님은 뭔가 학생 같았던 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점점 '진짜'사모님 같이 변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런 삶을 동경했던 거 같다.

그리고 나도 기술을 배워 이런 매장을 열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렇게 2년 가까이를 일하던 어느 날 새벽에 눈을 떴는데 갑자기 허리가 너무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울면서 기어가며 엄마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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