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두고 다리로 승부 본 비둘기

실수하더라도 다시 회복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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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와 집에 돌아오는 길, 신기한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비둘기 두 마리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가 차가 오지 않자 길을 건넜다.


"쟤네는 자기가 사람인 줄 아나 봐."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비둘기 학교가 있는 거 아니야? 거기서 선생님이 '차 안 오나 보고 횡단보도로 건너세요' 하고 가르쳐 주는 거 아니야?"


옆에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의 엉뚱한 상상에 피식 웃고 그런가 보다 맞장구치며 기분 좋게 걸었다.




생각해 보니 길 건너는 모습은 나이에 따라 달랐다. 어린아이들은 초록 불이 켜지면 엄마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번쩍 들고 길을 건넌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초록 불이 깜박일 때는 건너지 말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세요'라고 배운 뒤로는 차마 괜찮다고 할 수 없어 오래 기다리곤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되자 불이 깜박여도 몇 초 남았는지 보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이 키가 클수록 길을 건너기 시작하는 숫자가 점점 작아진다.


어른은 또 다르다. 가끔은 빨간불에도 서둘러 길을 건넌다. 모든 어른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에는 철저히 따르던 규칙이 나이를 먹으며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이 많아지는 듯하다.

배운 대로 행동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결국 함께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익혀야 하는 약속이다. 규칙은 누군가가 지켜야 의미가 있고, 누군가가 보여줘야 이어진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아이와 함께 있든 아니든 ‘보기 좋은 어른’으로 서 있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며칠 지나고 아이 데리러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2차선 도로 옆을 걷는데 찻길에 비둘기 두 마리가 보였다. 한 마리는 찻길 한가운데서 종종거리며 걷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길가에 서 있었다.


멀리서 차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민트색 레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비둘기가 얼른 비켜야 할 텐데' 하며 지켜봤다.

차 소리가 가까워지자 비둘기는 속도를 내서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뭐지...) 차는 멈추지 않았고 곧 '퍽' 하는 소리가 났다. 차에 부딪힌 비둘기는 날개를 퍼덕이며 학교 담장 너머로 날아올랐다. 옆에 있던 다른 비둘기 한 마리도 뒤를 따라 함께 날아갔고 길 위에는 깃털들이 나뒹굴었다.


비둘기는 분명 날 수 있는 존재인데 요즘은 걷는 모습이 더 익숙해 보인다. 처음부터 날아올랐다면 차에 부딪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날갯짓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을 테니. 하지만 비둘기는 걷는 쪽을 택했고 결국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육아하면서 나도 종종 이런 비둘기 같았다. 더 나은 방법을 알면서도 익숙한 방식만 고집하다가 후회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아이에게 차분히 말해주자고 다짐하면서도 막상 서로 다투거나 할 일을 미루는 상황이 닥치면 화부터 내고 큰소리치곤 했다. 사랑이라는 본능이 있음에도 당장 아이가 내 뜻대로 행동하길 바라는 마음이 앞서 버린 것이다.


아이의 굳은 표정을 마주하면 후회가 밀려왔다. 왜 또 이렇게밖에 못했을까 하는 자책도 따랐다. 그저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고 간신히 버텨내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다. 다시 아이 곁으로 돌아갔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꼭 안아주며 하루를 이어갔다.


육아도 삶도 완벽한 선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수하고 부딪히며 도망치듯 지나갈 때가 있다. 그때마다 배우고 돌아오고 회복하는 힘이 우리를 이어가게 한다.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 걷는 비둘기였지만 위기의 순간 날아오르는 본능을 잊지 않은 것처럼.


비둘기는 어디선가 내려앉아 숨을 고르고 회복했을 것이다. 위험한 순간에는 반드시 날아야 한다는 걸, 찻길에 들어서지 말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깨달았길 바란다. 비둘기 학교로 돌아가 자신의 경험을 전하며 조심하라고 일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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