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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출내기 Apr 13. 2023

망중한 - 바쁜 가운데의 틈

망중한 (忙中閑) 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된건 어느 여름방학때 군사훈련을 받고 있었던 연병장 (군대의 운동장) 한 구석이었다. 장교를 육성하는 과정에 속해 있었던 터라 대학교 3, 4학년 여름 겨울 방학기간 중에 4주 정도 되는 기간을 성남의 군사학교에 들어가서 기초적인 훈련을 받아야 했던 그때 였다. 늘 그렇듯이 새로운 과정에 막 입소한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소위 말하는 현타가 오기 때문인지, 달아올랐을때 확실히 내려 쳐서 정신/육체 개조가 필요해서 그랬는지, 정신없이 해야할 것들이 몰아쳐오던 때 였다. 초단위로 해야할 일들이 몰아치던 그 시간에 문득 갑자기 출처를 알 수 없는 한가로움이 솟아올랐다. 바쁜 머릿속의 생각들이 멍 하게 멈춰서고, 불현듯 내 주위의 바람과 햇볕이 새삼스레 느껴지며, 찰나의 순간이 갑자기 주욱 늘어지고, 나라는 존재가 3인칭으로 보이며, 순간 조바심치며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일들이 둥둥 떠올라 천천히 영롱하게 떠오르다가 펑 하고 터졌던 - 그때의 그 기분이 어찌나 생경했는지. 잠시후 다시 그 시계는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알 것 만 같았다. 좀 늦어도 된다는걸. 좀 빼먹을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걸. 그래도 괜찮다는걸. 때마침 어딘가에서 읽었던 망중한 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충분히 축약하여 설명해 낼 수 있는 것인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 순간은 실로 망중한의 시간이었다.  


 항상 바쁘게 지냈다. 거의 대부분의 내가 속해 있던 여러 그룹에서 그 어떤 역할이 나에겐 주어지곤 했다. 그다지 감정의 동요가 없는 덤덤한 성격, 크게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욕심도 없었던 조용한 부분, 별로 주위에 흥미를 가질 만한 일이 없어서 생긴 과묵한 말수는 내가 속했던 또래 집단안에서 그 어떤 중립지대와 같은 영역을 가지게 하였다. 그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은 곳으로 여러가지 것들이 둥둥 떠 밀려 왔다. 직접 하기는 부담스럽지만 다른편에게 맡기기도 싫은 그런 일들. 떠밀려온 리더쉽들. 선생님이 없는 반에서 동급생들을 "조용히" 시키는것 부터, 여러 학교가 모인 연합 방송부 단체에서 "정기 회의" 를 하며 방송제를 준비 한다던가, 군사 훈련을 받으며 무언가 "대표자" 역할을 해야 한다던가. 떠밀려 오는 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조성된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 속에서, 나의 중립지대에는 여러 인위적인 섬들이 생겨났다. 개성이 강한 주인공들 사이에서 극이 흘러가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개연성과 완충지대를 제공하고 있는 감초 배우 처럼, 여기에서는 이 역할을 저기에서는 저 역할을 해야 했다. 


 나에게는 왜 특별한 기호와 어느것과도 바꿀수 없는 강렬한 소망이 없을까. 각자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전문가" 들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져본 적도 있었지만, 어느덧 특별할것 없는 "제너럴" 한 중립성의 리더쉽이 나의 고유한 영역이 되었음을 느낀다. 모든 조직과 단체는, 그것이 크던 작던, 현실적이던 이상적이던, 개방적이던 배타적이던, 거창한 목표가 있던 소박하던 .. 외부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많은 내적 충돌과 갈등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무언가가 그 갈등을 품고, 조율하고, 조정해 나가며 적당하게 서로를 하나의 방향으로 크게 벗어나지 않게 하지 않으면, 그 일은 산산히 부서지고 흩어지고 만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세심하게 그 일을 완성시키는 사람이 필요하고, 분명한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보다 더 참을성 있게 그 말을 듣고, 계획하고 조직해야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모호한 그 프로젝트를 누군가는 본연의 역할이 아님에도 우선은 누군가가 맡아서 끌고 가야 하는 것이다.    


망중한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노라면,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이런 저런 역할을 하며, 시작하고 끝내고, 숫자를 만들다가, 전략을 수립하고, 구석에서 일하다가 차려입고 공식행사에 참여하려면 중간 중간에 여백이 필요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온 일과 생각들 속에서 다시 그 시작점이 어디였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타협할 수 없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말과 저말 속에서 중간 지점은 어디인가.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고, 어디에서 부터는 통제해야 하는가. 너무 멀리가버려서 도대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조차 잊어버리기 전에 멈춰서 멍하게 있을 필요가 있다. 망중한 덕분에 나는 여전히 그 중간의 회색지대에서 적당한 나의 영역을 어떤 특정한 것이 침식당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다. 


창밖을 내가 보니 후드득 비가 내리다가 다시 하늘이 맑아진다. 변덕스러운 독일의 봄 이다. 저쪽의 나무에서는 꽃이 잔뜩 피었는데, 여기 나무는 여전히 앙상한 나목 그대로의 모습이다. 꽃가루가 늘어 가는지 정신없이 한바탕 재채기를 하고 반짝 반짝 나의 회신을 기다리는 사내 메신저에 짧은 메세지들을 남긴다. 목요일 4시 10분. 오늘까지 꼭 마무리 해야 하는 딱 한가지가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리해야 하는 시간이다. 다행히도 몇가지를 빼고는 대부분 안전하게 미룰수 있는 일들이다. 오늘 하루를 평온하게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평화이지만, 불안해 한들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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