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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출내기 Mar 21. 2024

주연이 없는 조연의 세계

 다른 사람들에 눈에 드러나는 상황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뭔가 대중 앞에 서는 그런 직업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지만, 가끔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연기자의 삶은 어떨까 궁금할때가 있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니, 화려한 생활이니, 남들에게 뽐내고 싶은 끼가 있다 던지 그런것이 아닌 다양한 인생에 몰입하여 살아 볼 수 있다는 그 이유 하나로, 그것도 한편으로는 흥미롭겠다 싶다. 지금껏 수많은 선택의 결과로 빚어진 오늘의 이 한길을 묵묵히 40년 가까이 걸어가다 보니, 또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데, 다른 길은 과연 어떨까? 지금 이길에 머물러 있으라고 붙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여기를 뛰쳐나갈 용기는 또 없다. 그냥 기웃 기웃 거리다 보니, 다른 사람의 삶을 배역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 어떤 직업이 가끔 궁금해 지는 것이다.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모두에게는 하나의 배역이 정해진다. 소위 부서 배치라는 것이다. 어느날 나의 명함에 새겨진 그 역할과 직함에 따라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고객사를 만나서, 회사의 상품을 팔고, 누군가는 숫자를 만지며 씨름하고, 누군가는 다른 직원들을 챙기고, 누군가는 회사의 여러 행사와 비품을 관리하고, 누군가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그 전에는 한번도 제대로 진지하게 고민해본적이 없는,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그 역할을, 아주 잠깐의 교육 과정을 거쳐서 갑자기 현장에 투입되는 것이다. 문제는 대본도 없고, 교과서도 없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분들을 보면 모두 연기의 달인들이다. 갑자기 주어진 역할을 어쩌면 그리도 천역덕스럽게 해내시는지. 이쪽에 있을때는 그렇게 반대하시던 일들을, 갑자기 이쪽에 오시더니 반드시 해내야 하는 사명감에 불타서 밀어붙이신다. 정말 그분들의 메쏘드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신기하기도 하고, 나는 과연 그런 새로운 배역을 맡아서 있을지 고민이 된다. 


나의 배역은 해외에서 "새로운 사업을 진행" 하는 역할이다. 새로운 국가를 분석하고, 고객을 찾고, 할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찾고, 이것에 투입해야 하는 자원을 분석하고, 보고를 하고, 승인을 받고, 동의 받은 그 틀안에서 사람을 뽑고, 업무를 진행하고,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면 새로운 누군가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다시 또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만나게 되는 분들이 "새로운 사업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배역을 담당하는 분들이다. 세계 경제는 요동치고, 외환 거래에 따른 리스크는 커지고, 고객의 원가절감 압박은 심해질것이고, 우리 협력업체는 단가를 올려달라고 할 것이고, 새롭게 채용한 직원은 사업의 지속과 상관없이 회사의 지속적인 비용 유출을 가져올것이고, 다양한 법적 규제는 사업 환경을 더욱 악화 시킬것이다 라는 대사를 계속해서 되풀이 하시는 분들이다. 반복되는 그 정/반의 논리 다툼속에서 문득 나는 한번도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해본적이 없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 나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자, 하겠다 라고 주장해야 하고, 거절당해야 하는 것일까. 


서로 타협할 수 없는 두 배역의 평행선이 끝나려면, 누군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보통 주인공이라고 부르는 그 역할이다. 먼 옛날의 평면적이던 선/악의 이분법적 캐릭터들이 각자의 상황과 이유를 가진 입체적인 그것으로 변화한 요즘 더욱더 중요해진 주인공의 역할이다. 주인공들은 대립을 거듭하는 양쪽 세계의 그 중간에 위치한다. 태생적이던, 경험적이던, 상황적이던. 도저히 타협을 이룰 수 없었던 두 세계가 주인공을 통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이끌려 나와 중간 그 어딘가에서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주인공/경영자의 역할이 아닐까. 의사결정권한을 가지고 있는 경영자가 스스로 주인공됨을 자각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거나, 어느 한쪽에 치우친다면, 서로 다른 세계는 영원히 끝없는 논쟁을 되풀이할 뿐이다. 


새로운 일은 힘들다. 출장은 피곤하고, 돈이 든다. 거절당하는 것은 싫다. 변수가 가능한 거시 경제의 징후들 중에서 사업적 희망을 찾아 내는 것은 어렵다. 애써 주섬 주섬 모아, 얼기설기 만들어낸 작품을 비판 받는 것은 하면 할 수록 힘빠지는 일이다. 하지만 가만히 머물러 있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 시대에서 가만히 있는 것은 곧 퇴보하는 것이고, 급변하는 시대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결국 도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영진은 두 평행선의 흐름을 조율하더라도 조금씩은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주연이 되기를 바라는 그 세계와 달리 모두가 조연인 이곳에 너무 늦지 않게 주인공이 나타나면 좋겠다. 주인공이 하지 말라면 안 하면 되는 것이고, 해야 하면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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