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요식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 중에는 나처럼 원래 장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했던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우리 가게의 첫 번째 사장은 가게 앞 대학교에서 총학생회장을 했던 선배였다. 나는 대학교에서 법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주변의 도움으로 방송에 이따금 나갔으나 실상은 고정된 직업이 없는 반백수였다. 장사를 하기 전부터 나를 알던 사람들은 내가 요식업 그것도 대학교 앞에서 술집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곤 한다. 콘셉트인가 의심하기도 하고, 장사를 해본 적도 없고 요리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하는 술집이 과연 제대로 된 곳이겠냐고 농담하기도 한다. 메뉴에서 ○○탕 같은 요리에는 라면수프를 넣느냐고 물었던 선배도 있다.
그런데 막상 우리 가게에 놀러 온 사람들은 생각보다 음식들이 맛있다거나, 인테리어가 좋다거나, 가게가 깔끔하다 등 칭찬한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괜히 으쓱해진다. 공중제비라도 돌면서 내가 장사하며 했던 노력을 늘어놓고 싶지만 “요즘 자영업이 어렵다는데 그래도 망하지 않는 이유가 다 있겠지….”라고 짧게 답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게를 열었던 초반에는 정말 황당하게 가게를 운영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혀 체계적이지 않았고, 심지어 음식들은 그때그때 맛이 달랐다. 부끄럽지만 음식을 제대로 조리하지 않은 적도 많았다. 덜 튀겨서 속이 차가운 치킨, 면이 덜 익은 칼국수를 만들어 손님에게 내기도 했다. 겉은 뜨겁고 속은 차가운 튀김을 먹었을 그때의 손님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그때 나는 손님에게 나가야 할 안주로 연습하고 있었던 것 같다.
2024년 10월 8일
ㅇㅇㅇ 형이 가게에 왔다. 다른 형들을 데려왔다. 안주가 사람이 먹을 순 있냐고 농담을 했다. 막상 먹어보니 놀란다. 입맛이 까탈스러운 사람인데도 입에 잘 맞다니 다행이다. 돈 받고 파는 거라서 맛이 있어야 하는게 당연한데도 괜히 으쓱했다. 나는 술에 취한 김에 먹은 것보다 더 계산해달라고 분위기를 몰아갔다. 결국 설계에 성공해서 알바생들 일당은 해결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요식업은 난생처음 해보는 일인데도 준비 없이 무턱대고 저질러 버린 결과였다. 그때부터 나는 인터넷을 뒤지며 기본적인 식자재부터 공부했다. 그러면서 두부와 채소, 고기 같은 재료들은 어떻게 손질하고 신선도는 얼마나 유지되는지 알게 되었다. 육류 중에서 닭고기가 제일 빨리 상하고 그다음은 돼지고기라는 것, 냉장보다 해동한 냉동 고기가 빨리 상한다는 것. 그리고 어떻게 해동해야 원물에 최대한 가까워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조리해야 맛이 있는지 등 인터넷 여기저기를 검색했다.
장사와 요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였기 때문에 무작정 배우고 따라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한동안 가게 문을 닫고 주방에서 수십, 수백 번을 연습했다. 주로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많고 유명한 요리사들을 무작정 따라 했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칼질도 제대로 못 해 손 여기저기에 상처만 났는데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나아져 갔다.
어쩌면 백지 상태여서 모방과 연습의 효과가 바로 나타났던 건지도 모른다. 물론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하다 보니 생전 회는 뜰 줄도 모르면서 회를 팔려고 하거나 술집 사장이 아닌 레스토랑 셰프라도 된 듯 착각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 가게의 전 사장이었던 전용기 의원이 따끔한 소리를 해줬던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장자(莊子)의 ‘천운’ 편에는 서시빈목(西施矉目)의 유래가 된 이야기가 나온다. 고대 중국의 4대 미녀인 월나라 서시는 심장병을 앓아 가슴에 손을 올리고 얼굴을 찌푸리고 다녔다. 그 마을에서 못생기기로 소문난 여자가 서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가슴에 손을 대고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다. 그러자 마을의 부자들은 문을 굳게 닫고 집에서 나오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가족을 데리고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못생긴 여자는 서시의 아름다움이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몰랐던 것이다. 장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외형에만 사로잡혀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행태를 풍자했다. 남을 맹목적으로 모방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는 거다.
가게마다 독특한 개성과 메뉴가 있어야 살아남는 요식업의 세계에도 장자의 이야기는 딱 들어맞는 듯하다. 잘 되는 가게를 무작정 따라 한다고 우리 가게가 잘되는 것은 아닐뿐더러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추녀가 서시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어 하는 노력은 비록 어리석다고 할지라도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추녀는 다른 여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서시를 따라 하기라도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자영업자가 쉽고 빠른 창업을 선호한다.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도 창업할 수 있는 프렌차이즈가 인구 대비 미국과 일본의 10배나 많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과거의 나처럼 자영업을 쉽게 생각하고 뛰어드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전국 1만490개 소상공인 사업체를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서 소상공인들이 충분한 준비 없이 창업 시장에 뛰어드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창업 준비 기간은 3∼6개월이 26.2%로 가장 많았으며 1∼3개월도 23.9%였다. 반년이 안 된다는 응답이 합쳐서 50.1%나 되는 것이다.
더본코리아의 백종원 대표도 2018년 국회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해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는 “외식업 창업을 쉽게 할 수 없도록 문턱을 높여야 한다”라면서 창업 과정에 대한 교육을 통해 창업의 문턱을 높이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음식점 운영에 대해 잘 모른 채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장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기에 SBS의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 장사를 시작하고 막막했던 나는 처음에 호기심에, 나중에는 배우고 따라 하기 위해 골목식당 프로그램을 모두 찾아보았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는 다양한 자영업자가 출연한다. 가게 운영을 잘하는데도 1%가 모자라 손님이 없는 곳도 있지만, 식자재 관리부터 위생 그리고 음식의 맛이나 접객, 가격 등에서 여러 문제가 있는 곳들도 나온다. 방송을 보면서 계량과 레시피의 정형화의 중요성, 손님의 저항 없이 객단가를 높이는 방법, 식자재를 고르고 관리하는 법 등을 배웠다.
실제로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에는 “전체 자영업 중 폐업 업종 1위 '식당'! 하루 평균 3,000명이 식당을 시작하고, 2,000명이 식당을 폐업한다! 모든 식당은 나름의 걱정과 문제를 갖고 있는 법! 천 개의 가게가 있다면, 천 개의 상황이 있다. 요식업 대선배 백종원 대표가 각 식당의 문제 케이스를 찾아내고 해결 방안을 제시! 식당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교본'이 되어줄 프로그램!”이라고 나와 있다. 나는 실제로는 백종원 씨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백종원 씨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누군가 장사에 관해 물어오면 농담처럼 백종원의 제자라고 말하곤 한다. 자영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꼭 이 프로그램을 시청했으면 한다. 방송에서 백종원 대표가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그런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서시빈목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음식점 허가총량제’가 화두가 된 적이 있다. 당시 보수 정치인들은 국가의 과도한 규제, 창업의 자유 제한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음식점 허가총량제의 본질은 시장의 과포화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자는 것이다. 외식업계의 낮은 진입장벽으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과도한 경쟁으로 생존이 어려워진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경쟁력을 키우기보다 가맹점을 옥죄어서 수익을 극대화해 왔고 소중히 모은 종잣돈을 날리는 소상공인들이 매년 수만 명씩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공급을 조절하는 택시 총량제와 화물차 총량제처럼 이제 자영업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창업할 때 의무적인 교육 이수를 포함해 관련 업계에서 종사했던 경력 등을 필수 조건으로 하거나 경영 컨설팅을 받게 하는 건 어떨까. 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 문제인데 자유시장경제와 직업 선택의 자유에만 초점을 맞춰 자영업자들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업무 태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