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는 나의 천성
솔직히 나도 호구처럼 살아가고 싶지 않다. 그 어떤 누구도 호구처럼 살아가고 싶지는 않을꺼고, 그래서 호구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왜 이런 일이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오죽하면, 어려서부터 집에서도 나만 보면, 부모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바보처럼 남에게 퍼주지만 말고, 네 실속도 챙겨라. 넌 누군가 좋아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니, 사회생활을 어찌할지 걱정이다.
라고 말이다. 부모님이 이렇게 이야기하면, 난 발끈하면서,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이번 이혼 건을 포함해서, 내 삶에서 그냥 다 퍼주다 상처를 받은 일은 꽤 많았던 것 같다. 그럼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오랫동안 얻질 못 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호구의 삶을 피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이다.
아내와의 이혼 준비로 심신이 지쳐있던 나에게 직장동료가 문자로 웹사이트 링크를 보내줬다. 그 링크를 따라 가봤더니, 소모임 커뮤니티 사이트였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서로의 취미와 관심사가 맞으면, 소수의 사람이 함께 만나서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대화와 생각을 나누는 그런 모임이었다. 난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자 그 모임에 갔고, 그 모임에서 내가 오랫동안 답을 구하지 못했던 답을 우연히 찾게 되었다.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그날도 난 소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모임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들과 가벼운 술과 다과를 즐기며 대화의 꽃을 피웠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 소모임 참여자 분 중에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모임에 참석하신 분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게 무언지 아시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이대도 서로 다르고, 관심사가 같다는 것 외에 더 이상의 공통점은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질문에 모임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대답을 했다. 하지만, 참여자 분은 모두 다 아니라고 했다. 나를 포함하여 다른 참여자분들이 도저히 모르겠다 답하자, 문제를 냈던 분은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모두 다 사람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사람에 의해 상처를 많이 받고, 상처를 받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 거리를 두는 그런 사람이에요.
같이 계시던 분들은 모두 다 웃으면서, 그 말이 맞다면서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하지만, 난 그의 대답에서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찾아왔던 "내가 호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난 사람을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앞 뒤 계산하지 않고 퍼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답을 얻고 나니, 내 마음이 엄청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아내의 유학을 지원해 주고, 이혼을 하게 되는 것은... 그러면서 내가 포기한 시간과 돈이 나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 같다는 죄책감에 견딜 수 없었는데, 갑자기 나의 짐이 다 풀려버린 것 같은 자유함을 느꼈다.
난 사람을 좋아하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아낌없는 나무처럼 다 내어준 것이다. 이건 내가 바보라서도 아니고, 호구라서도 아닌 것이었다.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내 천성 때문에 그런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그만큼 주위의 사랑을 엄청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 또한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 내가 호구인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그냥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듯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난 잘못되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