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분노-공포-흥정-수용
미국의 유명 애니메이션인 심슨(The Simpson)을 보면, 호머가 복어를 잘 못 먹어 24시간밖에 살지 못한다고 진단받는 에피소드가 있다. 여기서, 의사 히버트는 죽음을 앞둔 호머의 5단계 심경 변화를 설명하는데, 그게 바로 "부정--> 분노--> 공포--> 흥정--> 수용"이다. 난 이번에 이혼을 준비하면서, 호머가 겪은 5단계 심경 변화를 나도 똑같이 겪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내가 처음 이혼 이야기를 했을 때, 난 아내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화가 나서, 함께 살다 보니 지쳐서, 나에게 이혼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우리는 결국 이혼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혼에 대해 처음 이야기가 나오고, 아내가 해외로 나가 버린 후에도 우리 부부 사이가 끝이 났음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해외에 아내가 나갔지만, 내가 노력하면 마음을 돌릴 것이라 생각했다. 주위 사람들은 "이미 늦었다. 해외에 가기 전에 준비를 다 해 놓은 상황일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나에게 진심 어린 충고와 안타까운 질타를 했지만, 그 어떤 말도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의 말을 인정하면, 진짜 모든 것이 끝이 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해외로 가고 난 이후, 처음엔 아내에게 메신저도 보내고, 이메일도 써서 보냈다. 주된 내용은, "내가 좀 더 이해하고 사랑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아내에게 섭섭하게 했던 말과 행동에 대해서도, 마음을 담아 사과를 하고 이혼은 하지 말자고 부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이런 나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미 마음속에서 내가 떠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이 얼마나 간편한 표현인지...)라며 이혼을 요구했으며, 나는 그런 그녀의 대답을 부정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녀의 해외 유학 준비에서부터 졸업까지 어떻게 뒷바라지를 했는지를 그녀는 계속 봐왔기에 아내가 그런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그렇게 해외로 떠나버리고, 내가 이혼을 하는 마음을 먹게 한다는 명목 하에, 모든 연락을 거부했다. 현재의 내 상황이 절망적임에도 불구하고, 난 계속 내 현재 상황을 부인했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는 헛된 기대를 버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현재 상황을 인정하는 순간, 내가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몇 달 동안은 아내를 보고, 매달리고 애원하고 울면서 이야기해 보기까지 했다. 최소한 이혼은 하지 말자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았고, 난 그런 그녀의 모습이 절대 진정한 모습이 아닐 거라 생각하고, 내가 처한 상황을 격렬히 정말 격렬히 부정하였다. 이런 일이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몇 달간 지속되었다. 그리고, 나의 노력이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걸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고, 점점 가정을 지키려고 하는 나의 마음도 빠른 속도로 지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를 배신하고 이혼하려는 아내를 향한 미움의 감정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이혼에 대한 부정 단계가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