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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노 Nov 09. 2024

나에게 미술관이란 '꿈꾸는 곳'

가다

#1. 미술을 전공하는 언니를 따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처음 갔던 어린 시절의 어느 날, 그림은 잘 모르겠고 미술관 건물이 좋았다. 보통의 후줄근한 건물들과 달랐다. 뭔가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전시된 그림들을 보고는 뜻도 모르고 여러 가지 색깔들만 기억에 남았다. 언니 따라 처음 간 미술관에서 남은 것은 공간과 색깔이다.


#2. 봄이면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나타나는 서울시립미술관에 벚꽃이 만발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안에는 천경자 화가의 그림이 늘 있다. 그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국외여행을 하며 그린 이국적인 여인들의 모습과 풍경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갈 때마다 새롭고 아름답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기억은 봄날의 벚꽃과 화가 천경자다.


#3.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규모가 큰 만큼 전시가 늘 풍성하다. 작년인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화가의 애니메이션 같은 가족의 그림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미술관 안 테라로사와 오설록, 미술관 옆 블루보틀의 커피와 차도 가면 늘 함께 한다. 미술관 전시 관람 후 삼청동 산책도 경기도민인 나에게 여행자의 기분을 갖게 한다. 미술관 한쪽에 길게 늘어선 아트샵과 예술도서가 잔뜩 있는 서점도 두근두근 미술관이다.


#4. 어느 가을에 춘천 할머니댁에 갔다가 드라이브하면서, 화천과 양구를 지나는 거대한 파로호(인공호수)를 보고 일단 한 번 놀랐고, 우연히 만난 박수근미술관에 이게 웬 횡재인가 했다. 그날은 운수 좋은 날이었는지 단순한 선과 독특한 느낌으로 마음을 따듯하게 하는 화가 박수근의 그림들과 미술관의 가을 분위기가 행복을 더해주었다. 


#5. 어느 해인가는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가을을 붙잡고 싶어서 원주의 뮤지엄 산으로 막 달려갔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공간이 나에게 영감을 주는 순간이었다. 미술관 자체가 예술작품이다.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긴 통로에 물과 빛과 벽이 하늘과 나무와 낙엽들과 이룬 조화 어쩔! 그때 건축가 안도 타다오를 처음 알게 되었다.


#6. 도쿄여행 중 갔던 네즈 미술관은 외국의 미술관이라 더 새로운 기분이었고 입구로 들어가는 길이 너무 아름다웠다고밖에 표현 못하겠다. 미술관 옆 정원도, 전시된 도자기들도 여행자를 아름다움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해 주었다.


#7. 에버랜드 옆 호암미술관은 정원이 아름답다. 사계절 잘 가꾸어진 조경으로 초봄에 매화향이 은은하게 퍼지다가 벚꽃이 사방에 만발하고 작약이 그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준다. 여름엔 연꽃이, 가을엔 단풍나무 몇 그루의 진한 빨강이 어마어마하다. 작년, 화가 김환기의 전시 때 보았던 파란색, 그 파랑! 


#8. 여름휴가에 갔던 강릉에는 솔올미술관이 있다.  전체가 하얀 마이어 파트너스의 건축으로 역시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공간이다. 전시되었던 화가 아그네스 마틴과 정상화의 추상화는 백색 미술관과 이어져 회색, 베이지색 등 모노톤의 추상화로 그 느낌이 좋아 그림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9.  최근에 부산여행 갔다가 다시 들린 부산시립미술관 옆 이우환공간! 돌이 놓여 있는데 왜 아름다운 걸까. 백지 위에 단순한 도형이 있는데 왜 끌리는 걸까. 화가 이우환의 돌들은 독일 어느 공원에 놓여 있기도 하고 프랑스 아를에는 '이우환미술관'이 있다고 한다. 화가의 깊은 사유를 경험하게 한다.


#10. 어느 무더운 여름날, 우리는 미술관 근처에서 처음 만났다. 내 차 안에서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가 명랑하게 흘렀고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미술관으로 향했다. 여름의 미술관 안은 시원하다. 찌는 더위의 바깥세상과는 딴판으로 시원하다. 그는 오랜 외국생활을 하고 귀국하여 우리나라의 많은  것들을 낯설고 신기해했다. 간단한 식사를 한 후, 줄줄 흐르던 땀이 쏙 들어갈 만큼 쾌적한 공간에 감탄하며 미술관 안을 걸었다. 그림들을 지나가며 그림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어색함도 슬며시 사라졌다. 그렇게 누군가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던 장소도 미술관이었다.


*미술관의 모든 것이 좋다. 그 자체로 예술인 건축공간, 그 재료의 느낌들. 미술관 안 도서관, 카페, 아트샵, 서점, 정원, 사람들, 화가의 생각들, 표현들, 색깔들... 아름다움들.


화가 아그네스 마틴은 말한다. 


"아름다움은 삶의 신비다. 그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 아름다움은 삶에 대한 확실한 감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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