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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은 파란 하마와 파울클레

보다

by 피아노 Feb 1. 2025

오래전 영국여행을 다녀온 친구로부터 내셔널갤러리의 다이어리를 선물 받고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미술관 캘린더를 검색하다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2025년 달력을 주문해 버렸다. 365장의 작품으로 구성된 올해의 달력이다. 한 장 한 장 펼쳐보는데 유독 마음을 끄는 그림들이 있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1월의 작품은 이집트 능묘 유적의 통로에서 발견되었다는 파란 하마조각상스위스인으로 독일에서 활동한 작가 파울 클레의 그림이다. 파란 하마가 눈길을 끌어 피아노 위에 올려놓았다. 볼 때마가 미소가 지어진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파란 빛깔은 기원전 4000년경 고대 이집트의 인공보석 파이앙스(Faience)의 색깔이고 공예의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파이앙스의 청록색과 군청색은 나일강과 밤하늘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저 파란색의 묘한 느낌과 하마의 조화가 아름답다. 하마가 하마의 색이 아니라 더 눈에 들어온 것일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야 할 이유다.


최근에 책 <금빛 종소리:김하나의 자유롭고 쾌락적인 고전 읽기>를 읽다가 이 책에 나오는 고전을 읽지 않고는 내가 좋아하는 김하나 작가의 글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읽기를 멈추고 미국 작가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의 고전 <순수의 시대, The Age of Innocence>를 찾아 읽었다. 그 후, 다시 <금빛 종소리>를 펼치니 그녀의 위트 있는 글이 쏙쏙 들어왔다. 187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순수의 시대>에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가 자주 등장한다. 1800년대의 뉴욕 귀족사회의 상세한 묘사와, 그 시대적 상황에서 남에게 보이는 모습보다 자기의 모습을 찾아 나답게 살려는 여주인공의 삶이 기억에 남는다. 이미 누가 봐도 아름다운 귀족여인과 결혼을 했으나 이 매력적인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남주인공은 결국 그녀와 이루어지지 않았고, 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서로의 삶을 살아가는 채로 이야기가 끝난다. 책을 덮고 마음에 왠지 모를 파동이 일었다. 마음이 끌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지 않고 그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간 그들의 삶에 감동되었나 보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보고 센트럴 파크를 걸어보는 나를 꿈꾼다. 뉴욕에 가야 할 이유다.


그냥 기분이 좋은 것들. 나는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이 꽤 많다. 그중에 악보가 그렇고 지도가 그렇다. 오선지 위에 콩나물대가리들을 그려 넣고 음악을 만든다는 것이 놀랍다. 나로서는 그 콩나물대가리들을 해석하기도 버거운데,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앎의 수준은 어디까지인가. 더듬더듬 악보를 해석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알게 되고 더 어려운 악보도 읽게 된다. 추상적 생각으로 종이 위에 그려진 악보가 춤을 추며 악기로 연주되어 구체화될 때 악보를 그린 인간의 추상의 힘이 놀랍다. 놀라운 추상력으로 만들어진 악보가 참 아름답다.


인간을 탁월하게 만드는 두 가지 힘은 '추상'과 '은유'이다.

추상은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다뤄내는 능력이고,

은유는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동질성을 발견하여 연결 하는 능력이다.


<철학자의 공책_최진석>中에서


또, 보고 있으면 기분 좋은 것이 지도다. 지도는 가 보고 싶은 곳이 많아서 좋은 것일까. 지브롤터해협(Strait of Gibraltar)이 어디에 있는지, 쿠바(Cuba)의 하바나(Habana)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한 곳이 아주 많다.

그룹 비치보이스(The beach boys)의 노래, 코코모(Cocomo) 가사에 여러 지명이 나오는데,


-Aruba, Jamaica, Oh, I wanna take ya, Burmuda, Bahama, come on pretty mama.....


이 부분은 장소들을 상상하게 하고 가보고 싶게 하여 어디에 붙어 있는지 지도를 들여다보게 된다.ㅎㅎ

아루바는 남미의 카리브해 남쪽에 있는 네덜란드 자치령의 섬이고, 자메이카도 카리브해에 있는 섬이다. 자메이카는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인 줄 알았다.(omg!) 버뮤다는 북대서양에 있는 섬인데 영국의 해외 영토이고, 바하마는 그룹 보니엠(Boney M)의 노래 바하마 마마(Bahama mama)로 알려져 익숙하지만 위치는 몰랐다. 이 섬도 북대서양에 있다. 네덜란드나 영국은 21세기에도 멀리 떨어져 있는 섬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역사에 무지한 나로서 역시 놀랍다. 노래는 지도를 보게 하고 지도는 역사로 이어진다. 내 호기심이 무지함을 이끌어낸다.ㅎ

지도는 지구를 한 화면 안에서 이리저리 탐험하는 기분이 들게 하고, 낯 선 지명들은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의 재미가 있다. 가보고 싶은 곳이 많다. 제주도만 가도 좋아하며 호들갑을 떠는 나에게 친구는 파리에 가면 어쩌려고 이러냐 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있는 뉴욕은 내 심장을 또 얼마나 두근거리게 할 것인가. 파란 하마를 보러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 5번가에 가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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