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어느 봄날, 잉글리시 데이지(English Daisy) 꽃을 만났다. 자세히 보고 빠져버린 이 핑크색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옅은 핑크, 그보다 조금 진한 핑크, 그 색도 그러데이션 되어 꽃잎 하나하나가 모여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 수 있을까.
온 세상이 벚꽃이다. 일 년 중 딱 일주일 가량 전국을 치장하는 벚꽃세상이다. 사무실의 서류 속에 파묻혀 일하다 보면 그 일주일이 훅 가버리고 주말에 비 예보가 있어 벚꽃의 절정을 만끽할 시간이 적다. 꽃길을 걷고 싶고 꽃만 바라보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다. 벚꽃이 사라지기 전에 많이 보고 싶은 이 욕망을 어떡하나. 꽃이 피기 전부터 꽃이 지는 걸 아쉬워하는 이 마음을 어떡하나. 사랑이 넘치면 드는 이 마음을 꽃으로부터 받는다. 꽃 너 뭐냐~ㅎ
내 마음이 하늘에 가 닿았는지 어느 봄날, 그러니까 평일 대낮에 양재 시민의 숲 벚꽃길을 지나 화훼단지에 가서 학교정원을 꾸밀 꽃 쇼핑을 할 기회가 생겼다. 모든 꽃이 있는 풍경은 아름답다. 가는 길마다 벚꽃과 나무들이 내놓은 새 연두잎의 색의 조화가 예술이다. 제일 예쁜 연두색은 봄에 나는 이파리의 색이 아닐까. 모든 꽃의 배경이 되는 각종 연두색의 파티다. 멀리 산벚꽃도 연두와 조화를 이뤄 장관을 만들어낸다. 연두색 스커트와 분홍색 니트를 입은 어떤 패션쇼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색깔의 조화는 볼 때마다 감동이다. 꽃 한 송이에 여러 색깔이 들어있을 때 인간은 그런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옷을 디자인하고 제품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
벚꽃이 져도 학교정원에 잉글리시 데이지가 있고 내 집 작은 베란다에 델피늄이 있고, 레위시아가 있고 만데빌라가 있다. 멍 때리고 바라보면 힐링되고 마음이 환해진다. 작은 꽃 화분에 우주가 있다. 오천 원의 행복이다.
그리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어린 연둣빛이 세상을 또 물들인다. 이토록 아름다운 봄을 보려고 어렵고 힘든 겨울을 보냈나 보다. 이 봄을 보고 즐길 수 있는 평온한 마음의 상태가 고맙다.
얼마 전, 여행에서 읽은 스웨덴출신 승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I May Be Wrong)의 문장이다.
마음은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낼 때 성장합니다.
우리의 무지를 편견으로 가리지 않을 때,
우리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참아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해집니다.
피할 수도 있었던 길고 어두운 겨울의 터널을 지나 나에게 봄이 왔고 인생의 교훈을 얻는 한 시기가 지났다.
늘 꽃길만 걷는 인생은 없는데, 이 봄 나는 꽃길만 걷고 싶고 잡을 수 없는 것을 잡고 싶은 욕망과 대치중이다.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참아내야 하는가. ㅎ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서 해답을 얻는다.
벚꽃,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