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하고 부르던 내가 엄마라고 불리는 나로

이름이 바뀌는 시간

by 서별

<엄마하고 부르던 내가 엄마라고 불리는 나로>


너의 존재를 알았을 땐

나도 세상에 처음 나온 것처럼

모든 게 새롭고

때로는 모든 게 두려웠어.


너를 품에 안고

안녕 아가야?

나지막이 부르며

우는 모습 보고

나는 기뻐 울었지


손가락만 한 너의 한 손

만지작 거리며

아가야 얼른 커라

노래 부르던 게 무안할 정도로

시간은 급하게 뛰어갔어.


내가 우리 아가 손 잡고

걸음마 가르쳐 줬는데

이제 아가가 엄마 손 잡고

같이 걸어주는데


이제 나의 아가가 아니라

한 어른으로 자라 있더라.


그거 보면서

내가 엄마 엄마 부르던

우리 엄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고


내가 아가 아가 부르던

우리 아가도

이런 기분을 느낄까 싶어.


이제는 알겠어

엄마라는 이름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그 사랑은

항상 순환한다는 걸.



어릴 적, 저는 “엄마”라는 말을 입안에서 굴리며 자랐습니다.

그 두 글자는 언제나 저보다 크고, 단단했고, 세상과 맞서 싸워 이긴 뒤 돌아오는 사람의 이름 같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시간이 저를 다른 자리에 세워 두었습니다.


아직 아이는 없고,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저는 “엄마”라는 이름을 상상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 이름이 더 이상 먼 미래의 타이틀이 아니라 곧 제 삶을 관통할지도 모를 역할로 다가왔습니다.


1월 중순, 서울에서 전라남도 장성까지 이어진 긴 여정은 제 생각을 조용히 흔들어 놓았습니다.

남자친구의 큰누나 댁에 초대받아 보낸 1박 2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는 한 가족의 시간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6학년.
서로 다른 키와 다른 목소리를 가진 두 아이는 분명 아직은 아가인데, 또 이미 한 사람의 세계를 가진 존재였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큰형님의 눈빛은 설명할 수 없는 긴 세월을 통과해 온 사람의 눈빛이었습니다.


저는 늘 우리 엄마처럼 아이를 키우고 싶었습니다.
혼자인 몸으로 딸 둘을 키워낸 사람.
힘들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않았고, 언제나 우리 편이 되어 주었던 사람.
제게 엄마는 강함의 다른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장성에서 보낸 시간은 엄마라는 이름이 단지 강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큰형님은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었습니다.

대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듣는것에 가까웠습니다.

훈육이 필요할 때도 있었지만 그 전에 먼저 “왜?”를 묻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이의 눈높이에 허리를 낮추고, 그 눈 안에 들어가 함께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더군요.

문득 떠올랐습니다.
저를 바라보던 우리 엄마의 시선을 저는 이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완벽해서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배우면서, 계속 고민하면 그 이름을 스스로에게 익혀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누군가를 작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을 온전한 어른으로 세상에 내보내는 일이라는 것을.


저는 아직 엄마가 아닙니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는 날이 온다면, 그 이름을 가볍게 쓰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엄마”를 부르며 자랐던 시간처럼 누군가가 저를 부르며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그 사랑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어진다는 걸 이번 여행에서 배웠던 것 같습니다.


엄마를 부르 제가 엄마라고 불릴 날을 상상하며, 저는 오늘도 사랑을 배우는 중입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