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규칙했던 계절에게
<뿌리>
서로 감정이 튀며
온 집안에 불이 붙는 소리.
아이의 진동에
떨리는 소리.
장작 타는 소리와
진동소리가 일상인
너의 세상.
봉선화 꽃몽울처럼
툭 건드리면
비명처럼 터지겠지
어차피 꽃도 없는 나
봐주지도 않겠지
하며 설움을 삼키던 너.
그런데 알아?
그렇게 터지며 날아간 씨앗들이
뿌리 내린 곳은
엉성해도 아름다워
사춘기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찾아오는 불규칙한 계절입니다.
우리는 그 계절을 견디며 저마다의 흉터를 품었고, 그 흉터는 손끝만 스쳐도 다시 아픈 소리를 내곤 하지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아픈 기억, 지우고 싶은 순간들, 그리고 이름 붙이기조차 싫은 감정들이 제 안에 오래 머물고 있습니다.
봄날 바람처럼 가벼운 말에도 상처받고, 누군가의 시선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리던 시절—
저는 그 시간을 참 힘겹게 지나왔습니다.
그땐 제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 믿음이 얼마나 좁고 외로웠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버림받고, 맞고, 어린 나이에 더 어린 식구를 책임지며 말 그대로 버티는 시간을 살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저 따뜻한 집에서 부모님의 거친 말 몇 마디에 하루를 무너뜨리던 아이였을 뿐입니다.
이제는 압니다.
그 시절의 저는 '어렸기 때문에' 그렇게 아플 수 있었다는 것을.
어른의 눈으로 비웃을 수 없고, 그 시절의 나를 쉽게 가르칠 수도 없습니다.
그 아픔은 당시의 제게 현실이었으니까요.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못해요."
상처 난 이들이 오히려 더 웃고, 더 열심히 움직이며, 어딘가로 나아가려 애쓴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멈추면 다시 무너질 것 같아서, 살기 위해 무엇이라도 붙잡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문장을 붙잡았고, 책 속의 세계를 붙잡았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 말의 표면을 다듬어가며 살았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 안의 불행이 저를 전부 집어삼킬 것 같았으니까요.
초등학생 시절, 성조숙증 때문에 놀림을 받았고 키가 크다는 이유 하나로, 평범하지 않은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속상해하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에는 수련회에 가서 친구들과 다른 방에 놀러갔다가 갑자기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되어버린 밤도 있었습니다.
그날의 차가운 공기가 아직도 저를 움츠러들게 합니다.
그때 생긴 트라우마는 지금도 제가 '여기 있어도 되는 자리인지' 먼저 확인하게 만들곤 합니다.
부모님의 거친 말들은 비수처럼 박혀 오래도록 아물지 못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서는 작은 상처가 계속 고름을 만들고, 가끔은 다시 피어나듯 터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시절, 저는 삶을 포기하는 쪽이 더 쉬울지 모른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죽는 용기도 없으면서, 사는 용기 또한 내기 어려웠던 그때의 저는 어쩌면 가장 외로운 뿌리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들이 하나의 흙이 되어 제가 뿌리내릴 최소한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던것 같습니다.
엉성했지만, 그 흙이 있었기에 저는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사춘기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수고했고, 고마웠다."
나의 손을 놓지 않고 버텨줘서 고맙다.
너의 어두운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뿌리란, 원래 엉성하게 내려도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힘을 품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랬을 거라 믿으며 한 철 불안정했던 시기를 지나온 여러분께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남깁니다.